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말레이시아機 격추와 푸틴의 책임

기자 2014. 7. 2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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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남/국립외교원 교수·러시아정치

우크라이나 내전과 전혀 상관없는 말레이시아 항공기(MH-17)가 친(親)러시아 반군이 발사한 것으로 보이는 미사일에 격추돼 탑승객 298명이 전원이 숨졌다. 현재까지 사상 최대의 사망자를 낸 민항기 피격 사건이다. 탑승객은 대부분 유럽인들로, 휴가철을 맞아 동남아로 여행을 가던 사람들이었다.

말레이시아 항공기의 미사일 피격은 1983년 9월 사할린 인근에서 발생한 KAL-007 피격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KAL-007이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소련 영내로 진입했다가 미국 정찰기로 오인돼 소련 전투기에 격추됐다. 당시까지 사상 최대의 사망자(269명)를 낸 민항기 사고였다. 개인적으로 미국 유학 시절 학교 아파트 옆 층에 살다가 KAL-007을 타고 서울을 거쳐 방콕으로 금의환향하던 태국인 박사 부부와 외동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KAL-007의 피격은 1979년 12월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후 날로 심해지던 미·소 냉전의 비극적 산물이었다. 이번 말레이시아 항공기 피격 사건도 본질적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와 미국·EU 간 세력 경쟁 또는 고조된 '신냉전'의 비극적 산물이다. 우크라이나 대외정책에 러시아와 미국·EU가 개입해 유혈 충돌 시위가 발생했고, 친서방 정부가 들어섰다. 이번 민항기 피격 사건도 5월 말 대선에 승리한 페트로 포로셴코 정부가 대대적인 반군 소탕작전을 전개하면서 코너에 몰린 반군들이 러시아제 미사일로 무장해 제공권 방어를 위한 작전 중에 발생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지정·지경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독립 후 지난 23년 간 러시아 대 미국·유럽연합(EU) 간 세력 경쟁의 장이었다. 미국과 EU는 우크라이나를 대러 견제를 위한 교두보로 만들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예를 들어, 2004∼2005년에 우크라이나의 시민혁명을 지원해 친서방 정부를 출범시켰고 나토(NATO) 가입을 추진했다. EU도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의 발단이 된 이스턴 파트너십을 2009년 출범시켰다. 러시아는 미국과 EU의 옛 소련 지역에 대한 세력 침투에 대응해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관세동맹을 출범시켜 우크라이나를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 왔다.

러시아와 서방 세계의 전략적 이익이 충돌하는 지역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사태의 해결은 유라시아의 안정은 물론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우크라이나 정부는 자국이 처한 전략 환경을 고려해 러시아와 서방 세계에 대한 '실리 추구의 균형정책' 또는 '핀란드식 중립주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러시아와 서방 세계도 우크라이나를 '완충지대' 또는 '공동 협력지대'로 인정하면서 상대방의 전략적 이익을 존중해야 한다. 이번 항공기 피격 사건은 푸틴 정부로 하여금 서방 세계와 공존이냐 또는 대립이냐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푸틴의 선택은, 이 두 가지 선택의 중간 지점에서 크림 반도의 합병 기정 사실화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 행사의 지렛대를 확보하는 선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마무리하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향후 국제 정세는 극단적인 신냉전 시대로 회귀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이미 취해진 대러 제재로 엄청난 경제·외교적 피해를 보고 있으며, 국내적으로 타협론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과 EU도 이란 핵, 이라크·시리아 사태 등 산적한 국제 현안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명분보다는 실리가 중요시되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 정부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정책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국제법 존중 원칙과 인도주의를 견지하면서도 지나친 명분론에 치우친 정책은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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