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이대론 안된다]기밀 빼주고, 불량부품 눈감고.. "패망 직전 월남군 보는 듯"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2015. 3. 29. 22: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 비리에 추락한 '별'들

▲ 무기중개·통영함 사건 등방산비리로 떨어진 별만 대장 3명 등 총 21개'군피아' 군 인사까지 개입… 처벌 수준 약해 악순환

대법원은 지난 1월 김상태 전 공군참모총장에 대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전역 후 무기중개업체를 설립해 2004년부터 6년 동안 합동군사전략목표기획서(JSOP) 등 군사기밀을 빼내 미국 록히드마틴 측에 넘기고 25억원의 수수료를 챙긴 혐의였다. '포 스타(대장)'가 군사기밀을 빼돌린 범죄자로 전락한 것이다.

'통영함 사건'이 촉발한 방위사업 비리에서 계급은 '돈' 버는 수단에 불과했다.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이 지난해 11월 출범한 이후 29일 현재까지 대장 3명 등 해·공군에서 비리 의혹으로 떨어진 별만 21개다. 한 전직 해군 소장은 검찰 수사 도중 한강에 투신해 목숨을 끊기도 했다.

기밀이 유출되고, 전투함 부품이 바꿔치기 되고, 전투기 정비대금이 사라졌다. 모두 전장의 군인들에겐 생명줄과 같은 것들이다. 우리 군이 북한의 10배가 넘는 한 해 36조원을 국방비로 쏟아붓고도 '전력 열세' 논란을 면치 못하는 한 이유다. 최고위 장성들부터 악취가 진동하는 '총체적 비리·유착' 속에 첨단무기는 맹탕무기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마치 패망 직전 '월남군'을 보는 것 같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비리 로비스트가 된 장군들

2009년 10월 MBC <PD수첩>은 '한 해군 장교의 양심선언'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김영수 해군 소령이 해군 납품비리 의혹과 작동하지 않는 내부 정화시스템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당시 정옥근 해군참모총장은 국정감사에서 "군인 신분을 망각하고 일신을 위해서 그런 책임 없는…, 그런 사람 말을 빌려 마치 사실인 양 해군이 매도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달 후 해군 간부 4명이 구속기소되고, 이후 형사처벌 대상은 31명까지 늘었다.

정 전 총장은 2008년 8월부터 2010년 3월까지 27차례에 걸쳐 해군 복지기금 5억267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는 2008년 8월 STX그룹으로부터 7억7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최근 다시 구속됐다. 아예 본인이 먼저 뇌물을 요구하고 액수 흥정까지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도 지난 23일 구속됐다. 통영함 음파탐지기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부하 직원들이 시험평가서를 조작해 성능 미달 장비가 납품되도록 사실상 지시한 혐의다. 공교롭게도 정 전 총장은 통영함 납품비리 발생 당시 해군참모총장, 황 전 총장은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으로 통영함 도입 실무 책임자였다.

두 전직 총장을 포함해 통영함 비리와 관련해 구속된 전·현직 해군 장교만 7명으로 모두 해군사관학교 출신 선후배다. 이 때문에 주요 보직을 해사 출신들이 장악한 해군 특유의 상명하복 문화가 조직적인 방산비리를 만들어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합수단 관계자는 "해군의 전력 사업은 탑재될 장비 하나하나를 선정하는 과정을 해군이 주도하기 때문에 선후배들끼리 뜻만 맞추면 비리가 발생할 소지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세월호 참사만 없었다면 통영함 납품비리가 묻혔을 것이라는 게 방위사업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밖에 해군에서는 한때 해상작전헬기 도입 사업을 놓고도 전직 해군총장들 간에 로비전이 벌어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천모 예비역 공군 중장은 후배들이 조종하는 KF-16과 F-4 전투기 정비대금 240억여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공사 출신인 그는 공군기술고등학교 출신 예비역 중사가 세운 회사에 취업해 공군 후배들을 상대로 로비를 했다. 돈 앞에서 공군 중장과 중사 출신이 연합해 '군피아'(군대+마피아)를 결성한 셈이다.

장군은 아니지만 육군은 불량 방상외피와 방탄복 납품 과정에 연루된 현역 대령 2명이 기소됐다. 이들은 북한군 AK-74 소총에도 뚫리는 부실한 방탄복의 시험성능 결과를 조작한 후 특전사에 납품되도록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 인사·인맥으로 영향력 행사하는 '똥별'들

방산비리의 대표적 유형은 납품업체로 선정되기 위한 과정에서의 범죄다. '정부 무기체계 도입 계획 등 군사기밀 탐지' '각종 시험평가에서 유리한 평가를 받기 위한 뇌물수수' '자격요건을 가장하기 위한 시험성적서 위·변조' '민간업체에 재취업한 퇴직 군인들의 알선 금품수수 행위' 등이 이뤄진다고 검찰 관계자는 설명했다.

군에서 추진하는 전력증강 사업은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고 작전요구성능(ROC) 역시 큰 틀에서 유지된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무기중개업체에 취업한 예비역 장성들은 후배인 현역 장교들에게 밥·술자리를 통해 유대관계를 유지하다 전력증강 사업 정보를 주기적으로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현역 장교들은 기밀을 '통째로' 복사하거나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건네기도 했다.

문제는 군피아들이 협조를 거부하는 내부 인사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쓴다는 점이다. 예비역 장성 출신 로비스트가 실무 장교에게 동기생인 참모총장이나 주요 직위의 장군들 이름을 들먹이며 은근히 '진급'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압박을 가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도저도 통하지 않으면 사실상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는 게 관련자들 증언이다. 방위사업청의 한 간부는 이규태 회장이 구속된 일광공영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지난 정권 때 청와대 지침에 따라 일광공영이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는 상황을 일광공영과 관련된 외국 무기업체에 고지했는데, 일광공영 측이 "업무방해 등을 했다"며 5개월간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일광공영은 전직 방위사업청장 2명을 한때 영입했고, 기무사령관 출신 김모 예비역 중장을 그룹사 대표직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국방부는 방산비리의 창궐 원인 분석 보고서에서 '폐쇄성과 정보 독점' '전문성 부족' '획득비용 절감 치중' '처벌 수준 미흡' 등 4가지를 꼽았다. 특히 '처벌 수준 미흡'은 최근 방산비리로 구속된 현역 다수가 군사법원에서 보석 또는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났던 데서도 쉽게 엿보인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