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를 넘어

입력 2014. 9. 22. 14:10 수정 2014. 9. 2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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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만리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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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2위 재벌그룹의 머니게임으로 진행된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부지 매각 작업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현대차 쪽은 이곳에 사옥뿐 아니라 폴크스바겐의 아우토슈타트처럼 대형 테마파크 등을 짓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우토슈타트가 옛 동·서독 국경 근처의 외진 땅에 들어선 것과는 달리, 현대차의 꿈이 실현될 공간은 서울 강남의 금싸라기 땅이다.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낙찰가(10조5500억원)는 업계 감정액의 3배를 웃돌았다. 낙찰액이 발표된 뒤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곧바로 쏟아져나온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물론 반론도 많다. 한편에선 현금성 자산 등 최대 30조원을 손에 쥔 기업이 설령 무리하게 투자해 손해를 본다 치더라도, 그게 나에게,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는 식의 논리를 내세운 목소리도 있다. 승자의 저주란 용어는, 엄밀히 말해, 시장의 언어다. 모든 사회 구성원을 '플레이어'란 이름으로 단일화해버리는 시장 논리 프레임을 받아들일 때만 생각할 수 있는 용어다. 그럼에도 이번 낙찰 결과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선, 기업의 근본 생리를 따져보자. 기업이 투자할 때는 으레 적정이윤이나 기대수익률이란 잣대를 머릿속에 그리기 마련이다. 예컨대 '이만큼의 돈을 투자했으니 (최소한) 이만큼의 돈은 벌어야 한다'는 밑그림 말이다. 현대차 쪽이 적정이윤(기대수익률)이란 잣대를 포기하지 않는 한, 결국 남는 건 투자한 돈을 회수하는 여러 가지 '우회로'뿐이다. 게다가 한전 부지 매각은 개인 땅을 개인에게 파는 거래가 아니다. 사실상 나라가 소유한 한정된 자원(땅)을 개인(기업)에게 파는 거래다. 일반적인 사적 거래와 달리 기부채납 등 개발이익의 환수라는 공공성 기준이 부각되는 배경이다. 적정가보다 훨씬 많은 돈을 들여 탐나는 땅을 인수한 기업의 입장에선, 인수자로 확정된 순간부터 공공성이란 장애물을 하나둘 허물어뜨릴 유혹에 빠져드는 게 당연지사다. 공공성의 몫이 수익성의 몫으로 슬그머니 옮겨가는 건, 이번 매각 작업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편익이 훼손되는 일이다.

또 하나. 아주 단순한 물음이다. 현대차 쪽이 보유한 막대한 실탄은 '어디에' 있나? 만일 그 돈이 몽땅 회사 금고에 보관되어 있다면 사정은 다르다(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 당시 검찰의 본사 압수수색을 통해 현대차의 비자금 일부가 드러난 적은 있다). 하지만 그 돈 대부분은 이른바 '시중'을 넘나든다. 은행 예금으로, 주식시장 투자금 등의 얼굴로. 화폐경제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을 살지 않는 한, 비록 남의 돈이라 하더라도, 나의 삶 역시 시중이란 이름의 공동무대에 엮이게 마련이다. 나의 운명을 30조원을 손에 쥔 남의 이해관계와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금리, 주가 등 차고도 넘친다.

현대차 쪽은 백년대계를 강조한다. 맞는 말이요, 꼭 필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정작 최대 연간 4천억원이 들어가는 불법파견 사내하청 문제 해결엔 10년 동안이나 눈감은, 법원의 판결조차 간단히 뭉개온 장본인 아니던가. 우리 사회는 공정한 게임을 통해 승자가 가려지고 그 승자가 모든 걸 차지하는 승자독식의 사회가 아니다.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힘센 자가 게임의 룰마저 정하고, 뻔한 승부에서 당연히 승리한 자가 그 결실을 모두 챙겨가는 강자독식 사회에 오히려 가깝다.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강자의 저주'를 감시해야 하는 이유다. 한전 부지 인수가 확정된 날 내려진 법원의 판결을 대하는 현대차그룹의 행보를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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