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승자의 저주'는 모르는 소리

이건희 재테크칼럼니스트 2014. 10. 1.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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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8일 저녁, 필자는 주식시장 현황을 보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했다가 깜짝 놀랐다. 삼성전자 다음으로 시가총액이 높은 현대차 주가가 10% 가까이 하락했기 때문. 그동안 엔저 악재에도 9개월이나 22만원 근처에서 지지선을 유지해왔던 것이 무색하게 한순간에 저점이 붕괴되고 말았다.

현대차그룹에서 자동차를 실어 나르면서 종합물류업을 영위하는 현대글로비스는 2.62% 올랐지만 제조업체인 현대차(-9.17%), 현대모비스(-7.89%), 기아차(-7.80%)가 동반 폭락해 대규모 리콜사태가 터진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폭락의 원인은 강남의 한전부지를 현대차그룹 3사(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감정가 3조3346억원의 3배가 넘는 10조5500억원이라는 거금으로 낙찰받았기 때문이었다. 3.3㎡당 가격은 4억3900만원에 달한다.

7만9341.80㎡ 면적의 삼성동 한전부지는 강남에 남은 마지막 대규모 금싸라기 땅으로 불린다. 하지만 10조원대는 과도하다는 게 시장의 반응이다. 인수금액 외에도 세금, 각종 부대비용과 향후 건축비까지 포함하면 총 16조원이 소요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승자의 저주'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삼성그룹과의 입찰경쟁에서 이겼지만 과도한 투자로 인해 승자의 저주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주가폭락을 야기한 측은 투신과 연기금 등 국내기관이었다. 현대차는 하루 만에 국내기관이 무려 113만1998주를 순매도했고, 개인은 123만8836주를 순매수했다.

기아차도 최대 매도처는 기관이었고 최대 매수처는 개인이었다. 현대모비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관에서 현대차를 113만주 넘게 순매도한 것은 금융위기 시절에도 없었고 보기 힘든 기록이다. 승자의 저주는 국내기관이 먼저 퍼부은 셈이다. 과연 승자의 저주를 받을 만큼 무모한 일을 현대차그룹과 정몽구 회장이 벌인 걸까.

/사진=뉴스1 박정호 기자

◆한전 매입 정말 승자의 저주일까

그렇다면 현대차는 정말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한전부지를 구입한 것일까. 국내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은 명동이다. 그 중에서도 중구 충무로1가 24-2에 위치한 네이처 리퍼블릭 명동점 부지가 3.3㎡당 약 2억5000만원의 공시지가로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인근의 명동2가 51-2 에스콰이어빌딩은 2008년에 3.3㎡당 4억원 수준에 팔린 적이 있다. 최근 강남지역에서 실거래가격이 가장 높게 형성된 사례로는 강남역 인근 강남대로변 서초구 서초동 1318-1에 위치한 6층짜리 옛 뉴욕제과빌딩이 올 4월 3.3㎡당 5억1700만원에 팔린 것을 들 수 있다.

현대차그룹의 한전부지 인수가격보다 높은 수준이다. 건물 소유주인 ABC상사가 지난해 5월 38년간 운영하던 뉴욕제과 문을 닫고 내놓은 매물을 분당에 사는 자산가가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과점 운영수익보다 임대수익이 더 높기 때문에 매각한 것이다. 건물가격이 일부 포함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10층 내외 중층인 오래된 빌딩은 통상 토지가격 기준으로 매매된다.

미래 성장성이 명동과 강남 중 어디가 더 높을지도 따져봐야 한다. 명동 쪽 공시지가가 여전히 1위지만 상승률은 강남 쪽이 더 높다. 역전되는 날이 오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강남지역 상승률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9∼10%에 달한다. 통합사옥이 완공되는 2020년 즈음에는 사옥 땅값이 15조원에 달한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미래가치를 전망할 때 사용용도도 중요한 요소다. 한전부지는 현재 용적률 200% 이상 300% 이하인 제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돼 있다. 향후 일반 상업지역으로 바뀌어 용적률이 800%로 늘어난다면 가치가 크게 높아진다.

2년 전 삼성역 사거리 근처에 용적률 300%인 부지가 3.3㎡당 1억2500만원에 팔린 적이 있다. 한전부지의 용적률이 몇배 늘어날 경우에는 단위면적당 가치도 몇배 올라가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2007년 뜨거운 감자였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입찰에서는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감정가 3조8000억원인 것을 입찰가 8조원으로 써내 현대건설 컨소시엄을 누르고 개발사업자로 선정됐다.

따라서 이번에도 최대 7조~8조원을 적정가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이 그 이후 어떻게 진행됐는지 생각해보라. 또한 잠실 제2롯데월드는 현재 공사 중이지만 인허가 문제로 인해 부지매입 이후 착공까지 20년 이상 걸렸다.

사업의 세계에서 시간은 돈이다. 현대차그룹은 한전부지를 인수하면 추진할 예정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의 건립에 대한 인허가 문제를 수개월 전부터 미리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이 이전을 마치면 곧바로 서울시와 협상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돼 빠른 시일 내 착공이 가능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 재무적 문제 없을 듯

현대차그룹이 한전부지 인수에 거금을 들이는 것과 관련 민감한 반응을 보인 곳은 이들 종목을 대량으로 보유한 기관투자자들이다. 발표당일 투매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근 주식시장에서는 SK텔레콤을 비롯해 배당수익률이 높은 종목이 꾸준히 상승했다. 정부는 기업 내부에 쌓아놓은 현금이 많으면 과세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배당수익률이 낮은 종목의 경우 배당금을 늘리라는 주주들의 요구가 많아지고 있다.

