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부패 주검 낱낱이 공개 불신 정부·의혹 사회의 '민낯'

2014. 7. 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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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국과수 검시 결론은 '사인 불명'

잘린 손가락 등 여과 없이 노출

여론 의식 신원 확인 설명 장황

"불신과 의혹 악순환 사회병리불투명한 국정 운영 근본 원인"

'날것 그대로의 대한민국'이다.

25일 오전 시민들은 선명한 고화질로 생중계되는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의 주검과 훼손된 신체를 지켜봐야 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죽음과 그의 신체 사진이 적나라하게 공개된 전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유씨 주검 검시 결과를 발표한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원장은 "국민적 의혹 해소와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 회복, 나아가 사회통합에 작은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는 거창한 '서론'으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부패한 살과 밖으로 드러난 뼈를 노골적으로 보여주지 않고는 적나라한 무능으로 일관하는 정부와 검찰·경찰 등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을 감당할 수 없었던 탓이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과수 서울연구소 대강당을 비추는 텔레비전 화면은 유씨의 주검 사진을 피해가지 않았다. 주검을 정밀 검시한 국과수는 이날 '사인 불명'을 선언하면서도 유씨의 주검 자료를 여과 없이 노출했다.

서 원장은 "원래 감정 자료나 사진은 공개하지 않지만 사건의 엄중함에 따라 법적으로 문제없는 부분을 발췌해 공개한다"고 먼저 양해부터 구했다. 30여분 가까이 진행된 공개 브리핑에는 지난달 12일 발견될 당시의 유씨 주검 사진, 이튿날 이뤄진 1차 부검과 지난 22일부터 진행된 2차 부검 당시 사진들이 신체 부위별로 공개됐다. 살 밖으로 드러난 하얀 뼈와 말라붙은 근육 등 생체 조직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입천장이 꺼멓게 변해버린 치아 사진, 지문 확인을 위해 잘려나간 유씨의 손가락 5개도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이렇게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현상은 어디에서 왔을까? 검찰·경찰 등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서 원장은 "유씨 주검 감정에 대해 국민들이 가지는 각별한 관심과 궁금증, 그리고 세간에 떠도는 의혹을 다소 해소시켜드리기 위해 수사기관의 요청과 협의에 의해 결과를 직접 발표하게 됐다"고 했다. 살아있는 유씨를 눈앞에 두고도 놓친 검찰, 죽은 유씨를 40일 동안 못 알아본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현재 바닥이다. 그래서 통상 이들 기관이 맡아왔던 신원·사인 발표를 하는 수 없이 국과수가 대신하게 됐다는 설명인 것이다.

과거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등을 통해 유죄의 증거로 쓰였던 국과수 감정이 부정당한 사례도 이례적인 주검 공개를 선택하게 된 배경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날것 그대로를 보여줘도 의혹과 음모론은 가라앉지 않고 여기저기서 확대재생산된다는 점이다. 이를 의식한 듯 국가기관인 국과수 브리핑에 참여한 민간 법의학 전문가들은 "국과수 발표에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종태 대한법의학회 회장은 "(국과수 발표 뒤에도) 또 논란과 의혹이 생긴다면, 그것은 의혹 제기자들의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문제로 귀결시킬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진단한다. '정부 등 국가기관이 불신을 자초해 의혹을 낳고, 그 의혹이 다시 불신을 증폭·재생산하는' 한국 사회 특유의 병리적 현상을 짚은 것이다. 황준원 강원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사건의 객관적 실체를 정부가 주도적으로 밝혀내는 과정을 시민들이 별로 경험해보지 못했다. 과거사 문제 등을 두고 진실이 뒤바뀌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몇십년 동안 억눌렸던 '불신의 무의식'이 지금도 계속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불신사회'로 규정하게 되면 불신의 주체도 시민, 불신의 원인도 시민에서 찾는 문제가 발생한다. 불신 증폭의 원인이 뿌리 깊은 기득권 구조 속에서 이어져온 투명하지 못한 국정운영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영란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도 "지도층의 이중적 행태 등 우리 사회에서 '신뢰 기제' 자체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했다.

송호균 이재욱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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