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별법은 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2014. 8. 3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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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기 칼럼] '평화는 정의의 결과'라고 한 교황의 교훈 새겨야

[미디어오늘 이완기 민언련 공동대표]

"사상체계의 제1 덕목을 진리라고 한다면 정의는 사회 제도의 제1 덕목이다. 이론이 아무리 정치하고 간명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배척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듯이,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정연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정당하지 못하면 개혁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전체 사회의 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갖는다." 존 롤즈는 그의 역저 <정의론>에서 '정의'를 이렇게 설파했다.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을 해 왔던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지난 28일 46일 동안 이어왔던 단식을 중단했다. 하지만 특별법 논쟁은 수그러들지 않고 국민 전체로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논쟁에서 여당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 대한민국 법체계를 흔드는 일이라며 거부해 왔다. 하지만 존 롤즈는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정연하게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의롭지 못하면 개혁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고 했다.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청와대는 응답하라,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대회'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세월호국민대책회의

법학자 230명이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여당은 그것이 '형사법 체계'를 흔드는 일이라며 반대를 고집하고 있다. 여기서 헌법과 '형사법 체계' 중에 무엇이 더 우선이고 높은 지위에 있는 지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특검법으로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법보다 상위의 덕목인 정의를 세우기 위해 기존의 법체계와 다른 법의 제정을 거부하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 억지주장이다.

여당은 또 피해 당사자가 수사권이나 기소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논리의 비약일 뿐 아니라 특별법 논점을 왜곡하여 국민여론을 호도하려는 기만적 주장이다. 유가족들이 자신들이 직접 수사를 하거나 기소를 하겠다고 권리를 요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검사든 변호사든 판사든 아니면 법학자든 유가족들이 추천하는 피해 당사자가 아닌 제 3의 법조인이 진상조사위에 참여해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정부가 현재 처해 있는 입장과 지금까지의 태도를 반추해 볼 때 매우 합당한 주장이다. 정부는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인명구조를 방기함으로써 참사로 이어지게 한 가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해방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권력형 범죄가 있었지만 성역 없이 공평무사하고 철저하게 수사하여 그에 합당한 징벌을 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해 본 경험을 우리는 단 한 번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번 세월호 참사를 가져왔고 그래서 뼈를 깎는 아픔이 있더라도 이런 악의 쳇바퀴에서 이제는 벗어나자는 것이 이번 참사의 교훈이며 희생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다. 특히 이번 참사는 국정원, 청와대, 대통령까지 진상조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전대미문의 권력형 범죄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여당은 법의 제정은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기관인 국회의 권한이며 그런 차원에서 국회의 여야 합의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회의 권한 행사가 의원들의 머릿수로만 결정될 문제는 아니다. 국민여론과 국민감정에 대한 충분한 토론이 전제되어야 하며 그 중에서도 피해 당사자인 세월호 유가족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그것이 사회정의에 합당한 조치임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국회는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독립된 국회로서의 위상과 권위를 상실한 지 오래다. 오로지 선거에서 승리한 집권 여당과 패배한 야당의 숫자놀음만이 국회의 논의구조를 온통 차지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여와 야의 국회는 청와대의 이중대와 삼중대라는 치욕스런 비난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당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 부여는 전례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법은 절실한 필요에 따라 국민적 합의로 만드는 것이며 최초로 만들어지는 모든 법은 전례가 없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게다가 과거 친일파의 진상조사를 위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은 물론 사법권까지 부여했음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8일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열었던 장면. 사진=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대국민담화에서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면서 '국가개조'를 역설했다. 박 대통령의 이 말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이 나라 최고 권력자인 자신에 대한 책임부분도 분명하게 가릴 수 있는 법을 만들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하며 법체계를 바꾸어서라도 '국가 개조' 수준의 개혁을 위한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박 대통령의 말은 한낱 구두선에 불과하며 "법은 국회가 만드는 것"이라고 발뺌한다면 또 하나의 국민기만일 뿐이다.

사회제도의 제1 덕목은 법도 제도도 아니며 그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율, 전체 사회의 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되어서는 안 되는 '정의'이다. 그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세월호 특별법의 본질이며 진정한 방향이다. 세월호 특별법 논란을 '경제 발목잡기'라고 비난하는 대통령과 여당과 보수언론의 천박하고 무책임한 공격은 이제 거두어야 한다.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고백이야말로 진정한 정의의 외침이다. 이를 위해 싸우고 있는 유가족들을 비난하기 앞서 "평화는 정의의 결과"라고 한 교황의 교훈을 정치권과 보수언론은 새겨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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