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뚫린 대한민국]① "스위스치즈와 같았던 국가위기시스템..5가지가 없었다"

이재원 기자 2014. 5. 7.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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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응장치중 한가지만 작동했어도 사고를 재앙으로 키우지는 않았을 것" 전문인력·지휘체계·대비책·민간전문가활용·생명존중철학 5가지 부재

지난달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300명이 넘는 사망·실종자를 낸 세월호 침몰 사고. 멈춰버린 국가의 위기관리 시스템은 재난을 끔찍한 재앙으로 키웠다. 정부는 사고 초기부터 난맥상을 보였다. 탑승자 전원을 구조했다는 허위 발표를 하더니, 결국 정확한 탑승 인원과 구조 인원을 파악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해양경찰과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 등 관계 부처는 제각각 업무를 수행하느라 손발이 맞지 않았다. 해경은 사고 발생 19일째인 지난 4일까지 기본 절차 중 하나인 수난구호명령도 내리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도대체 언제까지 정부의 이런 무능함을 참아야 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조선비즈는 국내 전문가들과 함께 이번 사고가 대형 사고로 번진 원인을 국가 위기관리 측면에서 분석하고 대안을 들어봤다. 정부가 사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와 해결책에 대한 내용이다. 같이 고민한 전문가는 백민호 강원대 재난관리학과 교수, 이동규 동아대 석당인재학부 교수,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 정지범 한국행정연구원 재난관리연구실장, 미국 재난관리사인 하규만 박사(가나다순) 등 6명이다. [편집자주]

"이번 세월호 사건은 스위스 치즈 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가 스위스 치즈 모델의 전형적인 예라고 규정했다. 스위스 치즈 모델이란 구멍 없이 촘촘한 미국 치즈와 달리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스위스 치즈를 빗대 사고원인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불규칙한 구멍이 나있는 스위스 치즈도 여러 장을 겹쳐 놓으면 구멍이 메워지듯, 위기에 대응할 여러 장치 중 한가지만이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사고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국가 위기관리 측면에서 봤을 때 이번 사고를 키운 구멍에 해당하는 실책(失策)으로 ▲전문 인력 ▲제대로 된 지휘체계 ▲사고가 났을 때를 가정한 대비 ▲민간 전문가 활용 능력 ▲생명 존중의 철학 등 5가지 부재(不在)를 꼽았다.

◆ "정부에 전문가라고 부를 사람 하나도 없어"

"전문성이 필요한 재난 관리 분야도 순환 보직(일정 시기가 지나면 인사이동을 해야 하는 것)을 하니 각 부처 내에 전문가가 하나도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백민호 강원대 재난관리학과 교수는 이번 세월호 사고 이후 대응에 나선 정부의 실무자 중 전문가가 없어 피해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법조인 출신인 국무총리나 정치인 출신인 장관은 그렇다 치더라도 실무를 지휘할 안전행정부의 고위 공무원 중에 안전 분야 전문가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안행부의 두 차관은 일반행정 전문가이고, 안전 업무를 총괄하는 안전관리본부장은 이 분야서 9개월 일한 경험이 전부인 상황이다. 안전관리본부의 실·국장 역시 관련 경험이 없거나 2~3년으로 짧다

제도가 잘 갖춰진 선진국에서도 비전문가가 재난을 지휘하면 재앙은 커진다는 것을 보여준 예는 많다. 미국에서도 불과 10년 전인 지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당시 관련 경험이 전혀 없는 마이크 브라운 연방재난관리청(FEMA) 청장이 위기관리를 엉망으로 해 사고를 키웠다는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이후 미국은 소방 전문가 출신으로 태풍과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가 많은 플로리다주에서 재난관리관을 역임한 크레이그 퓨게이트를 FEMA 청장으로 임명했고, 최근 잇단 자연재해를 잘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지범 한국행정연구원 실장은 "경험이 없는 사람이 지휘를 하면 아무리 시스템이 좋아도 재난을 제대로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영국의 경우 위기관리를 총괄하는 국장에 옥스퍼드대 박사 출신 등 해당 분야 전문가를 등용했다. 이재열 교수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리스크(위험) 관리가 국가 역량의 핵심'이라고 말했을 만큼 영국은 위기관리를 주요 국정 과제로 삼고, 전문 인력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 "중구난방 콘트롤타워, 현장 지휘권은 무기력"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 대응에서 전문가는 물론 제대로 된 지휘 체계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사회재난은 안전행정부, 자연재난은 소방방재청으로 각각 관리하게 한 위기관리 조직 자체가 잘못됐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안행부는 지난 2월 재난안전관리기본법을 개정해 사회 재난을 안행부 안전관리본부 소관으로 가져갔다. 통일된 조직 없이 오히려 이원화의 길을 간 것이다. 백민호 강원대 교수는 "사고 관리 주체가 이렇게 나뉘다 보니 재난이 발생했을 때 누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관료들이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고, 정부의 초기 대응은 허둥댈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행안부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세월호가 침몰한 16일 오전 설치돼 오후 2시 '368명이 구조됐다'고 발표했다가 한 시간 반 뒤 '다시 알아보니 구조된 건 164명'이라고 정정하는 촌극을 빚었다. 인명 구조에 1분 1초가 급한 상황에서 사고 규모를 파악하는 데만 몇 시간이 걸린 것이다. 정부는 중대본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자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범대본)라는 법에도 없는 조직을 출범시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이 마저도 문제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이동규 동아대 교수는 "이미 사의를 표명한 총리가 범대본이라는 초법적 조직을 이끄는 데 무엇이 제대로 되었겠느냐"고 말했다.

