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코 앞에서 놓친 檢, 왜?

박준호 입력 2014. 7. 23. 22:34 수정 2014. 7. 2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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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뉴시스】박준호 기자 = 검찰이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을 바로 코 앞에서 놓치는 결정적 실수를 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검찰이 전남 순천의 '숲속의 추억' 별장을 수색할 당시 유 전 회장은 별장 내 통나무 벽장안에 숨어있었지만 검찰은 낌새도 채지 못했다.

검찰이 초동 수사 실패에 이어 경찰과의 수사공조 미흡, 유 전 회장 시신 관리 소홀 등 잇따른 '실책'이 도마에 오른 가운데 다시 한 번 검찰의 수사력 부재 논란이 일고 있다.

◇금수원 압수수색 당일 몰래 빠져나와…순천 별장서 장기 도피 준비

23일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에 따르면 유 전 회장은 검찰의 압수수색 당일인 지난 4월23일 새벽 금수원을 먼저 빠져나와 개인비서 신모(33·여)씨의 자택에서 열흘 정도 은신했다. 이어 5월3일 밤 전남 순천 송치재 휴게소 인근 '숲속의 추억' 별장으로 은신처를 새로 옮겼다.

당시 '다판다' 송국빈 대표의 구속과 맞물린 시점으로 검찰은 유 전 회장이 순천에 있는 숲속 별장에서 장기적인 도피 생활에 돌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사이에 검찰은 유 전 회장의 소재 파악이 안되자 금수원을 찾아가 직접 면담을 요구했지만 문적박대 당했고, 5월21일 금수원 압수수색에 이어 다음날 곧바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작전에 들어갔다.

검찰은 5월24일 밤 11시께 순천에서 추모(60)씨를 체포한 데 이어 25일 자정을 넘긴 0시30분께 경기 안성지역에서 한모(49)씨를 체포했다. 같은 날 새벽 1시20분께 송치재휴게소 인근 S염소탕 식당을 압수수색해 변모(61)씨와 정모(56·여)씨 부부를 체포했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체포한 4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씨로부터 "숲속의 추억 별장에서 유병언 회장을 본적이 있다"는 진술을 얻어냈다.

검찰은 별장을 급습했지만 문이 잠겨 있자 정식으로 영장을 발부받아 5월25일 오후 9시30분부터 11시20분까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이 종적을 감춘 것으로 간주하고 신씨만 범인도피 혐의로 별장에서 체포했다. 검찰은 밤 늦게 별장 수색을 마친 뒤 신씨를 인천지검으로 압송해 조사에 착수했고, 이어 다음날인 26일 오전에는 전남경찰청에 의뢰해 별장에 대한 정밀감식을 실시했다.

◇女비서, 묵비권·진술 바꿔가며 혼란 부추겨…검찰은 '속수무책'

신씨는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횡설수설을 하며 검찰을 교란했다.

검거 당시에는 자신을 경기도 안성에 거주하는 미국 국적의 구원파 신도라며 요양차 구원파 '엄마'와 함께 별장에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로지 영어로만 대답하며 미국식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 영사를 불러줄 것을 요구하는 등 간혹 횡설수설을 하며 검찰의 시선을 분산시키거나 검거 작전을 지연시켰다.

신씨는 검찰조사에서도 진술을 여러차례 번복했다.

유 전 회장과 도피 중인 사실을 처음에는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이 관련 증거물을 내세워 추궁하자 유 전 회장과 함께 도피생활을 해왔던 사실만 시인할 뿐 미국식 묵비권행사를 고집했다.

그러다 신씨는 5월28일 진술을 바꿨다. 별장에 혼자 남아있게 된 경위를 묻는 질문에 신씨는 "25일 새벽 잠을 자고 있는데 인기척이 나서 눈을 떠보니 성명불상의 남자가 유병언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다시 잠이 들었다 깨보니 유 전 회장이 혼자 사라지고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를 믿은 검찰은 유 전 회장이 5월25일 새벽에 신원미상의 조력자의 도움으로 별장을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신씨는 한 달여만인 지난달 26일 다시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5월25일 당시)수사관들이 별장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며 열려고 하는 소리가 들려 유 전 회장을 2층 통나무 벽안에 있는 은신처로 급히 피신시켰고 나중에 수사관들이 수색을 마칠 때까지 유 전 회장은 은신처(통나무 벽장) 안에 숨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뒤늦게 다음날 일찍 순천 별장 내부를 수색해 2층에 위치한 통나무 벽장을 확인했지만 이미 유 전 회장은 그 곳을 떠나고 없었다. 통나무 벽장 안에는 유 전 회장의 도피자금으로 추정되는 현금 8억3000만원과 미화 16만 달러가 각각 따로 들어있는 돈 가방 2개만 발견됐다. 검찰이 유 전 회장을 검거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린 꼴이다.

◇구원파 '해남 교란' 작전에 속아 순천 별장 '無관심'

검찰이 유 전 회장이 은둔한 것으로 추정하는 은신처 중 가장 정확하게 지목한 곳이 전남 순천에 위치한 '숲속의 추억' 별장이다. 유 전 회장의 행적을 가늠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는 장소였지만 검찰은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진 않았다.

검찰은 순천 별장 대신 해남지역 검거활동에 주력했다. 유 전 회장이 별장을 빠져 나와 해남으로 도주한 것으로 오판한 것이다. 검찰이 이 같은 결론을 내린 데에는 구원파가 해남지역에서 벌인 '교란작전'이 한 몫 했다.

검찰은 지난달 8~9일 별장 주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금수원 이석환(65) 상무 명의의 스타렉스 승합차가 5월30일 별장 부근을 지나간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놓고 검찰은 유 전 회장이 인근 지역으로 도피처를 옮기자 금수원 안에 있는 신도들이 도피물품을 전달해주거나 유 전 회장을 다른 장소로 다시 옮기려한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로 구원파는 5월30일 새벽 3시께 스타렉스 승합차와 포터 화물차를 금수원에서 해남 쪽으로 이동시켜 마치 유 전 회장을 태운 차량인 것처럼 교란했다.

스타렉스는 순천을 우회해서 해남으로 진입해 마치 유 전 회장의 은신처에 도피물품을 전달하는 것처럼 속였다.

포터 화물차의 화물칸에는 짐이 가득 실려 있어 유 전 회장이 순천 별장에서 은신에 필요한 물품이 모두 압수당하자 새로운 도피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물건을 해남에 싣고 가는 것처럼 위장했다. 이 화물차가 해남에서 금수원으로 돌아올 때에는 실제로 화물칸에 실려있던 짐이 사라져 검찰은 유 전 회장이 해남지역에 새로운 은신처를 마련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구원파 신도들은 해남에 위치한 우정영농법인에서 매실을 수확한 것이라고 진술했고 추후 금수원 관계자가 검찰조사에서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교란활동이었다"고 시인했다.

결국 검찰은 유 전 회장의 은신처인 '숲속의 추억'을 놔둔 채 해남지역에서 '없는' 사람을 찾아 헤매며 시간을 허비했다. 해남에서 유 전 회장을 찾지 못한 건 당연했다.

pj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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