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조타실 미스테리.."주장 엇갈려"

목포 2014. 4. 24.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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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9일째]사고 당시 선장 대응 적절성 여부 논란

[머니투데이 목포(전남)=최동수기자][[세월호 침몰 9일째]사고 당시 선장 대응 적절성 여부 논란]

(서울=뉴스1) 김보영 16일 오전 9시쯤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6825t급 여객선 세월호가 좌초돼 구조대원들이 탑승자들을 구조하고 있다. 경찰은 해군함정 13척과 해군 헬기 1대, 소방 헬기 6대를 출동시켜 진도여객선 침몰 현장에서 구조 중이며 인근 섬 어선들도 출동해 구조할동을 벌이고 있다. 이 여객선에는 수학여행에 나선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 324명을 포함해 총 460여명이 탑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2014.4.16/사진=뉴스1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선장은 적절하게 처신했는가."

선장 이준석씨(69)와 선박직 선원들의 증언들이 다양한 경로로 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진술이 많아질수록 사고 당시 선장과 선원들이 과연 적절하게 처신을 했는지는 오리무중에 빠지고 있다. 진실게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4일 강정민 변호사(법무법인 영진)는 사고 직후 구속된 선장 이씨와 3등 항해사 박모씨, 조타수 조모씨를 접견한 후 사고 당시 상황을 재구성, 공개했다. 강 변호사에 따르면 이 선장은 "사고 10분전쯤 선장실로 향했다"고 진술했다.

이 선장은 진도 인근 해상 맹골수도 해역을 거의 다 빠져나와 위험한 구역은 벗어났다는 판단에서 배의 운항을 3등 항해사에게 맡기고 옷을 갈아입고 소지품을 가지러 선장실로 갔다고 밝혔다.

이 선장은 "시정이 트이고 확보되는 지점에 도착했고 3시간만 더 전진하면 되는 상황이었다"며 "10도 변침은 항해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것이라 마음을 놓고 선장실로 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원들은 선장 이씨가 사고 10분 전까지 조타실에 머물렀다는 주장과는 상반되는 진술을 하고 있다. 선원들은 합수부 조사에서 "(사고 1시간17분 전인) 오전 7시30분 조타실에서 선장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또 선원들로부터 "선장이 3등 항해사에게 인수인계 후 사라졌다", "선장이 출항 후 7시간 이상 잤다"는 식의 진술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 본인조차 사고 당일 진행된 첫 조사에서는 "사고 당시 담배를 피우러 갔다"고 밝힌 바 있다. 진술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후 변침과정에서 세월호의 균형이 무너져 좌현으로 50도 가까이 넘어갔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미끄러져 엉덩이와 갈비뼈를 다쳤으나 비상상황에는 나름대로 필요한 대응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1등 항해사 강모씨에게 구조요청과 선내방송을 지시했고, 기관장 박모씨에겐 배의조작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후 구조선을 확인하고 승객들에게 퇴선명령을 내린 후 선원들과 함께 퇴선했다는 것이다.

퇴선명령을 늦춘 이유에 대해서는 "조류가 빠르고 바다 온도가 낮아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구조가 힘들어 질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퇴선명령은 내렸지만 실제 방송이 됐는지는 확신하지 못한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이씨는 또 조타실과 객실이 구조적으로 분리돼 있고 통로가 기울어져 가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진도 VTS(해상교통관제센터)와의 교신내용에서 승객들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해명이다.

그러나 세월호의 경우 조타실과 객실이 분리돼 있는 것이 아니라 통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 합수부의 판단이다. 일부 선원들의 경우 통로 문이 잠겨 있다고 진술한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는 잠겨있지 않았다는 진술이 대부분인 것으로 전해졌다.

구조세력이 확인된 후에 퇴선명령을 내렸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진도VTS와의 교신내용을 보면 9시14분쯤에는 인근 상선이 현장에 도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5분 이상 이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비상식적이다.

무엇보다 할일을 다했다면 이 선장의 구조 이후 행적도 이해할 수 없다. 이씨는 자신이 선장임을 숨긴 채 팽목항을 떠나기 급급했다. 그는 "부상치료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구속 이후 병원 검진 결과 이씨는 별다른 부상을 당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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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목포(전남)=최동수기자 fire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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