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은 왜 '골든타임' 놓쳤나

2015. 6. 1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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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응급실 넘어 외래진료 환자까지, 1차 감염자 입원한 병원보다 많이 나와… 최초 진단해놓고도 힌트 놓치고, 보건 당국은 병원 실명 공개 등에서 '눈치보기' '감싸주기'로 전국 확산 부추겨

지난 사흘은 악몽 같았다. 꿈처럼 멀게만 느꼈던 메르스 공포가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6월9일 아침, 30대 직장인 A씨는 몸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미열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으슬으슬 떨렸다. 전날 과음한 탓이려나. 평소처럼 출근해 책상 앞에 앉았다. 문득 어떤 단어가 머리를 스쳤다. 삼성서울병원! 메르스 '제2의 진원지'라며 시끄러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러고 보니 5월27일 응급실에 입원한 친지를 병문안하러 그곳에 다녀왔지. 열흘 이상 지난 기억을 더듬었다. 불안한 마음에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5월27일이면 '슈퍼 전파자'라는 14번 환자가 응급실에 입원했던, 하필 바로 그날이었다. 친지의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지도, 보호자도 6월6일과 7일 각각 메르스 양성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그때에야 들을 수 있었다. 삼성서울병원도, 질병관리본부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가 메르스 확진자와 3시간가량 접촉했다는 사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중교통 이용

5월27~28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폐암 치료를 받다가 숨진 ㄱ씨의 아들과 매제는 6월7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질병관리본부나 삼성서울병원에서'자가격리' 대상이라는 안내 연락조차 받지 못했다.

삼성서울병원 이름이 공개된 시점은 6월7일. 주말에 1박2일 회사 워크숍을 다녀오느라 뉴스를 챙겨보지 못했다. 부랴부랴 회사에 상황을 설명하고 집에 돌아가 보건소에 신고했다. 다음날 지역 보건소를 제 발로 찾아가 검사를 했다. 부모님께 옮길까봐 집에서도 마스크를 끼고는 방 안에만 틀어박혔다. 6월11일 오후 나온 1차 검사 결과는 다행히 '음성'. 특별한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흘 만에 악몽에서 깨어났다.

A씨만 '깜깜'했던 게 아니다. 5월27~28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폐암 치료를 받다가 숨진 ㄱ씨의 아들과 매제는 6월7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질병관리본부나 삼성서울병원에서 '자가격리' 대상이라는 안내 연락조차 받지 못했다. 발열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평소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회사에 출근하고 KTX 등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메르스에 노출된 환자, 의료진 등 893명을 추적 관리하겠다고 밝혔지만, 곳곳에서 구멍이 숭숭 뚫린 셈이다. 환자 이외에 A씨와 같은 보호자, 방문자 규모는 추산조차 안 된다. 또 감염 위험 지대는 응급실을 넘어 외래진료 환자(확진자 115번)로까지 넓어졌다. 5월27~29일 삼성서울병원을 거쳤던 사람이 지나는 자리마다 폐허다.

6월12일 현재, 삼성서울병원에서 14번 환자에 노출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만 60명에 이른다. 전체 확진자 126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삼성서울병원에서 나왔다. 중동에서 메르스에 감염된 1번 환자가 입원했던 경기도 평택성모병원 확진자 36명(28.8%)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표1 참조). 삼성서울병원 관련 확진자 수는 3명(6월9일)→10명(6월10일)→10명(6월11일)→3명(6월12일)으로 잠복 기간(최대 14일) 마지막 날인 6월12일이 되자 수그러드는 추세다.

하지만 삼성서울병원에서 왜 메르스 '폭탄'이 터졌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보건 당국은 '제1차 진원지'인 평택성모병원의 경우엔 정밀 역학조사를 벌여 환기구 없는 병실, 손잡이와 에어컨에서 발견된 메르스 RNA 등을 메르스 전파 원인으로 꼽았지만, '제2차 진원지'이자 최대 진원지인 삼성서울병원에 대해서는 뚜렷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국내 최고 시설을 자랑하는 3차 종합병원이다. 더구나 송재훈 병원장은 감염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출신의 윤순봉 사장이 '경영인'으로서 총괄하는 삼성의료원 산하 3개 병원(삼성서울병원·강북삼성병원·삼성창원병원)의 핵심이기도 하다.

