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쌍둥이' 오하마나호 현장 점검해보니..

인천 2015. 3. 26.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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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있었다. 세월호와 '쌍둥이'인 오하마나호는 '그날' 이후 인천항 3부두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객실과 일부 시설이 부서진 채 방치돼 폐선(廢船)이나 다름없었다. 6층 조타실에는 뽀얀 먼지가 가득했다. 갑판 위 구명벌에 적힌 점검일자는 2013년 5월이었다. 구명동의가 보관된 사물함에는 '마지막 점검일 2014년 4월 10일'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오하마나호는 26일 세월호 참사 후 처음 외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위원 8명은 오후 1시10분부터 2시간10분가량 배를 둘러봤다.

배 안은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 흔적으로 가득했다. 5층 선장실에는 청해진해운의 로고가 새겨진 회색 점퍼가 걸려 있었다. 4층 가족실 침대는 단원고 학생들이 남긴 마지막 영상에 등장했던 2층 침대와 흡사했다.

객실과 복도 곳곳에 가로 1.5m, 세로 1m 크기의 창문이 보였다. "왜 저 유리창을 깨지 않고…." 세월호 침몰 당시의 안타까운 장면을 떠올린 특조위원들 입에서 짙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이석태 특조위원장은 조타실을 둘러보며 "조타기와 방송장비 사이가 2m밖에 안 되는데… (마이크) 뽑아서 (탈출하라는) 한두 마디 방송만 했다면…" 하며 말을 삼켰다.

조타실 한쪽엔 해양사고가 났을 때 보고 계통을 알려주는 계통도가 걸려 있었다. 첫 번째 보고 대상은 국가정보원 인천·제주지부와 해운조합 운항관리실, 그 다음이 각 해양경찰서와 항만관제실, 해경 수색구조대였다. 청해진해운이라는 회사명과 함께 참사 당시 세월호를 몰았던 이준석 선장의 이름이 적힌 서류가 놓여 있었다.

객실마다 비상 시 탈출요령, 대피경로를 알리는 표지판도 보였다. 권영빈 상임위원은 "표시돼 있는 탈출 경로를 따라 나갔다면 학생들이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4층 객실에서 선수나 선미 갑판까지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5분이 채 안됐다.

특조위에 따르면 오하마나호는 지난 1월 14일 경매를 거쳐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갔다. 배는 고철로 분해되거나 외국에 다시 매각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경남 진해로 옮겨진다는 소식에 특조위는 부랴부랴 오하마나호 현장조사를 계획했다.

전문 조사관 없이 상임위원 2명과 비상임위원 6명만 둘러본 탓에 선박 구조의 문제점을 파악하기는 버거웠다. 권 상임위원은 "특조위 조사 기록으로 남아야 할 부분이 간단한 시찰로 끝나버리고 말았다며"며 "향후 조사관이 채용됐을 때 이 배를 다시 조사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특조위는 이날 제2차 전원위원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직제와 예산 편성에 관련된 시행령이 27일 입법예고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정부를 향해 빠른 처리를 재차 촉구했다. 유가족 추천으로 선정된 이호중 비상임위원(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정부와의 협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부가 더 이상 위원회의 독립성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특조위와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인천=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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