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7·24 세월호 100일의 기록] "생존 아이들 웃지도 울지도 못해"

임명수 2014. 7. 24.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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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의 표정 기록 중인 김종천씨"웃으면 친구들 잊었다고 할까봐 ?울면 엄마·아빠가 걱정을 많이 해"

"안산은 '회피의 도시'가 돼 버렸습니다. 시민들은 감정을 드러내기를 피하고, 다른 지역 주민들은 안산을 찾기를 피합니다."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대책위원회 산하 기록위원회의 김종천(42) 사무국장. 그는 사고 이틀 뒤인 18일부터 경기도 안산시의 모습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담고 있다.

 그는 원래 시민단체와 관련한 동영상 제작을 했다. 그러다 세월호 사고가 난 뒤 "우리 사회가 잊지 않을 기록을 만들어 보겠다"고 가족대책위에 제안했다. 그 뒤 100일 가까이 자원봉사로 기록을 수집하고, 만들어가고 있다. 처음 혼자 시작한 일에 한국사진협회 회원 등 50여 명이 가세했다. 지금까지 모은 기록물만 컨테이너 한 개 분량이다.

 동영상 등 자료는 희생자 가족과 생존 학생들을 주로 담았다. 합동분향소와 일반 시민들의 표정 역시 포착했다. 몇몇 장면은 그의 뇌리에 각인됐다. 지난달 중순 친구 3명과 함께 분향소에 온 여학생이 그랬다. 학생들은 한 학생의 영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었다. 사연을 물어보니 학생은 훌쩍이며 이렇게 답했다. "중학교 때 왕따시켰던 친구가 희생됐어요. 처음엔 어쩔 줄 모르다가, 같이 왕따시켰던 친구들을 불러 여기 왔습니다. 지금 아니면 영영 사과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어느 중학교 교사는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 중에 50명이 내가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이라며 오열했다고 김 사무국장은 전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던 심리치료에는 의문을 던졌다. "때론 500문항 정신검사지를 주고, 때론 빈 종이에 마음을 담아내 보라고 합니다. 그걸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게 아이들을 생각하는 치료일까요. 아이들 반응도 이랬습니다. '우리를 그저 연구 대상, 관찰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 같다'고." 생존 학생들은 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웃으면 주변에서 '벌써 세월호와 친구들을 잊었느냐'고 뭐라 할 것 같고, 울면 엄마 ·아빠가 걱정을 많이 할 것 같다는 게 아이들의 생각"이라고 김 사무국장은 설명했다.

 기록은 10년간 계속할 계획이다. 김 사무국장은 이를 "'사회의 기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세월호 사고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교훈을 잊지는 않았는지를 10년 후 안산의 모습과 75명 생존 학생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세월호 희생자 가족 100여 명과 안산시민 100여 명은 23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1박2일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이날 오전 9시 안산 정부합동분향소를 출발해 단원고를 들른 뒤 광명 시민체육관에서 하루 머문 뒤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거쳐 서울광장까지 걸어갈 예정이다.

임명수·구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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