4명 확진 이틀 뒤에도 집단 발병 몰랐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5월27일부터 6월12일까지를 크게 네 시기로 나눠, 삼성서울병원과 보건 당국이 메르스 확산을 방어할 '골든타임'을 놓치고 어떻게 사태를 키웠는지 되짚어본다.

5월27~29일

5월27일 오후, 14번 환자(35)가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다. 평택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남부버스터미널에 도착한 그는 호흡곤란 증상 때문에 구급차를 타고 삼성서울병원에 왔다. 그는 밭은기침을 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세균성 폐렴으로 진단했다. 삼성서울병원은 5월20일 바레인을 여행한 1번 환자를 응급실에서 진료하면서, 국내에서 처음 메르스를 진단한 병원이다. 그러나 1번은 잡고, 14번 환자는 놓쳤다. "메르스 감염 가능성을 묻는 질문지로 조사했지만, 중동에 다녀오거나 메르스 환자에 노출됐다는 근거가 없었다"(6월7일 삼성서울병원 기자회견)는 것이다.

그 뒤 14번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서 찍은 컴퓨터단층촬영(CT) 사진과 평택굿모닝병원 소견서 등을 삼성서울병원에 제출했다(6월9일 'KBS 뉴스' 14번 환자 아내 인터뷰)는 증언이 나왔다. 그러자 삼성서울병원 쪽은 말을 바꿨다. "14번 환자가 어느 병원을 거쳤는지는 알았으나 평택성모병원에 집단 발병이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다."(6월11일 국회 메르스 대책특별위원회, 정두련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 질병관리본부가 14번 환자 본인에게 1번 환자 노출 가능성을 알려준 5월29일에야 집단 발병을 알았다는 설명이다. 5월20~26일 1번 환자가 입원했던 평택성모병원에선 이미 4명의 확진자(1번 환자와 배우자 포함)가 나온 상태였다.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를 최초 진단해놓고도 '평택성모병원'이란 힌트를 지나쳤고, 보건 당국은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는데도 다른 병원에 관련 정보를 공유해주지 않았다.

14번 환자는 그 뒤 사흘간 응급실에 머물렀다. 입원할 병실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응급실에 내원했거나 입원한 환자만 675명, 14번 환자와 접촉한 의료진 등 직원만 218명에 달한다. '응급실'이라는 공간이 문제였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해 100억원을 들여 응급실을 리모델링했다. 기존 1275㎡(385평) 규모를 1970㎡(600평)로 넓히고, 병상도 58개에서 69개로 늘렸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의학과장 출신인 송형곤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응급센터장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는 하루 환자가 200명씩 온다. 병상을 늘려도 응급실 과밀화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안 된다. 환자가 3차 의료기관으로만 몰리기 때문이다. 빅5 병원 응급실은 다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5월30일~6월3일

5월29일 밤 9시께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메르스 감염이 의심되는 14번 환자를 격리하고, 2시간 동안 응급실을 소독했다. 의무기록과 폐회로텔레비전(CCTV) 등을 분석해서 사흘 동안 응급실을 다녀간 환자, 의료진 명단 893명을 파악했다. 그중에서도 밀접 접촉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자택과 병동에 격리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허점이 있었다. 감염자의 콧물과 침 등을 통해 메르스가 전파된다고 판단해서 '2m 이내에서 1시간 이상 접촉'

한 사람으로 밀접 접촉자 분류 기준을 정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격리 조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이는 134명에 불과했다.

누웠던 검사 침대에서 40분 진료

35번 환자로 불리는 외과의사 B씨도 애초 격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14번 환자와 직접 접촉이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이 CCTV로 확인한 결과, B씨는 14번 환자가 누웠던 검사용 침대에서 다른 환자를 40분가량 진료했다고 한다. 그는 5월31일 고열이 나타나 서울대병원 격리병상에 입원했다. B씨는 14번 환자와 접촉해 감염된 첫 번째 확진자였다. 더구나 의료진이었기 때문에 다른 환자에게 메르스가 전파되는 4차 감염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6월2일 1차 확진 판정이 나왔다. 그러나 삼성서울병원이나 보건 당국은 이같은 사실을 '쉬쉬'했다. 그 사이 응급실을 거쳐갔던 환자와 보호자, 방문자들은 삼성서울병원을 떠나 전국 방방곡곡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이때까지도 삼성서울병원 등 병원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

"삼성서울병원은 응급실을 소독할 게 아니라 폐쇄했어야 한다. 대형 병원이면 대형 병원답게 굴었어야 하는데, 삼성이라는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까봐 혼자 쉬쉬하려고 했던 것 같다. (14번 환자와 겹치는) 사흘 동안 응급실을 거쳐간 사람들도 CCTV를 꼼꼼하게 확인해서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 방문자 수까지 확인해냈어야 한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임상조교수의 지적이다.

