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 앞바다 유람선 좌초 110명 전원 구조 "구명뗏목 안 펴져.. 세월호 생각나 눈앞 캄캄"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 해상에서 관광객과 선원 등 110명을 태우고 운항하던 유람선이 좌초하며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승선자는 다행히 전원 구조됐지만, 유람선은 건조된 지 27년이 지난 노후선박인 데다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검사를 받았는데도 구명뗏목이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승객들을 상대로 한 구명조끼 착용법 등 안전교육도 생략되는 등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안전의식은 그대로였다.
30일 오전 9시14분쯤 홍도를 일주하는 유람선인 '바캉스호'가 좌초됐다. 바캉스호는 이날 오전 7시30분 관광객 105명과 선원 5명 등 110명을 태우고 출항해 9시30분쯤 홍도항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유람선이 암초에 부딪쳐 선수 좌현에 길이 1m 크기의 구멍이 나면서 1층 객실까지 물이 차올랐다. 승객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2층과 3층으로 대피했다가 15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운항 중이던 또 다른 유람선 선플라호와 사고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어선 2척에 의해 9시30분쯤 모두 구조됐다. 10여명은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김모씨는 "갑자기 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꽝' 하며 배가 기울고 연기가 났다. 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넘어졌다"며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1987년 일본에서 건조된 이 선박은 노후화와 증축으로 인한 우려가 있었다. 선사 측은 배를 10억원에 사들인 뒤 증개축해 정원을 350명에서 500명으로 늘렸다. 1994년 건조된 세월호보다 더 낡았지만 세월호 침몰 이튿날인 4월17일 선박안전기술공단의 안전검사를 통과하고 5월부터 운항에 들어갔다.
홍도 주민 70여명은 "일본에서 낡은 선박을 들여온 뒤 무리하게 증축해 제2의 세월호 침몰 사고를 불러오지 않을까 불안하다"며 해경에 운항허가를 내주지 말라는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선사 대표 이모씨는 "선령이 오래되긴 했지만 조선소 관계자들이 '국내 배들보다 훨씬 상태가 좋다'고 했을 정도로 이상이 없다"면서 "선장 실수로 암초에 부딪쳐 사고가 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전검사를 통과했는데도 바다에 떨어뜨린 구명뗏목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안전관리에 문제를 드러냈다.
승객들은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승객 김모씨(61)는 "배에 물이 차오르자 선장이 2층에 있던 구명뗏목 1개를 바다에 떨어뜨렸는데 펴지지 않았다"며 "엉망진창이었다"고 했다. 현장에 출동한 해경도 "구명뗏목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홍도항으로 예인된 바캉스호는 구명뗏목 보관함 4개 중 1개가 비어 있었다.
승객들은 구명조끼를 제대로 착용하기도 어려웠다고 증언했다. 서모씨(60)는 "구명조끼 보관함을 열었지만 꺼내기가 쉽지 않았고, 다른 조끼와 끈으로 묶이거나 뒤엉켜 있었다"며 "착용법을 몰라 우왕좌왕했다. 세월호 생각이 나서 눈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승객은 "유람선이 출발하기 전 방송으로 구명조끼 위치만 알려줬다"며 안전교육이 부실했음을 지적했다.
해경은 홍도에 수사관을 보내 바캉스호 선장 문모씨(59)와 선원들을 상대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문씨는 조사에서 "당시 파고가 1m 정도여서 운항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사고 해역에서 갑자기 강한 바람으로 배가 바위 쪽으로 밀렸다"고 진술했다.
<목포 | 배명재·강현석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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