올해 2분기 기준 현금성자금규모(현금 및 현금성자산+단기금융자산)가 가장 많은 기업은 삼성전자(60조6629억원)와 더불어 현대차(47조356억원), 현대모비스(8조5508억원), 기아차(6조5661억원), 포스코(5조7967억원) 등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관투자자들은 현대차그룹이 대규모 현금을 한전부지 매입 및 개발에 투입하면서 배당금을 늘릴 가능성이 줄어든 데 대해 실망감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주주라면 당연히 배당수익률이 높아지는 것을 원하겠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재무상태에 문제만 생기지 않는다면 현금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다각도로 연구하기 마련이다. 현대차그룹 3사의 합계 추정 영업이익이 10조원 수준에 달하고 현재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한전부지 인수금액의 4배가 넘기 때문에 재무적인 문제는 없어 보인다.

부지 매입비용 이외의 건립비와 제반비용은 30여개 입주 예정 계열사들이 8년간 순차적으로 분산투자할 예정이다. 현재 완성차 주가를 오랫동안 누르고 있는 핵심은 엔저현상이므로 엔화가치가 어디까지 하락할 것인지가 오히려 더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현대차그룹에 낙찰된 지난 9월18일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직원들이 한전부지 낙찰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뉴스1 송원영 기자

◆한전부지 매입 빛 보는 곳은?

현대차그룹이 한전부지를 인수해 개발하면 덕볼 만한 곳은 어디일까. 주체자인 3사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주가약세로 인한 이미지 실추가 불가피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독일의 자동차 테마파크 아우토슈타트를 벤치마킹한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건립한 후 세계 5위 완성차업체로서 국제적 위상이 올라갈 수 있다.

폭스바겐이 5000억원을 투자해 만든 아우토슈타트는 폭스바겐 직원이 근무하는 곳이며 동시에 자동차 복합문화공간이다. 폭스바겐 공장, 고객센터, 자동차 제작공정을 볼 수 있는 오토워크를 비롯해 각종 자동차를 전시하는 박물관 '자이트하우스', 컨벤션센터, 숙박시설 등을 갖췄으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많다. 뿐만 아니라 경쟁사 제품과 아름다운 올드카도 전시돼 있다. 2000년대 초 완공된 후 2000만명이 다녀갔고 지금은 매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독일 주요 관광명소가 됐다.

이 같은 아우토슈타트를 벤치마킹해 한류체험공간 및 공연장이 들어서는 복합문화시설을 건립한다면 강남에서 (100층이 넘으리라 예상되는) 랜드마크가 될 뿐 아니라 상당한 관광수입도 올릴 수 있다.

한국판 아우토슈타트에 가보는 것을 벌써부터 꿈꾸는 네티즌도 많다. 현대차그룹 내부적으로는 그동안 부족했던 사무공간 문제가 해결되면서 여러 군데 흩어져 있는 계열사들이 한곳에 모일 수 있어 업무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다.

'현대자동차 세계 딜러대회'가 있다. 전세계의 현대차 딜러 5000명이 참가하는 행사인데 국내에서는 수용할 수 있는 호텔과 회의장이 없어 해마다 해외에서 열렸다. 이 행사 역시 국내에서 개최가 가능해진다.

현재 지불하고 있는 막대한 임대료도 줄일 수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30개 업체 직원 중 1만8000여명이 서울에서 근무하는데 이 중 양재 사옥의 일부 인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시내 여러 건물에서 일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부담하는 임대료만 매년 2400억원이 넘는다. 따라서 절약되는 임대료는 연리 3% 적용 시 약 8조원의 가치에 해당한다.

서울시는 한전부지 인수에 지급되는 금액으로 인해 수천억원에 달하는 세수를 거둬들이게 된다. 감정가의 40%를 기부체납하므로 1조3000억원가량일 것으로 예상된다. 개발계획이 수립되는 협상완료 단계에서 감정평가액을 높인다면 기부체납이 늘어날 수도 있다.

취득세는 낙찰가에서 기부체납할 가치를 제외한 금액의 4%로 부과된다. 지방교육세, 국세인 농어촌특별세,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산정하는 재산세까지 합해 약 4300억원의 과세가 예상된다. 매도자인 한전 또한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부지가 매각돼 부채를 크게 줄이게 됐다. 약 20%포인트가량 부채비율이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관측됐다.

한전부지 근처의 빌딩들도 수혜를 볼 수 있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 중에서는 대웅제약(1347평, 삼성동 161, 161-1~3), 오로라(422평, 대치동 997, 997-1~3), 케이씨텍(318평, 삼성동 168-27~29), 풍국주정(295평, 삼성동 161-4, 161-5), 성도이엔지(275평, 삼성동 165-2) 등이 한전부지 근처에 빌딩을 보유하고 있다.

과거 강남역 근처인 서초구 서초동에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를 모아 놓은 오피스단지 서초 삼성타운이 생긴 후 주변 부동산가치가 크게 상승한 바 있다. 삼성역 주변 오피스가격이 벌써부터 오르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거시적인 측면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큰 돈이 외국으로 나가지 않고 한국전력, 서울시, 건설사 등 내부에서 순환되므로 한국경제 및 내수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다. 또한 GBC 건립으로 얻어질 효과와 관광수입 증대도 한국경제에 보탬이 될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 제35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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