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유가족들 거리로 나설 때 정치는 무엇을 했나

송윤경 기자 2015. 4. 1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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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는 시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해 5월8일 밤, 세월호 가족들은 아들·딸의 영정을 가슴에 안고 청와대로 향하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한 KBS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항의하러 갔다 만나지 못하고 청와대로 발길을 돌린 터였다. 유가족은 종로 효자동에서 다시 경찰에 가로막혔다. 그 순간에도 그들은 말했다. "우리는 시위하러 온 게 아니고 대통령을 뵈러 왔어요."

당시 가족들은 왜 '시위'라는 규정을 피하려 했던 것일까. 지난해 4월20일, 팽목항에 있던 세월호 가족들이 처음으로 서울을 향해 나섰다가 진도대교에서 경찰에게 제지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보수언론엔 "전문시위꾼", "선동"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가족들은 자신들의 외침이 한국사회의 이념지형에 갇혀 시민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할까봐 우려했다.

지난해 4월20일 새벽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실종된 승객의 가족들이 구조 당국의 말바꾸기와 작업 지연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청와대를 목표로 이동 계획을 세운 후 차편을 구할 수 없어 임시 숙소가 차려진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을 출발해 진도대교 방면으로 약 15㎞의 길을 밤새워 걷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 사진

1년이 흐른 지금, 가족들의 바람은 실현되지 못했다. 소셜네트워크 분석업체인 '다음소프트'에 따르면 트위터·블로그에서 올해 3월12일부터 약 한달간 '정치적'이라는 말과 함께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세월호'(3736건)였다. '정치적'이라는 표현은 '정치가 다루어야할 의제'에 대해 쓰기도 하지만 '어떤 이슈가 특정 진영의 이해관계에 활용된다'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세월호) 대책위는 그동안 유족들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좌파를 대변한다는 이미지를 스스로 자초했다"(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지난해 9월29일)는 발언이 정치인 입에서 나온 점을 고려하면, 세월호를 부정적 차원에서 '정치적'이라고 보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디어에선 가족들이 거리에서 1인시위를 하거나 머리에 띠를 두르고 정부를 향해 요구사항을 외치는 모습이 중계된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김모씨(33)는 "가족들의 말에 공감하는 편이지만 자꾸 격렬하게 투쟁하는 모습만 드러나니까 안 좋게 비쳐진다"고 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유족들을 중심에 서게 만든 것은 사태를 책임지고 다뤘어야 할 사람들의 무책임 때문"이라면서 "유권자들이 접하지 못하는 깊이있는 정보를 해석하고 제도적 해법을 내놓았어야 할 정치권에 그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갈등조정·해법제시에 지속적으로 실패하는 한국정치의 후진성이 가족들을 '무대'에 서게 만든 셈이다.

세월호 가족이 이념전쟁의 구도에 휘말리면서 고립되고, 또 대의정치를 통하지 못하고 정부를 향해 '직접' 나서게 된 배경엔 정치권의 무능이 자리하고 있다. 여당은 정부가 책임추궁을 당할수록 '이념'을 끌어들였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전략이 힘을 발휘하는 데 빌미를 제공했다.

4·16가족협의회가 지난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후 가진 세월호 가족 결의 의식에서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이 삭발을 하고 있다. 앞서 기자회견에서 가족협의회는 "정부가 희생자와 피해가족을 돈으로 능욕했다"며 규탄하고 배·보상 절차 전면 중단과 정부 시행령안 폐기, 세월호 선체 인양을 촉구했다. |강윤중 기자

지난해 4월16일은 여·야가 6·4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있던 때 각 당은 세월호 문제로 구설에 오르지 않도록 '경계령'부터 내렸다. 추모 물결이 달아오르기 시작한 지난해 5월과 6월, 세월호 가족들이 특별법 제정 범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하는 사이 여당은 침묵했다. "순수유가족"(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지난해 5월9일), "(청와대 안보실은)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김장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4월23일) 등의 청와대 문제 발언에 여당은 이견을 내놓지 않았다. 당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11%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여당의 '반대항'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일에 집중했다. 6·4지방선거와 7·30재보선에서는 세월호 참사 추모물결에 기대 '정부심판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이 노무현이나 김대중 정권 하에서 일어났다고 해서 이보다 나은 구조 성과가 있었으리라고는 믿기 어렵다. 그야말로 과거부터 켜켜이 쌓인 적폐의 부분이 실제로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허경 한국근현대문화사상 연구소 공동대표)이라는 시선을 새정치민주연합은 외면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적극 수입한 신자유주의·노동 유연화, 노무현 정권 당시에도 계속된 성장중시 정책과 규제완화가 세월호 참사에 미친 영향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대안세력'으로서 거듭나려는 태도를 취하는 '어려운 길'을 택하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태도는 87년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이룬 후에도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을 '민주 대 반민주' 혹은 '선·악'의 구도에 끌어들이려는 습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새정치연합이 대안세력으로서 자신을 드러내려는 대신 박근혜 정권 책임 추궁에만 열을 올릴수록 극우세력은 세월호 가족과 이들과 함께하려는 시민들을 "좌빨", "반정부세력", "세금도둑", "자식 팔아 한 몫 챙기려는 사람들" 나아가 "종북세력"으로까지 매도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정치권이 세월호를 다루는 과정에서 해방 이후 벗어던지지 못한 이념지형을 다시 한번 불러 들였다"면서 "세월호가 일종의 정치게임이 됐다"고 했다. 유가족은 고립돼 가기 시작했다. "한번만 도와달라"는 읍소전략으로 두 번의 선거에 승리한 여당은 국회 밖 극우세력이 만들어놓은 이념구도를 공개적으로 활용하면서 정부를 감쌌다.

새정치연합이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을 주요 프레임으로 띄운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판이 나온다. 김 교수는 "세월호 참사는 대통령의 지난 행적을 가지고 인식공격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면서 "왜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는지를 제대로 드러낼 특별법을 만들고 '척결'을 유도해 가는 것, 즉 대안이 야당 발언의 중심이 됐어야 했다"고 했다. 새정치연합은 정부·여당을 최대한 특별법 제정 협상 테이블로 끌어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음에도 '7시간' 프레임은 기존 지지층만 결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세월호특별법 정부 시행령안 폐기를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세월호 이슈에서 '무책임한 정치권'의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조사를 받아야할 고위공무원에게 조사를 맡기는 시행령안이 만들어지는 등 세월호특별법 취지가 무력화될 상황인데도 정작 법을 만든 국회는 조용하다. 유가족들만 단식을 하고 행진을 벌이며 절규하고 있다. 서복경 연구위원은 "모법(세월호 특별법)의 범위를 넘어서는 시행령을 만든 데 대해 국회의원들이 '잘못됐다. 새 법을 만들겠다' 등 강력하게 이의제기를 해야한다"고 말하지만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에서도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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