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 잘해줄 테니 떨어져라? '세월호' 손털기 나선 새누리

박송이 기자 2014. 8. 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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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정치적 양극화' 이용해 국민 분열작전 '특별법' 물타기…

절실함 없는 야당 적당한 선에서 절충 가능성, 유가족들 실망ㆍ불안감 커져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전인 지난봄,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근혜 정부 지지율의 비밀: 정치적 양극화'(황해문화 봄호)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지난 대선 이후 박근혜 정부의 높은 지지율의 '비밀'은 '정치적 양극화'에 있다는 분석이다. 세대별로는 40대 후반 이상이, 사회·경제적으로는 지위가 낮을수록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높다는 내용이었다. 장 교수는 이 지지율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지만, 몇 가지 조건이 발생하면 지지율은 무너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건 중 하나가 국민들의 눈앞에 '국가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무능하고 부패하다는 것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이러한 일은 쉽게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새정치 참패에 유가족들 동력상실 우려

일어나기 어렵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얼마 후 벌어졌다. 세월호 참사다. 세월호 참사는 국민들의 눈앞에 국가의 무능과 부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하지만 장 교수의 추론과는 달리 7·30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은 승리했다.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은 무너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박근혜 정부는 정부 초기부터 세월호 참사까지 '정치적 양극화'를 이용한 전략을 썼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그 전략을 쓰기가 어려워졌다. 새누리당도 선거전략에서 정치적 양극화를 이용한 박근혜 마케팅을 쓸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쓸 수 없는' 상황을 '쓸 수도 있겠다'는 상황으로 바꾼 건 야당의 공천이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새누리당이 '일상으로 돌아가자'나 '특별법 특혜 의혹' 등을 자꾸 흘렸는데, 야당의 공천잡음을 분기점으로 해서 다시 정부·여당의 '정치적 양극화' 전략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장덕진 교수의 말이다.

7·30 재·보선 결과 야당은 참패했다. 가뜩이나 세월호 특별법 앞에서 꿈쩍도 안 하던 새누리당에는 더 힘이 실렸다. 세월호 특별법은 더 심해진 힘의 불균형 앞에 서게 됐다. 유가족들은 실망했다. 세월호 유가족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어쨌든 새정치민주연합이 우리를 많이 도와준 편인데, 선거 결과 힘을 잃었고 우리도 더 힘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야당이 크게 패하는 바람에 같이 나갈 방향이 힘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국민대책위의 관계자도 불안함을 털어놓았다. "새정치연합이 선거에 참패하고 나니 기대치가 많이 무너진 느낌이다. 정치가 여론과 국민에 의해서 힘이 나오는 것인데, 국민적 지지가 새누리당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나니 새정치연합이 정치적으로 힘이 있겠느냐는 불안함이다."

송기춘, 한상희, 이호중 교수 등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전국 법학자들이 7월 28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선언에 동참한 229명의 법학자들은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법체계 교란 주장은 법적 근거가 없는 비합리적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정지윤기자

유가족들의 불안은 당장 현실화됐다. 새누리당의 정치적 기획은 '정치적 양극화'의 노골화다. 이 기획은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내는 것이다. 김정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정부·여당의 이러한 통치전략을 '두 국민 프로젝트'에 빗댔다. '두 국민 프로젝트'는 권력이 일부 인구만을 선택적으로 동원하는 전략이다. 친구가 될 수 있는 국민(좋은 국민)과 적이 될 수 있는 국민(나쁜 국민)을 변별하고, '좋은 국민'에게는 혜택과 유인을 제공하고 '나쁜 국민'에게는 강제와 억압으로 그들의 저항에 대처하는 것이다.

법학자들 "특별법, 법체계 교란 근거 없다"

