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인턴만?".. 그 말이 비수로 꽂혔다

김다솜 입력 2015. 5. 24. 19:51 수정 2015. 5. 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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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직 선호'에 우는 취준생들

[오마이뉴스 김다솜 기자]

취업 무경험자 백수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12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런 기사들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건 딱 내 처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대학을 졸업해 여태 '취업준비생' 딱지를 못 뗐다. 지난해부터는 대학원생이 됐지만 말 뿐이다. 학업이 아닌 취업을 위해 대학원에 왔다. 지금 당장의 소원이 있다면 대학원 졸업장을 받기 전에 취업하는 것. 대학원 2학년 1학기가 끝나가는 지금에 와서 보면 그 소원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내 꿈은 기자다. 언론사 인턴 경험만 3번. 언론사 인턴을 하면서 여러 차례 눈도장을 찍었던 유명 국회의원은 "다른 언론사에서도 본 적이 있다"며 날 알아봤다. "그 회사 기자인 줄 알았는데 여기 또 있냐"며 반가워했다. "언제까지 인턴만 할 겐가. 이제 취업해야지." 마음써준다고 하는 말이었겠지만 비수로 꽂혔다. 나도 이제 인턴 그만하고 취업하고 싶은데….

언론사, 일반 기업 가릴 것없이 '경력' 선호

하루에도 수십 번 들락날락 거리는 취업사이트 채용공고란을 보면 신입기자 공고를 찾기 어렵다. 지난 4월에는 <MBC> 안광한 사장이 "신입 공채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MBC>는 노조원을 배척하고 그 자리에 경력직을 앉히기 위한 술수겠지만 다른 언론사도 경력 채용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경력 채용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노조 탄압', '교육 비용 절감' 등 제각각이다. 이유가 어찌 됐든 취업 준비생 입장에서는 경력직 채용이 아프게 다가온다. 경력 기자 채용 공고에 나와 같은 처지의 언론사 입사 지망생들이 댓글을 달아 놨다.

 대학원 동기들의 채팅창. 경력을 선호하는 분위기에 속상한 건 취준생들의 몫이다.
ⓒ 김다솜
"경력은 2년만 인정한다면서 처우는 수습직원?"
"다 경력만 뽑네~ 우린 어디서 경력을 쌓지??"

<KBS> 경력사원 모집글에 달린 댓글이다. 어느 회사가 신입 공채를 안 뽑는다는 카더라 뉴스가 취업 게시판에 올라왔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심정은 참담하다. 기자 이외의 직업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억장이 무너진다.

경력직 채용이 늘어날수록 신입 채용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얼마 전 대학원 동기들 카톡방에서도 성토대회가 이어졌다. (내가 다니는 대학원은 언론인 지망생이 대부분이다) "취준생의 스펙 쌓기 열중부터 기업의 신입직원 교육 비용을 취업 희망자에게 전가하는 꼴","만약 진짜라면 피디는 이제 갈 곳도 없다"는 둥 다들 마음이 불편하기만 하다.

 유명 인터넷 채용 사이트의 구인광고란. 경력직 채용이 늘고 있다.
ⓒ 김다솜
"아니, 신입사원 면접인지 경력사원 면접인지 구분이 안가!"

일반 기업을 목표로 취업 준비하는 친구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얼마전 고등학교 친구가 지역 중소기업 재무팀에서 면접을 봤다고 전화가 왔다. "업무 관련 경험에 대해 회사가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하지만 회계는 배워 나가는 게 가장 큰 영역이라 신입 채용 면접 질문의 80%를 차지하는 건 좀 아니다"는 입장이었다. 전반적인 채용 시장이 '경력직 선호'로 흘러 가다 보니 직업 한번 못 가져본 취준생들은 울상이다.

이력서 속 경험은 '옛일'이 되고, 결국 '인턴'

 언론사 채용정보 게시판에는 온통 '경력' 아니면 '인턴' 공고다. 신입 공고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 김다솜
경력 아니면 인턴이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다. 내년에 대학원 졸업하고 나면 또 인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력서 속 공백 기간을 흠 잡히지 않으려면 꾸준히 무언가로 채워 나가야 한다. 언론사 인턴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경력은 쓸 수 없는데다 신입의 문은 점점 좁아지기 때문이다. 인턴을 한다고 해서 언론사 공채에 도움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체계적으로 교육을 하고, 노동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주는 곳이 몇 없다. 최저시급도 못 받거나 무급인턴이 있을 정도다.

언론관이나 취재 요령도 배우지 못한 채 인턴 생활을 마친 친구들을 많이 봐왔다. 이 순간을 더 절망스럽게 만드는 건 언론사 인턴에 대한 모 기자의 인터뷰였다. 그 인터뷰 속에서 언론사 인턴은 '언론사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준다'는 자사 홍보 수단이거나 단순 업무를 할 인력이 필요할 때 쓰이는 방법이었다.

대학 졸업 이후에 웬만하면 내 나이를 떠올리지 않으려는 버릇이 생겼다. 취업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다. 불 끄고 누워서 "내 나이가 몇이더라"하는 노인네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정도다. 올해는 26, 내년에는 27, 후 내년에는 28살이구나. 처음 취업 준비에 뛰어들었을 때는 인턴을 하든 스터디를 하든 '막내'소리를 들었는데 올해부터는 막내 딱지도 떨어졌다.

예전에 쌓았던 이력서 속 경험들은 옛일이 되어 가고, 먼저 취업한 대학 동기들은 직장 2년 차, 3년 차 소리를 듣는데 나만 제자리다. 예전에 어떤 다큐에서 취업도 포기한 채 방 안에서 '히키코모리'처럼 생활하는 일본의 백수들을 봤다. 몇 년 후 나의 모습이 저렇진 않을까 두려워 TV를 껐다. 공부할수록 기자란 꿈에 가까워질 줄 알았는데 웬걸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다. 오늘도 한숨이 깊어만 간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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