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시신 발견 현장]초여름에 옷 4겹 껴입고 겨울점퍼 걸쳐.. 가방 속엔 소주병

순천 | 나영석·강현석 기자 2014. 7. 22.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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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 남은 육포·콩알 나와
노숙생활, 추위에 떤 듯
구원파 "지금 많이 슬프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의 마지막은 시신을 발견한 경찰이 '노숙인'으로 단정할 정도로 초라한 행색이었다.

초여름인 지난달 12일 발견됐는데도 추위에 떤 듯 상·하의 모두 4겹의 옷을 껴입고 두툼한 검은색 겨울점퍼를 걸쳤다. 고가의 이탈리아제 로로피아나 점퍼와 신발은 모두 심하게 훼손됐다.

회색 가방과 주머니에서 발견된 물건들에서는 유 전 회장이 노숙생활을 지속한 듯한 정황이 엿보였다. 상의 주머니에는 20㎏들이 비료포대가 접힌 채로 있었다. 깔개로 사용한 듯 한쪽 면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 주머니에서는 먹다 남은 육포 2봉지와 콩알도 발견됐다. 회색 천가방에서는 치킨용 소스가 들어 있던 빈 통도 나왔다. 은거지였던 인근 별장에서도 금수원 농장에서 생산한 '유기농 식품'을 공수해 먹을 만큼 식생활에 까다로운 그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가방 속에 들어 있던 소주 2병과 막걸리 1병도 모두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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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 회장은 경기 안성시 보개면 금수원에서 생활하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전남 순천시 서면 송치재 휴게소 인근의 별장 '숲속의 추억'에서 숨어 지내다 지난 5월25일 검경이 별장을 급습하기 직전에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유 전 회장이 별장을 빠져나갈 때인 5월25일 순천에는 10㎜ 정도의 비교적 많은 비가 내리기도 했다. 이후 종적을 감췄던 유 전 회장은 지난달 12일 별장에서 2.5㎞ 떨어진 서면 학구리의 야산에 있는 매실밭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주머니와 가방에는 지갑이나 휴대전화 등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물건이 없었다. 경찰은 "발견 당시 시신은 벙거지를 쓰고 잠을 자듯 편안한 자세였다"면서 "부패가 심하고 술병이 발견돼 노숙인으로 추정했다"고 설명했다.

유 전 회장의 사체를 발견해 신고한 박윤석씨(77)는 22일 경향신문과 만나 "그날 비가 많이 내린 데다 가끔 출몰하는 노루떼에 의해 작물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아 밭을 살피러 갔다가 시신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처음 발견했을 당시엔 머리가 북동쪽을 향하고 있었으며, 색이 바랜 흰색 운동화 한 켤레가 사체 옆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고 말했다. 얼굴은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어 자세하게 살피지 못했지만 팔다리는 온전해 보였고 노출된 신체부위는 바싹 말라가고 있었다고 박씨는 설명했다. 사체가 발견된 곳은 서면 학구리 3거리에서 승주읍 방향 도로로부터 400m가량 떨어져 있고, 발견 장소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민가가 있을 정도여서 경찰이 제대로 수색만 했더라면 발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유 전 회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 전 회장이 이끄는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의 총본산인 금수원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말을 아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던 금수원 측은 오후로 접어들면서 "사실을 확인 중이다. 지금 많이 슬프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 전 회장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이자 구원파의 지도자이다. 신자들이 낸 헌금으로 세모그룹을 설립, 사세를 키웠고 1986년에는 한강 유람선 사업권을 취득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이른바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1992년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유 전 회장은 세모그룹의 후신인 청해진해운을 설립한 뒤 본격적으로 기업 재건에 나섰다. 그는 세월호 운영사인 청해진해운 등 50여개 계열사를 실질적으로 소유해왔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처럼 보였던 유 전 회장은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지목돼 또다시 검찰 수사를 받을 처지에 놓이자 도주 행각을 벌여왔다. 검찰이 5억원의 현상금까지 걸고 추적했지만 유 전 회장의 최후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셈이다.

< 순천 | 나영석·강현석 기자 ysn@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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