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쓰럽게 보는 시선에 분향소도 몰래 다녀"

김다영기자 2014. 5. 2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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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희생자 아버지 힘겨운 일상

"같은 반 아이들이 탈출할 때 다 같이 살자며 일렬로 손을 잡고 나오고 있었대요. 그런데 중간에 손을 놓쳐서 앞에 있던 아이들은 구조돼 살고 뒤에 있던 아이들은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거야."

25일 전남 진도군청에서 만난 안산 단원고 희생자 학생 아버지 김모(49)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기울어져 물이 차오르는 배 안에서 친구들의 손을 잡고 공포에 떨었을 딸 수민(18·가명) 양 모습이 생생한 듯했다.

1반 수민 양은 사고 발생 1주일 만에 발견됐다. 발인도 마치고 이제 49재만을 남겨두고 있지만 김 씨는 아직 일과 생활을 다시 시작하지 못했다.

김 씨는 "평소에도 끔찍하게 부모 생각을 하던 아이인데, 부모 고생시키기 싫어 그렇게 일찍 나와준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라면서도 "그때 손만 놓치지 않았어도 내 딸이 살았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손을 잡고 있다가 살아남은 아이들의 충격도 커서 쉽게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산사람은 살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고 말끝을 흐렸다.

김 씨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딸을 잃은 고통 외에도 주변의 동정어린 말과 시선이었다. 그는 "집 밖으로 나가면 안쓰러운 눈빛으로 이런저런 위로의 말이 쏟아지는데, 그때마다 피 같은 자식을 잃었다는 아픔이 다시 가슴을 친다"며 "분향소 한번 갈 때도 밖에 사람이 있나 없나 확인하고 도망치듯 아파트를 빠져나간다"고 털어놨다.

이어 "대부분의 유가족들이 그런 이유로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지옥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며 "자식을 찾은 부모들이 다시 진도를 찾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고 전했다.

김 씨는 현재 생업을 접고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며 16가구의 실종자 가족들에게 힘을 보태는 데 온 힘을 바치고 있다.

김 씨는 "자식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던 나는 그래도 축복 받았던 것 아니냐"며 "국민들의 관심도 줄어들고 있는데 가족의 뼈라도 찾으려는 남은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을 나라도 위로해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진도 = 김다영 기자 dayoung817@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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