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義人 "지금도 눈감으면 살려달라던 학생들이.."

정우천기자 2014. 10. 22.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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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파란바지의 義人' 김동수씨 법정 진술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소방호스 등을 이용해 승객 20여 명을 구조한 '파란바지의 의인(義人)' 김동수(49·화물기사·제주·사진) 씨의 딱한 사연이 법정에서 공개돼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21일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임정엽) 심리로 열린 세월호 선원 재판 법정에서 김 씨는 오후 5시쯤 자신의 처지와 심경을 진술했다. 이날 오후 재판은 피해자 진술로 진행됐으나 재판장이 방청석에 앉아 있는 김 씨를 알아보고 진술할 기회를 준 것이다.

김 씨는 "지금도 죄책감, 왜 들어가서 학생들을 더 끌고 나오지 못했는가 하는 죄책감에 시달린다"며 "눈을 감으면 살려달라고 창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수면제, (신경)안정제 등 정신과 약이 듣지를 않는다"며 "어제는 굴러 떨어져 죽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한라산에 올라갔다"며 세월호 참사의 또 다른 피해자로 살고 있는 자신의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괴로워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작은딸이 '남들처럼 그냥 나오지 그랬느냐'고도 말한다"고 했다.

그는 "어깨 통증이 심하고 한쪽 손은 힘을 쓰지 못할 정도로 반병신이 됐다"며 "위와 장도 째지고 쓰리고 한다"고 말했다. "병원비도 세월호와 관계가 없다고 해 내가 내야 한다"며 국가를 원망하는 투의 그의 말에선 이 시대 '의인'을 대우하는 사회적 장치가 크게 미흡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는 "세월호 사고 이후 계속 스트레스를 받았던 아내가 얼마 전 종양제거 수술을 했다"며 "세월호가 이렇게 만들었는데 누가 보상해 주느냐"고 하소연했다. 이어 "교회에 가서 '제발 처음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며 "(사고를 안 겪었으면 )내년이면 모든 빚을 갚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법정에 있던 세월호 선장·선원 15명에게는 "피고인들도 아들, 동생, 부모가 있을 텐테, 어느 한 분이라도 옳은 얘기 한 번만 해달라"며 "그렇게 되면 이 일이 끝날 텐데 안 하니까 또 생사람 잡게 된다"고 말했다.

구조에 나섰던 해경에 대해서도 섭섭함을 토로했다. 그는 "해경 어느 분에게 '저기 200∼300명이 있다'고 하자 그분이 '특공대가 진입할거니 걱정 말라'고 했지만, 특공대가 온 뒤에도 학생들을 건져 올리고 실어 보내는 일을 나 혼자 다해야 했다"며 "이것이 국민이 생각하는 해경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씨의 진술이 끝나자 재판장은 "제가 저번에 죄책감 갖지 말고 자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었다. 학생들을 많이 구하셨지 않느냐"고 다독였다.

광주 = 정우천 기자 sunshin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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