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는 유민아빠' 박재동 "세월호, 현대적 의미의 국상"

입력 2014. 8. 30. 20:04 수정 2014. 8. 3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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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사만화가 박재동을 만나다…"예술인 세월호 관심, 자연스러운 것"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그림 한 컷이 화제였다. 단식농성 중이던 '유민아빠' 김영오씨를 가라앉는 세월호에 빗댄 그림이었다. 유민아빠 얼굴 일부는 바다에 잠겨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을 어떻게든 외면하려는 청와대와 여당, 이들에 끌려가는 야당의 무능함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걸 상징했다. 박재동 화백의 작품이다.

지난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단식농성장에서 박 화백을 만났다. 그는 "유민아빠가 그동안 보여준 초인적 모습과 달리 가라앉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며 "그가 세월호처럼 가라앉고 있었다"고 말했다. 박 화백은 한겨레신문과 함께 유가족의 릴레이편지

'잊지 않겠습니다'

를 기획해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캐리커처를 그리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정상 생활을 할 수 없었던 그는 "그림쟁이로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 박재동 화백이 그린 '유민아빠'. 이 그림은 김영오씨가 있던 천막에서 볼 수 있다. (사진 = 김도연 기자)

박 화백은 현재 후배 작가 140여 명과 함께 <세월호 추모만화전 'MEMORY'>를 열고 전국추모 만화전에 참여하고 있다. 30일에는 경남 봉하마을에서 전시전이 열리며 이후 제주도 제주대학교(9월 1-5일), 홍대 빨간책방 café(9월 1-2일), 홍익대학교(9월 17-19일), 부산국제영화제(10월 3-12일), 고양평화예술제(10월 27-31일), 대구, 대전, 광주 등의 일정으로 시민들을 찾는다.

김영오씨는 지난 29일 박 화백 작품에 대해 "너무 나하고 닮았더라고. 보고 너무 좋았어. 표현을 정말 잘하셨더라고. 역시 박재동 화백"이라며 기뻐했다. 아래는 박재동 화백과 일문일답.

- 추모만화제가 전국 순회를 앞두고 있다.

지난달 안산에서도 세월호 만화전시회가 열렸고, 부천 만화축제에서도 있었다. 한 가지 놀라웠던 게 있다. 슬픔을 함께 나누려 만화가뿐 아니라 예술가들이 곳곳에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른다는 것. 영화, 음악, 만화하는 이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세월호를 기리는 모습이 참 경이롭고 고마웠다. 우리사회의 한쪽은 썩어버려 아이들을 제대로 구하지도 못하고 지금 이러고 있지만 함께 행동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 희망이다. 우리나라가 완전히 썩었다고 단정할 수 없게 만드는, 미래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 광화문 농성장에 자주 방문하는데.

이곳 광화문 농성장에 오면 마음이 편해진다. 집에 온 것 같다. 왠지 푸근하다. 있어야 할 곳에 와 있는 당당함이랄까. 편안함이 느껴진다. 적어도 이곳에 오는 분들은 '공감'할 줄 안다는 것일 테니.

▲ 박재동 화백이 29일 서울 광화문 단식농성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 김도연 기자)

-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지 4개월이 넘었다.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나?

미치는 줄 알았다. 모두가 세월호가 가라앉는 걸 봤지만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해경은 속수무책이었다. 아이들 핸드폰에 남겨진 동영상을 볼 때 가장 힘들었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우리 죽는 거 아냐', '우리 정말 겁나'라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잖나. 그걸 보면서 머리가 홱 도는 듯했다. 전쟁 때 사람이 이렇게 미치나보다 싶었다. 내가 이 정도로 고통스러웠는데 유가족들은 오죽 했을까? 조금 지나니까 내가 그림쟁이로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래서 한겨레 릴레이편지에 캐리커쳐를 그리게 됐나?

아이들 얼굴을 그리면 어떨까 싶었다. 한겨레와 이야기가 오갔고 바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는 내내 가슴 아팠던 것은 아이들이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또 아이들의 꿈이 다양했다. 가난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 세월호 농성장에 오면 만화가들이 전시한 그림들이 눈에 띈다. 만화가 주는 힘이 있다.

