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독면 쓰고 자라, TV시청 열외 .. 흔적 없는 '정신적 구타'

천권필 2014. 8. 5.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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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 사망 후폭풍]'병영 개선' 비웃는 신종 가혹행위한여름 이불 보쌈, 싫은 음식 강요신체 접촉 없이 교묘하게 괴롭혀뺨때리기·욕설·성추행도 여전

"한여름에 이불을 목 끝까지 올려 덮게 하고 일찍 취침을 시켰다. 이불 속에서 움직이기만 해도 욕설이 난무했다."

 최근 군을 전역한 정모(24)씨의 경험담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는 "땀띠가 너무 많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선임병들이 이불 위로 때리니 멍도 잘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군이 잇따른 구타·가혹행위 근절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병영 내에선 교묘한 후임 길들이기 방식이 판치고 있다.

 물리적 접촉은 없는 대신 인간적 모멸감이나 소외감을 느끼도록 하는 신종 가혹행위 수법들도 등장하고 있다. ▶밥에 물을 말아 먹이거나 싫어하는 반찬을 몰아주고 다 먹게 하기 ▶TV 시청시간에 혼자 벽 보고 앉아 있게 하기 ▶선임병 근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게 하기 ▶체육이나 작업시간에 열외로 왕따 시키기 등 고통을 주는 방법도 다양했다. 예비역 병장인 김모(21)씨는 "물리적인 구타는 줄었다고 하지만 가혹행위는 없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데 그걸 막을 수 없다"며 "밥 먹을 때 특정 메뉴를 못 먹게 하거나 은근히 따돌림을 시키거나 사역을 특정인에게 몰아주는 식으로 티가 나지 않게 후임을 괴롭힌다"고 했다. 박모(28)씨는 "잠잘 때 코 고는 소리가 크다고 방독면을 씌우는가 하면 불침번을 시켜서 못 자게 계속 깨우라고 시켰다"고 토로했다.

 예비역 병장 이모(22)씨는 "아직까지도 계급별로 차별이 남아 있다"며 "신병은 비누를, 이병은 샴푸를 못 쓰게 한다거나 상병 이상만 로션을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소규모 부대보다 대규모 부대에서 병사를 관리하기 힘든 곳일수록 부대원들 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잔혹한 폭행과 가혹행위도 여전하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군 인권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강원도 철원의 모 부대 소속 A 일병은 선임들이 6개월간 지속적으로 뺨을 때리고 머리 박기를 시키는가 하면 욕설과 성추행을 반복했다고 인귄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B씨(28)는 "군 복무 중 선임들에게 몽둥이와 전투화로 머리 등을 폭행당했고 거의 매일 욕설과 가혹행위,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며 "전역 후에도 폭행에 대한 악몽과 불안증세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정신장애를 갖게 됐다"고 호소했다. C씨(26)는 "복무기간 중 선임자에게 속옷을 자주 갈아입지 않는다고 엎어치기를 당해 이가 2개 부러지는 등 거의 매일 2~5회 가혹행위 및 폭행을 당했다"고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선임병이 잘 때 자기 침낭으로 들어오라 하고 여기저기를 만져 수치심을 느꼈다"는 성추행 증언도 나왔다.

 육군은 2003년 각 부대에 하달한 '병영생활 행동강령'을 통해 분대장을 제외한 병사들끼리는 서로 명령을 하거나 지시, 간섭을 할 수 없도록 했다. 2005년에는 '가고 싶은 군대, 보내고 싶은 군대'를 구현하겠다며 야간 점호를 없애고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받는 병사에 대해서도 현역복무 부적합 판정을 내려 보충역으로 재배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육군이 지난 4월 전 부대를 대상으로 병영 부조리 실태 조사를 한 결과 3900여 명이 가혹행위에 가담하는 등 병영 내 부조리가 여전히 심각하다고 밝혔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구호처럼 나오는 대책들이 공염불이었던 셈이다.

 군 조직의 속성을 감안할 때 군대 안의 폭행·가혹행위를 없애기 위해선 피해를 양성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대표 대표는 "폭행사건이 발생하면 지휘관부터 문책하려 하니까 지휘관은 일단 숨기려고 하는 것"이라며 "부대 내 구타나 가혹행위를 적극적으로 적발하는 지휘관에게는 책임을 경감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권필·정원엽 기자

[사진 김경빈 기자,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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