[전호림칼럼] 노벨상을 기다리며

2014. 10. 2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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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와 히데키가 1949년 노벨물리학상을 타자 일본 열도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패전 후 실의에 빠져 있던 국민들에게 노벨상은 백배 천배의 용기를 줬다.

잘 교육된 인재, 세계지도를 놓고 국가를 경영해본 안목 덕분에 일본 경제가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던 1965년 두 번째 수상자가 나왔다. 도모나가 신이치로가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것이다. 패배의식은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3년 뒤인 1968년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더욱 고조됐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업경쟁력이 높아지고 국민소득도 쑥쑥 올랐다. 유럽과 미주 일색인 노벨상 수상국 대열에 어깨를 나란히 한 일본인들의 자긍심은 더 높아졌다. 그 후에도 일본은 고비마다 수상자를 배출하며 국위를 떨치고 자국민의 우수성을 만방에 알렸다.

한국도 지금 노벨상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매년 이맘때마다 실망을 거듭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다 같이 서양에 비해 후진국이었다. 하지만 개화는 우리보다 훨씬 빨랐다. 1868년 명치유신을 개화의 원년으로 쳐도 우리보다 77년이나 빠르다. 우리는 과학교육을 비롯해서 모든 주권을 일본에 빼앗겼기 때문에 주권을 되찾은 1945년을 기점으로 봐야 한다. 노벨상을 타기까지 소요된 시간을 보면 이제 나올 때가 됐다는 얘기다. 근년 들어 한국 과학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고 거명되는 인사도 여럿 있다. 문학상도 여러 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따라서 너무 안달복달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서도 노벨과학상을 '국가의 두뇌경쟁력'으로 간주하는 시각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는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이긴 하다.

이즈음 우리가 '사는 방식'을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3년간 공부를 하고 3년간 특파원을 지내면서 본 일본인은 한국인과 비슷해 보여도 많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일이나 사물을 대하는 태도, 즉 진정성이다. 건물을 짓거나 다리를 놓을 때 우리 구조물의 완성도는 일본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공사에 임하는 양국 국민의 자세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내가 살 건물이든 공공건물이든 품질이 균일하다. 우리는 고속철도처럼 잘못되면 대형 인명사고가 날 수 있는 공공시설물도 자재를 더 싼 것으로 바꿔치기하거나 빼먹는다. 심지어 민족 생존에 대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 건설에도 위험천만한 농간을 부린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노벨상은커녕 당장 생명을 무사히 유지해 나가는 것이 걱정되는 나라다. 그럴 때마다 도대체 인간의 욕심과 사악함은 어디가 끝이며, 얼마나 더 타락해야 멈출 수 있는지 화가 치민다. 승객을 배 안에 놔두고 저만 살겠다고 뛰어나오는 선장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치열한 정신작업의 산물이어야 할 학문의 성과를 조작하고 베끼는 것도 부실공사와 뿌리는 같다. 툭하면 불거지는 논문 표절 때문에 국가 지도자를 검증하는 청문회를 보기가 겁날 지경이다. 그러니 외국인들 눈에 한국은 부실과 표절이 일상화된 나라로 비치지 않겠는가. 이런 한국인과 일본인이 나란히 노벨상 후보로 오른다면, 그리고 그들의 성과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팽팽하다면 어느 쪽으로 기울까? 노벨상을 컴퓨터가 뽑는다면 모르되 사람이 선정하는 것이니만큼 제 실력대로 평가받지 못할 위험성도 있는 것이다.

노벨상은 숭고한 인간 정신활동의 산물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국제수학·과학경시대회에서 늘 수위권에 든다. 국민의 두뇌에는 긍지를 가질 만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는다면 노벨상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길고 긴 시간을 요구할 것이다.

[주간국장 hor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79호(10.22~10.28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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