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시선]문제는 그게 아니라 '스파게티'야

2014. 7. 3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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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는 관광선 위에 승객들이 모였다. 아무리 갑판장이 바다로 뛰어들라 해도 망설일 뿐 아무도 결행하지 않자, 선장이 나서서 옹기종기 모인 무리마다에 한마디씩을 하니 모두 뛰어내렸다. 궁금해 묻는 갑판장에게 선장이 대답하기를, 독일 사람들에게는 "규정에 의하면 이제 뛰어내려야 합니다", 이태리 사람들에게는 "지금은 뛰어내리는 것을 금합니다", 영국 사람들에게는 "지금부터 다이빙 스포츠 시간입니다"라고 하니 모두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이 얘기에, 한국 사람은 갑판이 아니라 선실에 가만히 있었구나 생각을 하니, 세월호의 침몰로 인해 국민성에 대한 조크도 쇼크로 다가온다. 그 학습효과로 인해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태리인들처럼 반응하게 될 테니, 국가개조는 몰라도 국민성은 개조되고 있다. 최근 유병언의 사체가 발견됐다 해 떠들썩하고, 약속이나 한 듯 튀어나오는 그 식솔과 시비(侍婢)들 사연까지 파헤치고 있다. 유병언의 아들과 함께 있었다는 여자는 그 체포의 와중에도 도도하게 나타났으니 그중 백미이리라.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가 "여자는 사람들 앞에 나설 때 제대로 입었나 혹은 제대로 벗었나 고민한다"고 말한 여자의 본성에 충실한 것일까. 이러저러해 가나안족을 '진멸'하려 놀이터와 병원까지 공습하는 이스라엘도, 암암리에 진행되는 의료민영화도 잊었다. 다시 한 번 드뇌브를 인용하자면 "이태리인들의 머릿속에는 항상 두 가지 생각뿐인데, 그 다른 하나는 스파게티이다". 천연덕스럽게 스파게티를 입에 올리면서도 실상 안중에는 없다. 단지 부드럽게 빈틈을 보여 본능을 자극할 뿐이다. 이 유혹에서 자유로우려면, 그냥 자연스럽게 그것도 생각하고 스파게티도 생각하면 된다. KAL기 폭파범이라는 김현희도 예쁘니까 살려줬다는데, 팬카페면 또 어떠랴. 하지만 유병언 일가도 다 털었고, 누가 누가 못하나를 겨루는 선거도 끝났으니, 이제 스파게티에 대해 생각할 때도 됐다. 유병언 때문에 놓치고 유병언에 가려 보지 못한 것들을 살펴보자. 우리나라 현대사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두고두고 발목이 잡혀 있을 것이고, 이른바 성장의 동력도 그 기반을 잃을 것이다. 공연도, 여행도, 심지어 등산도 심드렁하고, 식당도 시장도 한산했던 것이 엊그제다.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세월호의 침몰원인에 대해 설득력 있는 해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음모론과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이순신 동상 앞의 유가족들, 해원(解寃)은 시켜줘야 하는 것 아닌가. 진도 앞바다에서 참사가 일어났으니 그곳에서 씻김굿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는가. 어쨌거나 침몰의 배경이 됐던 허술한 감독체계와 재난 앞에 무력했던 국가 시스템은 이제 신뢰할 수준에 이르렀는가. 정부는 이것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문제는 유병언이 아니다. 그가 수천억원의 빚더미에서 다시 수천억원을 일군 것이 단지 광신도의 헌금만으로 됐겠는가. 영화 이끼에 나오는 정재영의 부패 네트워크가 어마어마한데, 여기에 허준호의 역할까지 합쳐놓은 것이 유병언이다. 그의 축재과정에 대해 수사는 말고라도 제대로 된 연구는 있어야 할 것이다. 유병언의 사체가 부패하는 사진이 유포된 것이 문명사회의 품위에는 어긋나지만 이를 계기로 전형적인 인간의 착각도 드러났다. 자기는 영원히 살 것이라는. 달라이 라마의 경구다. "사람은 자신이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고, 결국에는 제대로 살아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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