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농성장 시민들 "작은 희망 모아 더 나은 세상을"

입력 2014. 8. 22. 06:03 수정 2014. 8. 2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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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이 참사 유족 농성장에서 동조 단식하고 피켓 드는 이유

[CBS노컷뉴스 박초롱·김민재 기자]

비가 세차게 내리던 지난 21일 오전, 주부 황지영(45·여) 씨는 광화문 광장에서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높이 들었다. 비옷 속으로 비가 들이쳐 눈을 잘 뜰 수 없고 팔도 아프지만, 황 씨는 이렇게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이다.

"세월호 참사가 난 뒤로 거의 매일 울었어요. 저녁에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마치 내가 물속에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어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지나가면 막 눈물이 쏟아졌어요"

답답한 마음에 세월호 참사 유족들의 집회 현장을 찾은 황 씨는 몇몇 시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지난 4월부터 유가족들과 함께 주로 홍익대학교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도 받고 홍보도 했다.

"쌍둥이 아이들이 고3이에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참여는 못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이 학교에 서명지를 갖고 가서 반에서 받아온 거에요. 아는 분들 중 용인에 사는 분이 있는데 용인외고 학생들이 찾아와서 서명지를 달라고 해 줬더니 350명 서명을 받아 왔대요"

몸이 고되고 집안 꼴은 엉망일 때가 많다. 하지만 황 씨는 아직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고 말한다.

"특별법에 대해 여야의 입장만 보도하는 언론 때문에 유족들은 '유가족충'이라고 욕을 먹어요. 이런 말 들으면 저희가 집에 돌아갈 수가 없어요. 집에 있으면 마음이 더 아파요"

황 씨는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 정부와 정치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결국 국민의 힘이라며 울먹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예전만 못 하다는 절박감에 마음이 조급하다.

"저희가 나눠드리는 전단이라든지, 유가족들의 뜻을 한 번만 제대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특별법에 대해 오해하고 계시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한 번이라도 제대로 봐 주세요"

오지숙(38·여) 씨는 세월호 참사 직후 '예은 아빠' 유경근 씨와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다. 유 씨가 올린 '우리 예은이, 여전히 예쁘네요. 확인했습니다. 함께 걱정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란 글을 보고 한달음에 빈소로 달려갔다.

"얼떨결에 '뭐라도 해야겠다. 광화문에 가서 피켓이라도 들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가만히 생각하니 못할 것도 없었어요. 다섯 아이를 두고 있어 저녁에 촛불집회를 나올 수는 없지만, 낮 시간에는 가능하겠다 싶었죠"

4월부터 1인 시위를 계속해 온 오 씨에게 동조하는 시민들이 많아지면서 <리멤버0416>이란 모임도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는 정치권에 대한 분노도 함께 늘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특별하거나 어려운' 요구가 아니에요. 많은 사람이 요구하고 목소리를 내면 이 일을 명백히 밝힐 권한이나 책임을 가진 분들이 움직여야 하는데 전혀 아닌 거죠. 그래서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서 진실을 밝히자는 거에요"

오 씨 역시 아이의 성적에 신경을 쓰던 평범한 주부였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오 씨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우리나라는 잘 살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방법뿐이잖아요. 우리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사회가 건강한지가 진짜 내 아이의 행복의 척도란 것을 이번 계기로 알게 된 거죠"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유족들의 의견을 반영한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황 씨나 오 씨 같은 '평범한' 시민이 많다.

이들은 동조 단식에 참여하거나 릴레이 피케팅은 물론 유가족들을 위해 필요한 일들을 도맡기도 한다.

농성장 현장에서 만난 서양화가 강신기(57) 씨는 안동에서 유족들과 함께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3박 4일씩 농성장에서 밤을 새운 것이 벌써 3번째다.

"농성장과 찜질방을 번갈아가며 잠을 자요. 광화문 광장이 차도 한복판이라서 밤새도록 차가 다니고 양쪽 도로에 공사를 하느라 환경이 열악하죠. 여름이라 농성장 안이 온실 같을 정도로 많이 더웠고…"

강 씨도 유가족들의 의견을 반영해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떻게든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가 나서든 단식 멈추게 해주면 좋겠고… 그동안 특검이 수없이 수사를 벌였지만, 한 번도 제대로 해결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을 요구하는 거죠"

직장인 오규석(41) 씨는 농성장을 찾기 위해 회사에 휴가까지 냈다. 농성장으로 나와 세찬 빗속에서 피켓을 들었다.

"정치권이 처음에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하더니 막상 지금은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요, 유가족의 말은 듣지도 않고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저도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유족들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농성을 한다'거나 '대학 특례입학 때문이다'라는 냉정한 시선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진실이 무엇인지 직접 알아보라고 꼭 말하고 싶어요. 주변에 보면 언론의 단편적인 보도나 SNS를 보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거든요"

세월호 참사는 반복되는 고된 삶 속에서도 조금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매일매일 노력하던 서민들의 희망을 짓밟았다고 농성장 시민들은 말한다.

하지만 이들이 세월호 참사 유족 농성장에 나와 힘을 보태는 이유 역시 '희망'때문이다.

"잊지 말아야죠. 우리들의 일이고 언제든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광장에 나온 나 자신이 작은 희망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은 희망들이 이렇게 하나하나 모이다 보면 언젠가는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절망하지 않은 나 자신이 희망이 되어 보려고 해요"

CBS노컷뉴스 박초롱·김민재 기자 warmheartedc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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