프랑스 앙굴렘 국제 만화축제의 기획전 '지지않는 꽃'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만화가 20편 정도가 전시됐다. 전 세계에서 왔다. 프랑스 할머니들이 와서 눈물을 흘리고 프랑스 교사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와서 역사교육을 했다. 만화가 가지는 힘인 것 같다. 정서적으로 동하게 만드는 힘. 또 이런 정서가 가슴에 새겨지면 잘 변하지 않는다. 효율적인 전달이 가능하다.(웃음)

▲ 김동범 작가의 <기다릴께> (사진 = 김도연 기자)

- 박 화백의 김영오씨 그림이 화제였다.

유민아빠 단식농성이 39일째였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초인적인 모습을 보였던 그였다. 그랬던 이가 가라앉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당시 그의 몸무게가 10kg이 줄었고 근육이 다 빠져나갔다고 들었다. 그가 세월호처럼 가라앉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작품에 대해서는 만족한다. 후배들과 이 그림을 확대하는 건 어떻겠느냐는 얘기가 오갔다. 후배들이 그걸 확대해줬고 지금은 천막에 걸려있다. 김영오씨가 이 그림을 봤는지 모르겠다. 단식 40일…. 나는 하루만 해도 정신이 헤롱헤롱거리는데.

- 예술인들의 사회 참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나는 사람이 순수하면 당연 사회에 참여하게 된다고 본다.(웃음) 누군가의 죽음에 슬퍼하고 연대하는 게 자연스러운 감정 아닌가. 물론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이 사건은 우리사회의 아픔이다. 국상인 셈이다. 현대의 국상(國喪)은 이렇게 국민들이 죽는 일이다.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을 듣다가 죽었다. 진짜 정말…. 예술이라는 걸 너무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진영논리로만 생각하는 것은 강요된 측면이 크다. 감정 표현하고 슬픔을 나누는 것은 아무래도 자연스럽다.

▲ 세월호 전시된 작품. (사진 = 김도연 기자)

- 가수 김장훈이 대표적 예다.

그는 대단하다. 단식도 하고. 그는 "이런 데에서 무언가를 하지 못하면 자기 음악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영혼이 있는 예술가다. 귀한 사람이다. 가수들은 무대를 오르내리는 것에 민감할 수밖에 없잖나. 자칫 잘못 찍히면 무대에 못 올라가. 옛날부터 그런 사람이 많다. 김장훈은 그래서 대단한 거다. 만화 그리는 사람은 참여한다고 크게 밥줄 끊기는 건 없으니까.(웃음)

- 만화가들의 참여 폭도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세월호를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 과거 용산참사 등 많은 화가들이 들러붙어 작품을 전시하고 슬픔을 공유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세계 어느 나라 만화가들이 자기 일처럼 이럴까. 차가운 물속에서 외롭게 죽어간 아이들이 이런 모습을 혹시 보게 된다면 덜 외롭지 않지 않을까. 그런 복원력이 있다는 거, 조금이나마 희망을 갖게 한다.

▲ 고경일 작가의 작품. (사진 = 김도연 기자)

- 박 화백은 그 중심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글쎄. 난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대중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 당연히 노력해야 하지만 그럴 때와는 기분이 다르다. 위안부 피해자 기획전을 했을 때도 당당하고 시원한 느낌이 있었다. 마치 밀린 숙제를 한 것처럼. 시원한 맛이 있다. 처음에는 참여할지 말지 머뭇대는 후배들도 한 번 사회적 문제에 참여하고 나면 그 뒤엔 참 자연스럽게 하더라. 사실 크게 의미 부여할 일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 죽을 때 자신을 되돌아봤을 때 이런 일에 참여했다는 건 '참 잘했다'라고 평가할 만하지 않을까.

- 아이들을 그린 캐리커처에 대한 유가족의 반응은 어떠한가.

유가족 단식농성장에서 환영을 받는다. (웃음) 그림을 액자로 선물하는 경우도 있다. 사진과 또 다른 의미가 있다. 한 사람의 가슴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빨리 만화액자를 받고 싶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고. 유가족들이 너무 고마워하셨다.

- 세월호가 잊혀지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각자 삶이 있고, 거기에 매몰되다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잊어버린다고 해서 나무라서는 안 된다. 대신 어떤 장치를 통해 꾸준히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4월 16일을 추모일로 정하고 매년 기리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본다. 쉽게 잊어서는 안 되는 아픔이자 슬픔, 비극이다.

▲ 29일 서울 광화문 단식농성장에 전시된 작품. (기자 = 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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