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거역하면 나도 못 산다.. 길 사장 눈물까지 흘려"

이범준 기자 2014. 5. 16.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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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외압설' 폭로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사진)은 지난 9일 오후 2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그는 자신에게 붙은 의혹을 해명하는 데 주로 시간을 썼다. 그는 "교통사고 사망자와 세월호 희생자를 비교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앵커에게 검은 옷을 입지 말라고 한 것은 실종자 구조가 아직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그는 회견 막바지에 갑자기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온 길환영 사장은 즉각 자진 사퇴해야 한다"며 외압설을 제기했다. 이날 밤 방송된 JTBC 통화에서는 "길 사장이 윤창중 사건을 톱뉴스로 올리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에 KBS 기자협회 등은 길 사장에게 해명을 요구했지만 답이 없었다. 결국 김 전 국장의 주장이 사실로 굳어지면서 길 사장 사퇴 요구가 거세졌다. 그런데 김 전 국장이 사퇴 1주일 만인 16일 기자총회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새롭게 폭로했다.

그는 "9일 오후 2시 기자회견을 35분 남기고 길 사장이 휴대전화로 불렀다. 사장이 'BH(청와대)에서 연락왔다'며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며 청와대 인사개입설을 털어놨다. 그는 "길 사장이 거역하면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다. 대통령 뜻이라며 눈물까지 흘렸다"고 덧붙였다.

김 전 국장의 이날 발언으로 사퇴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지금까지는 길 사장의 보도 관여가 다분히 청와대의 지시를 받았을 것이라는 심증밖에 없었다. 하지만 1주일 전까지 KBS 보도를 책임진 보도국장이 모든 기자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길 사장으로부터 전해들은 청와대의 인사개입설을 털어놓은 이상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한다. 김 전 국장이나, 길 사장이 근거 없이 대통령을 들먹였다면 청와대는 사실을 밝혀내고 대통령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만약 김 전 국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청와대는 정치적, 법률적 책임을 져야 한다. 방송법 105조에 따르면 부당하게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야 한다.

길 사장의 사퇴는 다음주가 고비다. 17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2노조)의 신임투표 결과가 나올 예정이고, 보도담당 보직부장들이 18일을 사퇴 시한으로 제시했다.

길 사장이 19일 팀장 이상 사원들과의 대화를 제의했지만 길 사장은 점점 더 외통수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22일부터 6·4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다. 청와대의 방송개입 문제가 선거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 청와대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생기게 된다.

길 사장으로서는 KBS 내부에서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없어졌다. 평기자들로 구성된 기자협회에 이어 보직부장들이 집단 보직사퇴를 밝힌 상황에서 사장과 기자단을 중재해야 할 임창건 보도본부장까지 사표를 제출했다.

공영방송사 보도본부에서 뉴스를 제작하는 부장들이 집단으로 보직사퇴한 것은 한국 방송사상 유례가 없다. 공영방송에 처음으로 공권력이 들어간 1990년 KBS 파업 때도 없었다. 2012년 MBC 파업 때도 부장 가운데 일부가 보직사퇴했을 뿐이다. 임 본부장이 사표를 낸 것도 상황의 심각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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