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엄마'의 이름으로 내는 두 목소리

백상진 기자 2014. 9. 24.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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母性의 현실 참여.. 사회 변혁? 갈등 조장?

왼손에 도시락을 들고 오른손은 세 살배기 딸의 팔을 잡고 있었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역 앞에서 김지혜(36·여)씨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면서도 딸을 쫓아다니며 밥을 먹이느라 분주했다.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하자. 나는 엄마입니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소형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김씨는 5월부터 매월 16일이면 어김없이 거리로 나왔다. 온라인 카페 '엄마라서 말할 수 있다' 운영진인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회원들과 함께 서명운동과 행진을 하고 있다. 김씨는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현실을 믿기 어려웠다. 내 아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지금도 소름끼친다"며 "사회가 책임지고 나서서 어떻게 바꿀 것인지 논의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날 강남역 앞에는 '자출가모'(자연주의출산가족모임) 등 엄마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 30여명도 함께 모였다. 유모차와 노란 풍선, '아이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같은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엄마들은 침묵시위를 마친 뒤 약 700m 떨어진 교보타워사거리까지 행진했다.

다음날 서울 청계광장 주변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보수단체 회원 20여명이 '유병언 특별법' 제정과 재산 환수, 국회 해산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 절반가량은 40, 50대 여성이었다.

주옥순 엄마부대봉사단 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이전에 유병언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 재산을 몰수해 유족들에게 보상도 해줄 수 있다"며 "국민 세금 한푼 들이지 않고도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인데 정치권이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기도 양평에서 온 장모(52·여)씨는 "대한민국 법을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노력했는데, 세월호 유족이 그 법을 마음대로 하려는 것은 도를 넘어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 당시 처음 등장한 '유모차 부대'. 점차 영향력이 커지더니 사회운동의 새로운 현상으로 발전했다. 엄마들은 먹거리, 위생, 교육, 안전 같은 자녀와 밀접한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거리로 나오고 전면에 서서 개혁을 요구했다. '모성'에 기반을 둔 사회운동은 어떤 집단의 목소리보다 설득력을 가졌다.

그랬던 엄마들의 운동이 최근 극심한 보혁(保革) 갈등 속에서 그 '대리전' 모양새를 띠어 가고 있다. 진보와 보수가 부딪치는 현장마다 엄마라는 같은 정체성을 가진, 그러나 생각은 정반대인 단체들이 충돌한다. '엄마'가 갖는 당위성과 설득력을 양 진영이 경쟁적으로 빌려 쓰면서 우리 사회에 '엄마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모성에 의존하는 사회운동을 후진적 정치 시스템이 낳은 산물이라고 본다. 정부도 국회도 정당도 사회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고, 한 진영이 반대 진영을 결코 설득할 수 없는 상황이 가장 근원적 인간성을 상징하는 '엄마'란 이름에 기대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정근식 교수는 "조정 능력을 잃어버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증폭되고 있는 현상"이라며 "사회 전면에 나선 엄마들이 개혁의 동력이 되느냐, 갈등에 묻혀 그 상징성마저 퇴색하느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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