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세월호 플래카드 이젠 걷을 때다

기자 2014. 9. 3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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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 한국외국어대 교수 · 법학

4·16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적폐(積弊)가 한꺼번에 노출된 사건이다. 어이없는 사고 원인, 선원들의 낯 뜨겁고 파렴치한 탈출 행각, 구조와 사고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국가기관의 무능력, 그리고 일부 정치인들의 개념 없는 언동 등을 보면서 온 국민은 분노하고 슬퍼하며 때로는 좌절했다.

국민 전체가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에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수 없이 유가족들에게 '미안합니다'를 가슴에 되뇌었다. 그리고 이 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국가 개조 작업이 있어야 한다는 데 모두가 공감하고 다짐했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국가 개조는 모든 국민의 공통된 염원이고 다짐이었지만, 정치권은 두 차례의 선거 과정에서 철저하게 정략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고 진영 논리가 가세함으로써 그 다짐은 왜곡되고 말았다. 유가족들이 하루 빨리 슬픔을 딛고 일어나 정상적인 생활에 복귀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도와야 함에도 정치권은 오히려 이들의 슬픔을 볼모로 유리한 정국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만 골몰했다. 이 때문에 국회는 지난 5월 이후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한 식물국회가 되고 말았다. 국정은 마비되고 그동안 유가족을 애도하고 위로하던 국민은 급격히 지쳐가고 있다.

반면 우리의 경제 상황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심상찮다. 지난해 3분기 1.1%였던 경제성장률이 올 2분기엔 0.5%에 그치면서 경기회복의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국제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동북아 질서 재편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고, 북한은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계속적인 군사적 위협을 자행하고 있다. 급격히 우경화하고 있는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등 외교적 분쟁을 유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회로부터 민생과 경제를 걱정하거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논의한다는 얘기는 없다. 민생과 경제 및 국방과 외교가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가 크다.

그동안 친노(親盧) 강경파 의원들은 유가족의 뜻이라며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을 주는 내용의 세월호특별법을 고집해 왔고, 유가족의 동의 없이는 특별법 합의가 불가하다며 국회를 파행시켜 왔다. 그런데 최근 유가족들은 애초부터 '수사권과 기소권의 관철'을 주장한 바 없다고 하는 등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언동을 보였다. 그동안 특별법 협상을 가로막은 실체가 무엇인지를 추정케 해준다.

협상의 물꼬가 터일 것 같은 조짐은 다행스럽지만,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은 사법체계상 처음부터 불가능한 문제였다는 점은 분명히 해둬야 한다. 특별법 합의에 유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만약 이러한 주장을 유가족이 했다면 능력 범위 밖의 일이다. 또, 새정치민주연합이 주장했다면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유가족의 뜻을 특별법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내용에 관한 합의는 어디까지나 여야 정치권의 역할과 임무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세월호 플래카드를 걷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결코 세월호 참사의 비극과 유가족들의 슬픔을 잊거나 진상 규명과 국가 개조를 그만두자는 게 아니다. 여야의 정치적 계산과 진영 논리가 개입되지 않았던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정치적 계산을 배제한 특별법의 제정과 객관적이고 실질적인 진상 규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국민이 세월호의 그늘에서 벗어나 국력을 키우고 경제력을 회복하기 위해 함께 나서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이런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희망을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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