현장 지휘소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은 것도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문제다. 미국의 경우 현장 책임자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사고 지휘 시스템(ICS)' 제도가 마련돼 있다. 이번 사고의 경우 해경이 현장에서 책임을 지고 의사 결정을 해야 했지만, 그들에게는 권한도 능력도 없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하규만 박사는 "9·11 테러의 전권을 가진 사람은 뉴욕 소방청장이었고, 허드슨강 US 에어웨이 사고 때 지휘관이 뉴욕 항만청장이었듯 재난 상황을 지휘할 곳은 현장에 있어야 한다"면서 "사고 초기 현장과 멀리 떨어져 있는 중대본에서 이를 통제하려고 했던 것은 큰 실책"이라고 지적했다.

◆ "6000톤급 배가 침몰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뉴얼도 없어"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재난에 대비하는 기본적인 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재난에 대한 예방과 대비, 대응, 복구 4단계 중 예방과 대비 부분이 매우 취약했다는 것이다. 이동규 교수는 "한 예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의 상황관리규정을 보면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 본부는 '상황판단회의'를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외부 전문가를 갖추도록 돼 있지만, 정부는 외부 전문가를 미리 파악해놓지 않았다"면서 "수난구호법에 있는 절차대로 시행할 대비가 전혀 안 돼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대비의 영역인 사고 처리 매뉴얼이 거의 작동하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이동규 교수는 "6000톤급 배가 침몰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매뉴얼도 없었다"면서 "이렇게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보니 해경은 사고 초기 배 1층을 깨고 들어가야 하느냐 아니냐 조차도 판단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규만 박사도 매뉴얼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 박사는 "외국인에게 '도망가!' 라고 이야기하면 못 알아듣고 '뛰어!'라고 해야 하듯 매뉴얼은 용어가 쉬워야 한다"면서 "민간인 몇 명이 수천만원을 받고 만든 지금의 3400여개 매뉴얼은 복잡한데다 연결 고리도 없어 보이는 등 문제가 많다"고 밝혔다.

◆ "민간 전문가 많아도 활용 못 하는 정부"

미국 등 선진국이 재난이 닥쳤을 때 민간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과 달리 우리 정부는 전문가를 활용할 능력도 없었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사안이다. 이번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많은 민간 전문가가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정부는 이들을 통제하고 지휘해주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동규 동아대 교수는 "자원봉사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스위치를 켜주면 바로 일을 할 준비를 하고 현장으로 갔지만, 정부는 스위치 보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이렇게 민간 전문가를 활용하지 못한 것은 애당초 재난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며 민간의 참여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민간 잠수부가 자원을 해도 누가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를 알지 못해 현장에서 바로 투입을 할 수 없었던 것도, 결국 무용지물로 판명이 난 다이빙 벨이라는 장비를 쓸지 말지를 과감하게 결정하지 못했던 것도 민간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지범 실장은 "미국은 재난 대응 매뉴얼에 민간인의 동원 범위와 한계를 매우 정확히 명시하고 있다"면서 "민간이 정부가 부족한 부분을 돕는 보조적인 역할이 아니라 아예 재난 대응과 복구의 실질적인 주체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 "규정 따르느라 시간 낭비, 인명(人命) 중시했다면 이렇게 못 해"

이재은 충북대 교수는 "우리나라 위기관리 시스템에 인간 생명 존중의 가치와 철학이 없는 것도 이번에 드러난 큰 문제"라고 했다. 관계자들이 사고가 터지면 장관에게 보고하고, 대책본부를 만들고, 지시를 받고, 이행을 하는, 규정에 나온 대로 하는데만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중요한 인명 구조의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

이 교수는 "사람의 생명을 우선시했다면 대책본부를 설치하는 데 장관 결제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먼저 설치하고 결제를 받았을 것"이라면서 "해경이 바지선을 투입하는 데 절차를 지키느라 시간을 허비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전문가들은 "1993년 서해훼리호 사고 이후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며 "실패에서 교훈을 전혀 얻지 못한 것 역시 한 원인"이라는 의견도 냈으며,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던지지 못한 것도 예방을 제대로 하지 못한 원인"이라고 했다. 또 "최악을 가정하지 않고 위기 관리 예산을 제대로 편성하지 않은 것" 등도 실패 이유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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