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증거 내놔도 "정부 못믿어".. 정치인마저 괴담 가세

2014. 9. 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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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혁신 '골든타임']
<7>믿을 수 있는 나라로/거짓 선동 고리 끊자

[동아일보]

며칠 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난데없는 '애국가 음모론'으로 뜨거웠다. 한 음악가가 올린 이 글은 "교황 오기 하루 전에 전광석화처럼 '서울시 교육감에 의한 애국가 낮춰 부르기 시행령'이 시행됐다"며 "애국가 낮춰 부르기는 전교조의 애국가 기피 전략으로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애국가의 음정을 낮춰 부르면 원곡의 기백이 사라지고 어두운 노래로 변질된다는 것이다.

이 글은 한 페이스북 사용자가 복사해 올리면서 카카오톡, 트위터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SNS에는 "'좌빨'들의 집요함이 무섭다"고 공격하는 측과 "지나친 음모론"이라고 반박하는 측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애국가 음정을 낮춰 부르라는 방침이 전교조의 전략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이 방침은 보수 성향의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때 나왔고, 이전에 다른 교육청에서 이미 시행된 적도 있다.

'애국가 논란'은 최근 인터넷에서 괴담이 유포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개인의 주장을 담은 글이 자극적인 문구와 함께 페이스북과 트위터, 카카오톡 메신저 등 SNS를 통해 전파되고, 진실인 것처럼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세월호 참사 때도 그대로 나타났다. "세월호가 미국 잠수함과 충돌해 침몰했다" "시신 인양 장면이 TV로 보도되면 정부 지지율이 떨어질까봐 밤에만 인양 작업을 한다"는 등의 괴담이 대표적이다. 이들 괴담은 "속상하다" "정부에 분노한다"는 감정적인 문구와 함께 전파됐다.

공적 기관이나 인물이 이 같은 괴담을 확인 없이 그대로 옮기면서 논란을 키우고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를 낮추기도 한다. 7·30 재·보선 하루 전날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 대변인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시신은 가짜'라는 괴담을 확대시켜 "최근 발견된 변사체는 유 전 회장 시신이 아니라는 경찰 증언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국립과학수사원이 과학적 증거를 대며 가짜 주장을 반박했지만 박 대변인의 발언이 '가짜 유병언' 괴담에 힘을 실어주면서 한동안 논란은 계속됐다.

최근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특별위원장인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이 "'세월호 특별법'이 유족들에게 22가지의 특혜를 주는 '평생 노후보장 특별법'"이라는 글을 일부 지인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낸 것도 논란이 됐다. 해당 글은 "안전사고로 죽은 사망자들을 국가 유공자보다 몇 배 더 좋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 세월호 특별법의 주장" 등 사실과 다른 내용이나 미확인 정보를 포함하고 있었다. 심 의원은 이후 "6월부터 인터넷에 돌던 글을 법안 관련 의견수렴용으로 전달했고 개인 의견과 다르다는 점을 명기했다"고 해명했다.

인터넷 괴담은 특정 사안을 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갈등과 오해를 부추기고 사회적 신뢰를 훼손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 같은 괴담 유포 사례에서는 특히 '카톡(카카오톡) 유언비어'의 위력이 두드러진다. 카카오톡, 네이버 라인 등 스마트폰 메신저는 다수에게 공개된 인터넷 게시판이나 블로그 등과 달리 주로 자신의 지인과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괴담을 더욱 신뢰하도록 만든다는 특징이 있다.

정일권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사람들은 친근한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더 신뢰한다"며 "메신저를 통한 소통은 사회적 이슈를 개인적 이슈처럼 받아들이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 여부를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안도 친구들과 대화하듯 감정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메신저를 통해 유포되는 괴담은 적발이나 처벌도 힘들다. 공개된 공간이 아닌 개인 대화방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메신저 서비스는 신고 기능을 두고 있지만 괴담을 막는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현행법은 공연히 허위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허위의 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하면 7년 이하 징역,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 대화방에서 괴담을 옮긴 것도 '허위 사실 적시'나 '유포'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기준이 불명확한 상태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SNS는 현장성과 접근성 등 장점이 많은 매체지만 최근 허위 사실 유포의 통로가 되면서 사회적 불신을 증폭시키는 측면이 있다"며 "무엇이 진실인지 사실에 근거해 판단할 수 있도록 신문 방송 등 언론이 괴담의 '사실 확인'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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