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유병언의 죽음 이후

2014. 7. 2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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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 대한 실질적 책임자로 검경의 추적을 받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백골 상태 변사체로 발견됐다. 유씨 장남 유대균 씨도 95일간 도피생활 끝에 검거됐다.

유병언 변사체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분분하다. 2주 만에 백골화가 가능한가, 사망 시점은 언제인가, 자살인가, 타살인가 등 합리적인 의혹들조차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으니 답답하긴 하다. 하지만 국과수 원장이 직접 나서서 DNA 검사, 지문, 치과 기록까지 제시하며 "유병언이 맞다"고 하는데도 '유병언이냐, 아니냐'는 음모설이 좀체 가라앉지 않는다. 세월호로 촉발된 국가와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이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증거다.

유병언 사망과 유대균 체포로 세월호 수사는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5월 25일 이후 어느 시점엔가 유병언이 죽었다면 사망 직후 유병언의 모든 재산은 부인과 자녀들에게 자동 상속됐다. 유병언 생존을 전제로 했던 재산 1054억원에 대한 추징보전은 취소됐고 세월호 참사 수습 비용 4053억원(정부 추산)을 받아낼 길도 막연해졌다. 민사상 구상권 청구를 위한 648억원에 대한 가압류 역시 유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유대균 조사를 통해 도주 경로, 배임ㆍ횡령액, 세모그룹 내 유병언 회장과 핵심 측근들 역할, 유병언과 구원파 간 실질적 관계 등에 대한 진술을 확보할 수는 있겠지만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차남 유혁기, 김혜경, 김필배 등 핵심 측근들은 여전히 국외 도피 중이다. 유병언 재산 대부분이 제3자 명의로 돼 있다면 유병언 사망으로 이 재산들은 모두 차명인 소유가 됐다. 명의신탁을 다툴 당사자가 사라진 탓이다. 검찰이 처음부터 유병언과 구원파를 철저히 분리한 탓에 여의도 면적 절반 크기에 달한다는 안성 금수원 등 구원파 소유 재산도 사정권을 벗어났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 원인과 책임소재를 규명하고자 하는 것은 세월호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공감대 때문이다. 다수 피해자를 양산한 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우리 사회의 해법은 즉흥적이고 찰나적이었다. 근본적인 수술은 외면한 채 일단 핏자국을 닦아내고 만만한 책임자에게 덮어씌우고 봉합하면 그만이었다. 매번 마녀사냥과 단선 논리가 춤췄고 법과 원칙은 무력화됐다. 세월호 참사는 그렇게 사건을 사건으로 덮는 땜질식 처방이 수십 년간 지속된 결과물이다.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지옥 같은 슬픔과 분노를 공유했지만 지난 100일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또다시 과거 잘못된 해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세월호 참사 원인이 악덕 기업인 유병언 탓이라고 한다면 유병언이 죽은 지금 세월호 같은 사건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런가? 우리 사회는 오히려 유병언의 죽음으로 그동안 유병언을 쫓느라 내팽개쳐 두고 있던 진짜 숙제를 마주하게 됐다. 2시간 동안 배가 떠 있었는데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국가적 무능, '세월호'라는 시한폭탄을 바다 위에 방치한 민ㆍ관 유착 비리를 끊어내는 것이 그것이다. 세월호 100일이 아니라 1000일이 지나더라도 끈기 있게 차근차근 절대 놓치지 말고 해내야 하는 과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안전 체계를 다시 구축하고 관피아를 척결하겠다는 정부조직법, 공무원 부정ㆍ부패ㆍ비리 소지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김영란법, 악덕 비리 기업인의 은닉 재산 환수를 용이하게 하는 유병언특별법 모두 지금 국회에 묶여 있다. 정부조직법은 정부가 제 맘대로 만들었으니 안 되고 김영란법은 국회의원도 자칫 걸려들 수 있으니 안 된다는 식이다.

여야 공히 세월호특별법 붙들고 세월만 보내고 있다. 내일은 마침 재보선 투표일이다. 뼛속까지 무책임하고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최대 걸림돌이 돼 버린 정치권을 심판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투표장에 가서 한 표씩 꾹꾹 눌러 찍을 일이다.

[채경옥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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