새누리당의 '두 국민 프로젝트'는 가장 먼저 유가족을 파고들었다. 8월 1일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당 차원의 세월호피해자지원특위를 구성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유가족들과 접촉을 통해서 재·보선 전보다 전향적·적극적으로 피해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갖고 가겠다"면서 "유가족이 동의하면 새누리당 의원 158명 전원을 대상으로 유가족이 원하는 의원과 일대 일 면담을 통해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특별법에 관해서는 유가족들과 소통창구를 아예 닫아버렸던 새누리당이 보상·지원책에는 문을 활짝 열어놓은 셈이다. 보도를 접한 유경근 세월호 유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유 대변인은 "결국 보상 충분히 해줄 테니 먹고 떨어지라는 뜻인가" "게다가 유가족들을 분열시켜보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가속화되는 새누리당의 '정치적 양극화' '두 국민 프로젝트'에 대응하는 새정치연합의 정치적 기획은 있는가. 힘의 크기에서 밀린다면 절실함의 강도라도 높아야 한다. 그러나 선거 전에도 절실함은 없었고, 선거 후에는 더욱 보이지 않는다. 선거 전날, 새정치연합의 한 전략통은 세월호 특별법에 두 대표가 의지가 없다고 말했다. "세월호 특별법은 가치의 문제다. 그러나 지금 두 당대표는 이를 당대표 선거, 대통령 선거의 유불리로 판단하고 있다. 당대표 차원에서 같이 단식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건 싸움이 크게 붙어도 될까 말까한 문제인데 뜨뜻미지근하게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뭐했는지 등 청와대와 관련한 의혹도 한두 개가 아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모두 쏟아져나오도록 크게 부딪쳐야 하는 건데, 되면 하고 안 되면 말고 하는 식의 태도다. 그래서는 해결이 안 된다." 선거국면에서 새누리당은 물론 정치권 밖에서도 새정치연합이 세월호 참사를 선거용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는 지적이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민교협 사법개혁위원장인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까지 세월호 이슈로 새정치연합이 유가족들과 소통한 것은 선거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 한 것으로 본다. 선거가 끝나면 새정치연합은 적당한 선에서 새누리당과 합의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특별법을 마무리하는 국면으로 갈 가능성이 커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한길 공동대표와 박영선 원내대표 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7월 2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세월호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세월호 참사를 풀어낼 결정적 구심점은 특별법이다. 7월 28일 법학자 230명은 세월호 진상조사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꼭 필요하며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사법체계 교란은 근거가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호중 서강대 교수는 "전국에 1500명 정도의 법학자가 있는데 이들 중 230명이 성명을 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비율로는 적을지 몰라도 전국적인 규모에서 230명의 서명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법학자들과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학자도 법리적인 내용이 아니라 '세월호 사건이 특별법을 제정할 만큼 특수한 사건이냐'는 데 대한 입장차이 정도였다"고 말했다. '사법체계 교란'을 이유로 반대하던 새누리당이 법적 논리에 막히자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하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이다.

세월호 유가족대책위·국민대책위는 이러한 새누리당의 논리에 당장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만, 새정치연합 측의 법안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유가족대책위에서 내놓은 국민청원법안은 진상조사위원회가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측은 야당이나 진상조사위원회가 특검 추천권을 갖는 특별검사법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유가족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사실 새정치연합의 안은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민 다수가 여전히 '특별법'에 찬성

국민대책위 관계자에 따르면 선거 전날 새정치연합 측은 유가족대책위 측에 새정치연합 법안에 유가족이 합의를 해주면 세게 밀어보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 이 관계자는 "유가족들이 그 자리에서는 정확하게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지만, 돌아와서 이야기를 나눴을 때 전체적인 의견은 새정치연합 안인 특검으로 가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이 새정치연합의 특검안에 난색을 표하는 것은 특검은 진상규명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호중 교수는 "새정치연합 안은 진상조사위원회를 특검과 분리하고 특검이 수사권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특검과 진상조사위원회를 분리하면 진상조사위원회는 사실 허수아비가 돼버린다. 어느 정부기관이 거기다 자료를 제출하겠나. 진상조사위원회는 절름발이가 돼버리는 것이고 모든 진실규명은 특검 수사에 의존하게 되고, 특검은 또 수사기밀이나 이런 것을 이유로 외부와는 단절된 폐쇄적인 구조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독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가 아니면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 원인부터 간접적 원인까지 하나하나 파헤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검사는 수사기관이라 범죄가 될 수 없는 것은 손을 댈 수가 없다. 검사는 진상규명이 아닌 오로지 형사법상 불법이고 개인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는 문제에만 손댄다. 문제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기도 어렵다. 예컨대, 증·개축에 대한 문제만 봐도 뇌물을 받았거나 과실이 명백하다면 검찰이 잡아낼 수 있겠지만, 안이한 판단이 관행화되어 있지만, 형법상 과실이라고까지 하기 어려운 문제는 손댈 수 없다. 하지만 진상규명은 이런 모든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법안의 차이에 대해 새정치연합 측 관계자는 "유가족들과 같이 보조를 맞추고 싶어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협상과정에서 밀고 당겨야 하기 때문에 유가족들에게 부족할 수도 있다. 또 우리는 우리대로 부족하더라도 다른 쪽 대안을 제시하고 싶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선거 이후 새누리당은 '정치적 양극화'를 통해 '탈세월호'를 가속화하고 있다. 선거 결과에 따른 착시를 이용한 것이다. 여전히 세월호 특별법을 지지하는 여론은 높다. 7월 17일 사회동향연구소가 발표한 여론조사는 응답자의 58%가 '독립적인 수사권, 기소권 부여'에 찬성했다. 새누리당의 주장에 따라 '사법체계 훼손'을 이유로 반대하는 응답자는 33.5%에 그쳤다. 8월 1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사고의 원인과 책임이 얼마나 밝혀졌다고 보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부분+어느 정도) 밝혀졌다'는 31%에 그쳤고, '(별로+전혀) 밝혀지지 않았다'는 응답이 64%였다. 특히 연령별로 20대에서 50대까지는 원인과 책임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의견이 70%에 육박했다.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줘야 한다'는 의견도 '주지 말아야 한다'(24%)의 두 배가 넘는 54%였다.

여전히 다수의 국민들이 세월호의 진상규명에 동의하며 수사권·기소권을 갖는 세월호 특별법에 찬성하고 있다. 힘의 크기가 균형을 잃었다면 절실함의 강도라도 높아야 한다. 이는 지금이라도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새정치연합의 강도 높은 정치적 기획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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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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