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당신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송지혜 기자 2014. 8. 2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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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5일 새벽 4시 안산시 합동분향소

단원고 유가족과 생존 학생 36명을 태운 버스가 대전 월드컵경기장을 향해 출발했다. 천주교 신자인 정혜숙씨(46·세례명 체칠리아)와 딸 박보나씨(22·세례명 보나)도 버스에 올랐다. 이들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그림과 'We want the truth(우리는 진실을 원한다)'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 참석하려고 버스에 오른 정씨는 교황에게 꼭 하나만 호소하고 싶다고 했다. "왜 아이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유가족 10명은 미사가 시작되기 전, 10분간 프란치스코 교황과 면담했다. 교황은 한 번도 웃지 않고 유족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10명의 이야기를 한 명씩 듣고 한 명씩 악수하고 안아주었다. 선물로 묵주를 건넸다. 정씨는 교황에게 직접 말했다.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알아야겠다. 진상을 규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교황이 다녀간 후에도 종교인들이 끝까지 우리를 지지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진상을 밝힐 수 있도록 한국을 떠나도 관심을 가져달라."

ⓒ사진공동취재단 8월14일 서울공항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과 인사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김병권 세월호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30일 넘게 단식 중인 유민양 아버지 김영오씨를 광화문 시복식 때 안아달라고 부탁했다. 안산에서 팽목항을 거쳐 대전까지 900㎞가량 십자가를 메고 걸어온 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과 함께 미사를 집전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 사진이 담긴 앨범, 'We want the truth'라고 적힌 티셔츠와 노란 리본을 전달했다. 교황은 왼쪽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김학일씨가 준 십자가를 로마에 가져가기로 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교황의 만남이 이뤄지기까지 정혜숙씨는 마음고생을 했다. 정씨는 가족대책위를 대표해 천주교계와 소통하는 창구였다. 시복식 때 광화문광장 농성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유족들이 얼마나 참여할 것인지, 대전에서 교황과 만나는 데 몇 명이 갈 것인지 등을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와 숙의했다. 정씨가 소통 창구가 된 것은 온 가족이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이다.

정씨 가족은 지난해 12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들떴다. 특히 성호군(17·세례명 임마누엘)은 8월17일 서산 해미읍성에서 열리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폐막식 미사에 참석하고 싶어했다. 가족 모두 시복식과 성모승천 미사에 참석하자고 약속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정대로 한국에 왔지만 고인이 된 성호군은 엄마·아빠와 한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시사IN 이명익 교황 방한 하루 전날인 8월13일, 고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씨는 경찰 벽에 둘러싸여 청와대 앞에서 밤을 보냈다. 대통령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8월14일 오전 9시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

성호군의 아버지 박윤오씨(50)는 교황 영접단의 일원으로 서울공항에 나갔다. 남윤철 단원고 교사의 아버지 남수현씨와 어머니 송경옥씨, 일반인 희생자 정원재씨의 부인 김봉희씨와 함께였다. 박씨는 "아들의 죽음을 통해 교황을 만나야 하나 싶어 아들에게 미안했다. 영광이었지만 함께하지 못한 팽목항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또 미안했다"라고 말했다. '교사인 아들이 배에서 살아 나왔다면 너무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라며 인터뷰를 거절하고 장례식 때 부의금도 받지 않았던 남수현씨는 교황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남씨는 "평화를 위한 기도에서 '미움 있는 곳에 사랑을, 분열 있는 곳에 일치를'이라는 구절이 있다. 진실 규명이 하루빨리 이루어져 서로 용서하고 사과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교황은 한 손으로 유가족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자신의 가슴에 얹은 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라고 위로했다.

8월13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교황 방문을 하루 앞두고 정혜숙씨는 아스팔트에 앉았다. 이날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 기자회견이 열렸다. 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대통령이 결단해달라고 요구했다. 기자회견 뒤 1인 시위에 나섰지만 경찰에 막혔다. 앉아서 버티던 정씨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성호군이 하늘로 간 이후 혈압 수치가 급속도로 높아져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두통을 호소하던 정혜숙씨는 결국 인근 내과로 향했다. 정씨를 진찰한 의사는 "혈압 수치가 너무 높다. 고혈압을 조절하지 않으면, 심각한 심혈관계 질환 외에도 신기능 부전으로 투석 생활을 하게 되거나 망막 질환으로 실명하게 될 수도 있는데, 원래 이렇게 높았나"라고 물었다. 정씨가 "세월호 유가족이다"라고 답하자, 의사는 곧바로 이해하고 약을 처방했다.

ⓒ시사IN 이명익 교황 방한 하루 전날인 8월13일, 고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씨는 경찰 벽에 둘러싸여 청와대 앞에서 밤을 보냈다. 대통령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씨는 다시 청와대 앞으로 향했다. 정씨를 포함한 유가족 7명은 청운효자동주민센터 맞은편 인도에 주저앉았다.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지만 경찰 벽에 가로막힌 답변 없는 메아리였다. 중국인 관광객이 대형 버스를 타고 지나며 스마트폰으로 이 광경을 찍었다. 관광객이 지나가는 길을 유가족은 아무도 지나가지 못했다. 이날 정씨는 청와대 앞에서 노숙했다. 지난 4월16일 정혜숙씨는 진도로 향하며 평생 그때보다 더 열심히 기도를 해본 적이 없었다. 정씨의 아들 성호군은 사제를 꿈꿨다. 두 누나와 남동생처럼 유아세례를 받았고, 성당에서 합창부와 청년부 활동을 한 예비 신학생이었다. 성호군은 꿈이 많았다. "사회운동가, 역사 선생님, 사회복지가, 사제가 되고 싶은데 뭐를 선택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라는 성호군의 말에 엄마는 "사제가 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사제의 꿈을 키운 계기였다.

원래 성호군은 수학여행을 가지 않으려고 했다. 4월 셋째 주는 천주교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리는 성주간(聖週間)이었다. 복사(服事·미사 때 사제를 도와 시중을 드는 사람)를 맡고 있던 성호군은 미사가 매일 있으니 수학여행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친구들의 권유에 마음을 돌렸다. 수학여행을 떠나면서도 성당 신부에게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성당으로 올게요"라고 약속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었다.

수학여행에 오르기 직전 성호군은 가톨릭 성가 '아버지 뜻대로'를 성당에서 독창했다. 정씨는 아들의 음성을 떠올리며 청와대 앞 인도 위에 몸을 뉘었다.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당신 성혈로 잔을 이뤘네. 임의 그 사랑 나도 따라서 세상의 참 사도 되리라… 당신 앞에 나아가리라. 한 말씀만 하소서. 내 주여. 내 영원히 따르리라.'

송지혜 기자 /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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