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 40일간 추적한 정부

정제혁 기자 2014. 7. 22.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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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시신 확보하고도 '사상 최대 검거작전' 전국 들쑤셔.. 국가적 무능 재현초동수사 미흡·검거 헛발질.. 검·경이 한 거라곤 "유씨 맞다"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변사체의 신원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사진)이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전자 및 지문 분석 결과가 22일 나왔다. 세월호 참사 발생 98일, 검찰이 유 전 회장 일가를 대대적으로 수사한 지 94일 만이다.

검찰은 사체 신원을 최종 확인한 뒤 '공소권 없음' 처분할 예정이다. '단군 이래 최대 검거작전'이라는 유 전 회장 추격전은 비극으로 마무리됐다.

실패로 끝난 유 전 회장 검거작전에서도 기본의 실종, 시스템의 부재, 정치공학적 접근, 면피성 보여주기식 대응, 신뢰의 붕괴 등 세월호 구조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국가의 무능이 고스란히 재현됐다. 세월호 구조와 수습 과정은 시민사회에 "이것이 과연 나라인가" "시민 각자에게 국가의 존재는 무엇인가"란 물음을 던졌다. 검경의 유 전 회장 검거작전은 세월호 구조 과정의 데자뷰였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 발생 나흘 후인 지난 4월20일 유 전 회장 일가를 공개수사했다. '내사→압수수색 등을 통한 자료 확보 및 공개수사 전환→신병 확보→사법처리'라는 공식을 밟지 않고 급하게 시작한 수사였다. 준비 없이 시작된 검찰의 공개수사는 유 전 회장 일가에게 '도피하라'는 경고음이 됐다.

떠들썩하게 시작된 유 전 회장 일가 수사는 세월호 참사의 모든 쟁점과 책임 문제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됐다. 유 전 회장은 세월호 참사의 몸통으로 지목됐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다섯 차례나 유 전 회장을 검거하라고 다그쳤다. 안전행정부는 임시반상회를 열어 신고를 독려했다. 대검 차장검사 주재로 열린 유관기관대책회의에는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이 군복을 입고 참석했다. 연인원 130만명 이상의 경찰이 검거작전에 동원됐고, 해군 함정까지 투입됐다.

한국 정부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사력이 유 전 회장 검거에 쏠렸지만 결과는 '황당했다'. 유 전 회장으로 추정되는 변사체가 발견된 것은 지난달 12일. 도피 중인 그가 머물렀던 순천 송치재 별장에서 불과 2.5㎞ 떨어진 곳이었다. 송치재는 검경이 유 전 회장 검거에 나섰다 실패한 곳이다.

변사체 주변엔 유 전 회장의 자서전 제목인 '꿈같은 사랑'이 가방에 새겨져 있는 등 그와 연결 지을 유류품이 널려 있었지만 경찰은 눈여겨보지 않았다. 변사사건을 보고받은 순천경찰서 형사과장, 순천경찰서장, 변사사건 수사를 지휘한 검사 중 '변사체 신원이 유병언은 아닐까' 하는 상식적인 의문을 품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검경은 유 전 회장 시신을 확보하고도 40여일간 유 전 회장을 잡겠다며 헛심을 썼다. 검찰은 전날까지도 "유병언 검거는 시간문제"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와 사후 대응은 국가와 시민 간 신뢰의 붕괴를 불렀다. 유 전 회장 사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억측과 음모론이 터져나왔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책위원회도 정부의 수사를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유 전 회장에 대한 검거작전과 사체 발견 발표까지의 상황은 상식선에서 납득하기 힘들다. 진도 앞바다에서 구조작업에 처참하게 실패한 국가의 무능은 유 전 회장 검거작전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세월호'는 현재진행형이다.

< 정제혁 기자 jhjung@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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