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번에도 '기본' 깔아뭉개는 '不實 사회'가 재앙 불렀다

2014. 4. 1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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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한 세월호의 운항사인 청해진해운은 2012년 일본 해운사로부터 1994년 건조된 세월호를 들여오면서 여객선 3~5층에 승객을 모두 116명 더 받을 수 있도록 선실을 늘렸다. 이 리모델링으로 승선 정원은 원래의 840명에서 956명으로, 배 무게는 6586t에서 6825t으로 늘었다. 무리하게 구조를 변경한 것이다.

사고 당시 세월호엔 차량 180대와 컨테이너 화물 1157t을 싣고 있었다. 50t 이상 나가는 대형 트레일러도 석 대 실려 있었다고 한다. 세월호 같은 여객선은 선체 위에 빌딩을 세운 것이나 다름없어 일반 화물선에 비해 무게중심이 높기 마련이다. 세월호는 선박 구조 변경과 과도한 화물 적재로 무게중심이 더 많이 올라갔을 가능성이 있다. 선박이 기울었을 때 배의 균형을 바로잡을 복원력(復元力)도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적재된 컨테이너와 트럭·트레일러 등 화물을 제대로 결박했는지도 의문이다. 승무원·승객들은 세월호가 사고 당시 급히 우회전하는 순간 화물칸의 컨테이너를 묶어 둔 안전장치가 떨어져나가 컨테이너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많은 승객이 들었다는 '쾅' 하는 소리도 이때 났을 것이다. 출항 당시 세월호엔 컨테이너 100여개가 3~4층 높이로 쌓여 있었다. 그런데 일부 세월호 승무원은 "쇠줄이 아닌 일반 밧줄로 엉성하게 묶어 놓았다"고 말했다. 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선실을 벗어나지 말고 대기하라고 했던 이유도 배의 구조나 화물 적재 상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승객들이 한쪽으로 몰리는 걸 막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있다.

세월호엔 수압(水壓)을 받으면 저절로 텐트처럼 펼쳐지는 25인승 고무보트 46개가 장착돼 있었다. 자동으로 펼쳐지지 않으면 승무원들이 핀을 뽑아 바다 쪽으로 떨어뜨려 펼쳐지게 한다. 그러나 구명보트 가운데 펼쳐진 것은 한 개뿐이었다. 세월호 승무원들은 배가 기울어져 있어 구명보트에 접근할 수 없었다고 했다. 여객선 승무원들은 10일마다 구명보트 작동을 포함한 비상 훈련을 하게 법에 규정돼 있다. 규정대로 훈련을 했다면 구명보트 이상(異常)을 미리 알았거나 설혹 배가 기울어져 있었더라도 대처가 가능했을 것이다.

선진국 유람선들은 승객들이 배에 오르면 각기 자기 선실에서 구명조끼를 들고 갑판으로 나오게 한 후 한 시간가량 안전 교육을 한다. 승객마다 각자 배 안에서 어떤 경로로 빠져나와 어떤 구명정을 타야 하는지, 구명정 내 연막탄·조명탄은 어떻게 터뜨리는 것인지 등을 가르치는 것이다.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은 안전 교육은커녕 배가 침수되자 자기들 먼저 배에서 빠져나갔다. 선원법에 '선장은 승객이 모두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선 안 되고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는 인명 구조에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건 법 이전에 직업윤리 문제다. 세월호 선장·승무원은 이런 초보적 윤리도 지키지 않았다.

국내엔 연안 99개 항로를 운항하는 여객선이 173척 있다. 이 가운데 5000t 이상 나가는 대형 카페리도 세월호를 포함해 7척이다. 과연 이 여객선들이 불법 개조는 하지 않았는지, 구명정은 손쉽게 풀 수 있게 장착하고 있는지, 승무원 훈련은 꼬박꼬박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정부 당국은 지금 당장 전국 여객선에 대한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야 한다.

기본 규정이나 상식은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기본은 건물을 지탱하는 굄돌과 같은 것이다. 굄돌이 흔들거리면 건물은 언젠가 무너질 수 있다. 우리가 툭하면 '인재(人災)'라고 한탄하는 대형 재난 사고는 대부분 관련자들이 기본을 무시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선 기본, 규칙, 기초 규정을 존중하는 사람은 세상 물정 모르고 앞뒤가 막힌 사람으로 치부되는 분위기가 있다. 편법에 능해야 유능한 사람으로 대접한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맨 밑바닥엔 기본을 무시하는 우리 사회의 병폐가 있다.

[사설] 국민이 不信의 낙인 찍은 '허둥지둥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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