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시민사회가 본 세월호 "국지적 진단·해법만 부각.. 시민권이 강해져야 근본 해결"

박은하·조형국 기자 입력 2014. 7. 24. 22:43 수정 2014. 7. 2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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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0일 동안 드러난 것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국가의 모습이다. 참사를 일으킨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지지부진하다. 세월호 참사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지식인들과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 문제를 총체적으로 드러낸 것이지만 해결책과 대안을 위한 논쟁은 풍부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관피아'와 '유병언'으로 대표되는 논의의 협소함을 지적하며 취약한 시민권과 노동권, 감시사회, 생명보호 부재, 규제 완화와 신자유주의 같은 근본 문제를 들여다볼 것을 지적했다.

"제발 무사히 돌아와"… 노란풍선에 담은 기도

세월호 참사 100일째를 맞아 24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열린 '100일의 기다림' 행사에 참석한 진도고등학교 학생들이 실종자 귀환을 기원하며 노란풍선을 하늘로 날리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청해진해운에 노조 있었다면 '위험' 경고 목소리 냈을 것노조 결성·비판 권리 취약… 야당은 역할 공간 없어피해자들, 국가와 직접 대면할 수밖에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참사의 근원에 놓인 신자유주의 문제를 지적한다. 장 교수는 "민주화로 이뤄야 할 바람직한 사회·정치적 개혁이 신자유주의에 유보됐다"며 " '경제를 살리자'는 구호 아래 세월호 같은 낡은 선박을 규제 완화해 준 게 하나의 예"라고 했다. 그는 "사회·정치행정 차원에서 한국 사회가 성취해야 할 개혁적 진화가 뒤로 밀렸다"며 "기업을 우선하고 규제를 완화화는 즉 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가장 중요한 사회가 됐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참사에서 부각된 '관피아'도 신자유주의 추구가 빚어낸 문제로 해석한다. 그는 "국가는 방향성이 없고, 이면에서 개별화된 이해관계를 챙기는 쪽으로만 내달린다"며 "정권을 존속하는 데 급급한 정치인들, 이권 지키기에 혈안이 된 관료들, 그들을 끼고 돈을 버는 사람들 간의 담합체제가 바로 한국을 지배하는 관피아"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규제 완화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이념을 계속 유지하면 또 다른 세월호 참사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며 "신자유주의를 대체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새로운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진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는 사고 원인으로 무분별한 규제 완화'를 지적한다. 그는 청해진해운 직원의 70%가 비정규직이었으며, 선박 안전관리 업무가 한국선급에 맡겨져 있는 등 안전 분야에 만연한 '비정규직화'와 '외주화' 현상도 지적했다. 김 대표는 "이와 관련한 반성적 논의가 총체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밝혔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핵심 문제로 '취약한 시민권' 문제를 꼽는다. 서 연구위원은 " '관피아'로 상징되는 관료조직 부패와 이익집단 간 결탁 문제는 분명 해결해야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회전문 인사' '낙하산 인사' 정도만 거론되고, '개방적 공무원 확대' 등만 대안으로 나오는 점은 문제"라고 말했다. 관피아들이 왜 이익 추구를 하는지 근본적 고민은 하지 않고 국지적인 진단과 해결책만 내놓는 점을 지적한 말이다.

서 연구위원은 '결사의 자유'로 대표되는 시민권과 노동권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청해진해운에 노동조합이 결성돼 있었다면 참사 전에 자신들이 매일 타고 다니는 배가 위험하다는 목소리가 나왔을 것"이라며 "노조 등을 결성해 감시·비판할 수 있는 권리가 취약하다"고 했다. 그는 지지부진한 진상규명과 유가족의 단식, 대입특례와 의사자 지정으로 논란이 된 특별법을 둘러싼 갈등 역시 '기본권'과 이어지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책임한 정부와 아울러 무력한 야당을 비판했다. 김 교수는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사고"라며 "유족이 정부를 설득하기 전에 정부 스스로 나섰어야 할 문제가 법 제정까지 갔다는 것은 국가 기능이 마비된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가폭력이나 대형 재난에서 피해자와 국가가 직접 만나는 현상이 반복되는 문제도 지적하며 "원인은 야당의 역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4·19혁명, 5·18 민주화운동에서도 피해자들이 직접 노력해 특별법까지 이끌어냈지만 확실한 진상규명 없이 배상·보상 논의로 넘어갔다"며 "야당과 조직된 시민사회의 힘이 약하면 피해 자들이 온몸으로 국가의 폭력을 맞받아쳐야 하며, 정부가 배상안·보상안 등으로 피해자들을, 피해자와 시민사회를 분열시킨다"고 설명했다.

박진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안전위원장(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속성 때문에 참사가 일어났다. 절체절명의 순간 긴급구조가 작동되지 않아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며 "이런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힘 없는 사람 입장에서 재난구조 등을 재구성해야 하지만, 대통령 담화는 규제 완화로 상징되는 경제개혁만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와 정부는) 사고의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과 방향 제시를 하지 못했다. 참사 100일에도 안전에 대한 대안 흐름을 볼 수 없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대두된 안전 문제가 감시사회나 중산층 개개인이 안전을 구매하는 행태로 가서는 안될 것"이라며 "모두가 평등하게 안전을 누릴 수 있는 '존엄안전'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에 대한 강조가 감시로 이어지는 흐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종국 전국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은 "세월호 참사로 안전을 강조하지만 노동현장에서는 적정한 노동시간 등 근본적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채 작업장 폐쇄회로(CC)TV 설치가 확산되는 등 감시사회 조짐만 늘어난다"며 "안전사회가 자칫 감시사회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 박은하·조형국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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