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할 말만 하겠다는 '담화문 정권'

이지선·유정인 기자 2014. 8. 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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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총리 돌연 담화 "법안 처리" 국회 압박.. 취임 후 5번째
박근혜 정부, 일방 담화 남발.. '불통 정치' 책임 떠넘기기

정홍원 국무총리가 29일 돌연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사전 예고도 없이 전날 밤 언론에 담화 예정만 문자메시지로 긴급 고지했다. 정 총리의 담화문 발표는 세월호 참사 후 두 번째, 총리 취임 후 다섯 번째다.

정 총리는 담화에서 국회를 향해 '민생'을 위해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의 미숙한 대응이나, 이후 이어진 정치·사회적 갈등으로 국력이 낭비된 데 대해 국정을 맡은 정부 차원의 자성은 없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6일 '30개 경제법안' 통과를 요구하며 국회를 압박한 대국민담화를 사흘 만에 되풀이한 것이다. 야당은 즉각 "염치없는 담화"라며 반발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일방적 주장만을 쏟아놓는 '담화문 정치'가 오히려 정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던 중 희생자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정홍원 국무총리(가운데)가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담화를 통해 정기국회 개회와 국회의 조속한 법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박근혜 정부의 '담화문 정치'는 무엇보다 형식의 특성상 소통은 없고 일방적 압박 수단으로 남발되고 있는 점이 문제다. 정 총리는 이날도 A4용지 7장 분량의 담화문을 읽기만 하고, 질문은 받지 않았다. 이 같은 식의 담화문 발표는 박근혜 정부 1년 반 동안 11번째다. 그중 7차례가 국회(4차례)나 철도노조와 같은 특정 단체에 대한 일방적인 촉구 담화였다.

내용면에서도 일방적이다. 정 총리는 담화에서 "경제활성화 법안을 비롯해 세월호 관련 법안 등 국민을 위해 시급히 처리돼야 할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막혀 있다"며 관련 법안들을 하나하나 거론했다. 하지만 법안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있는 신용정보 이용·보호법 등이 포함돼 있는가 하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안처럼 여야 간 간극이 커 논의가 필요한 것도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법안들을 '민생법'이란 이름표를 붙이고, 무조건 넘겨달라는 모습이다. 중앙대 이상돈 명예교수는 "총리가 담화에서 통과시켜 달라는 정부조직법은 해경을 해체하고 총리실 아래 국가안전처를 두는 것으로 말이 안되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정 총리는 "세월호 사고로 인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 6600억원의 비용은 가해자인 청해진해운과 유병언 일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유병언법'으로 불리는 범죄수익은닉규제처벌법 통과만 강조했다. '우리 사회 누적된 적폐의 결과'는 '가해자 유병언'으로 축소됐고, 참사 원인부터 책임까지 몽땅 '유병언 일가' 문제로 돌리겠다는 식이다. 정부의 초기 구조 실패나 세월호 수습 과정의 정부 역할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당장 총리 담화는 법안 처리를 부드럽게 하기는커녕 야당의 반발만 샀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는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 '카지노믹스(도박 경제)'에 불과한 정책들을 세월호법·부정청탁금지법 등 일부 법안으로 포장했다"고 비판했다. 정의당 김종민 대변인은 "세월호는 이제 그만 잊자는 식의 염치없는 담화는 귀를 의심케 한다. 대국민담화를 다시 돌려드리고 싶다"고 논평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정 총리 담화는 대국민담화가 아니라 국회 압박용 담화"라며 "정부는 의회 과정은 입법부 고유권한이라면서도 실제로는 '통법부'로 여기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또 "국회가 잘못한 부분을 지적하려면, 정부 잘못도 이야기해야 한다. 지방선거 이전에는 정부 책임이 많다고 하다가 이제 와서 모두 국회 잘못이고 '정치권이 잘못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선·유정인 기자 j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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