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 방지" 담배 공급제한에 소비자 '골탕'
서울에 거주하는 송근호씨(38·가명)는 최근 담배를 사려다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평소대로 동네 ㄱ가게에서 각종 물품을 사면서 담배 한 보루를 배달 주문했다. 그런데 정작 배달원은 담배 2갑만 건넸다. 해당 담배가 동이 났다는 것이다. 짜증이 난 송씨는 ㄴ가게를 직접 방문해 담배 한 보루 구매를 시도했다. ㄴ가게 주인은 "KT&G에서 보루 단위로 못 팔게 한다. 대신 아저씨는 단골이니 비슷하게 드리겠다"며 담배 9갑을 내밀었다.
정부가 담배 사재기 엄단을 천명한 가운데 소비자들이 담배 구매에 골탕을 먹고 있다. 송씨는 2일 "평소대로 장을 보면서 담배 한보루 사려다 기분을 망쳤다"며 "담배를 파는 가게에서 담배를 몰래 쌓아두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담배회사가 1~8월 평균 판매량의 104%만 공급하도록 제한했다. 표면적으로는 소비자를 겨냥한 조치는 아니다. 판매점이 평균 이상의 담배를 주문한 뒤 일정 부분 쌓아두지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송씨 사례처럼 이 방침이 일반 소비자 불편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ㄱ가게는 "모 담배의 경우 1주에 15보루 정도여서 그 정도 물량만 받을 수 있다"며 "판매량은 평균대로가 아니라 들쭉날쭉인데, 물량은 제한돼 있으니 팔 때부터 제한해서 팔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보루째 판매를 하는 ㄷ가게는 "달라는대로 판 뒤 떨어지면 없다고 한다"고 했다.
소비자들은 담배 공급제한이 판매점 뿐 아니라 다분히 소비자도 함께 겨냥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소비자가 직접 수요에 따라 일정량의 물품을 구매해두는 것은 사재기로 보기 어렵다. 정부도 실수요자들이 물품을 일정량 사두는 행위는 사재기가 아니라고 보고 단속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정부가 전체 공급량을 제한하는 것은 담뱃값 인상 전 판매량을 최대한 억제한 뒤 가격이 오르면 본격 판매에 나서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란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각종 댓글에서 "담배 겉표면의 디자인이나 도안을 새해부터 바꾸면 시세 차익을 노린 판매업자들의 사재기 행태는 쉽게 적발할 수 있는데도, 판매점 공급량을 조절하는 손쉬운 방안만 추진해 불편이 속출한다"고 성토하고 있다.
KT&G 관계자는 "104% 공급제한은 정부 방침이라 따르지 않을 수 없다"며 "담배 디자인을 바꾼다고 해도 옛 디자인의 담배를 인상된 가격에 파는 행위는 단속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홍재원 기자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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