6월4~7일

6월3일까지 누적된 메르스 확진자는 30명. 삼성서울병원과 보건 당국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을 시기다. 그러나 삼성서울병원 첫 확진자인 35번 환자 B(의사)씨의 확진 사실은 6월4일에야 공개됐다. 서울대병원으로 격리된 지 나흘, 삼성서울병원 내부적으로 확진을 확인한 지 이틀이 지나서다. 이뿐이 아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삼성서울병원의 전자차트를 보면, 의사 C씨와 간호사 D씨는 6월4일 메르스 확진자로 분류돼 있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이들의 감염 사실을 6월6일에야 공개했다.

더 석연치 않은 대목은 삼성서울병원 실명 공개 시점이다. 보건당국은 평택성모병원의 이름은 6월5일 공개했다. 하지만 국민의 빗발치는 공개 요구에도 삼성서울병원 이름은 6월7일에야 다른 병원 23곳과 함께 공개한다. 삼성서울병원 관련 확진자가 17명이나 나온 뒤에야 '뒷북' 치듯 이름을 공개한 것이다. 그때까지 삼성서울병원은 D병원으로 불렸다.

보건 당국과 병원 쪽의 대처는 굼떴다. 삼성서울병원을 거쳐 메르스가 전파되는 속도보다 느렸다. '슈퍼 전파자 위험 환자 후보군' (6월11일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으로 꼽힌 98번 환자는 6월2~3일 서울 양천구 동네병원에 들렀다가 4~6일 메디힐병원에 입원한다. 5월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지인 병문안차 들렀던 그는 자신이 메르스 전파자가 된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삼성서울병원 이름이 며칠만 일찍 공개됐어도 그는 257명과 접촉하진 않았을 것이다.

"국가가 뚫린 것"이라고 한 감염내과 과장

변혜진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실장은 "삼성서울병원 때문에 병원 실명 공개가 늦어진 것으로 의심된다. 삼성서울병원이 공식 기자회견을 하고 나서 1시간 뒤에 정부가 24개 병원 실명을 공개하는 등 정부의 삼성 감싸주기가 메르스의 전국 확산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6월8~12일

삼성서울병원과 보건 당국은 줄곧 "응급실 밖 감염은 없다"고 강조해왔다. 그런데 6월11일 뜻밖의 확진자가 튀어나왔다. 5월27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정형외과 외래진료를 받은 E(77·여)씨가 115번째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경상남도 창원에 사는 그는 보호자들과 함께 병원에 들러 1층 영상의학과 일반촬영실에서 엑스레이 검사를 받고, 정형외과 진료를 받았다. 응급실에는 들르지 않았다. 병원 진료 뒤 그는 창원으로 돌아가 폐렴 증상을 보여 병원에 입원했다가 질병관리본부 즉각대응팀의 폐렴 전수조사에 걸린 것이다. 그러나 이미 병원 3곳 등에서 563명과 접촉한 뒤였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응급실 근처에 있는 남녀 공용 장애인화장실에서 14번 환자와 동선이 겹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표2 참조).

보건의료단체연합은 6월11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조기에 삼성서울병원에서 발생한 감염과 격리자에 대한 내용을 공개하고 철저하게 관리했더라면 메르스 확산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역학조사는 감염이 발생한 지 열흘 만에야 시작됐고 여전히 의혹투성이다. 지금이라도 병원 전체에 대한 전면적 조사가 필요하고, 역학 조사 결과가 시급히 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메르스 대책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정두련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삼성서울병원이 뚫린 게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다." 14번 환자의 출현을 놓친 까닭을 설명하면서 나온 말이다. 과연 그럴까? 국가도 뚫렸지만, 삼성서울병원도 뚫렸다. 삼성서울병원은 6월12일 "신중치 못한 발언이 나온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병원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었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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