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엉뚱한 얘기만.. '봉숭아 학당' 대책회의

2014. 5. 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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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제역할 못하는 정부]
鄭총리 주재 회의 '중구난방'

[동아일보]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15일째인 30일 전남 진도군청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서 열린 총리 주재 '민관군 해외 전문가회의'에서 정홍원 국무총리(서 있는 사람)가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진도=사진공동취재단

한심한 회의였다. 하나마나한 질문과 답변들로 아까운 시간이 갔다. 군경 구조팀 현장책임자는 이미 언론 브리핑 등을 통해 다 알려진 내용을 총리에게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수없이 되풀이됐던 논쟁은 한 걸음의 진척도 없이 그대로 반복됐다. 30일 전남 진도군청에 차려진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에서 오후 2시부터 무려 3시간 가까이 열린 '세월호 구조·수색 관련 민관군 해외 전문가회의'는 정부의 무능력한 대응의 민낯을 보여주는 회의였다. 본보 취재팀이 회의 내용을 단독으로 취재했다.

"(선내에) 투시가 돼서 더 쏘아지는 그런…(밝은 등을 설치하면 안 되나?)."(정홍원 총리)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 그러면 잠수사 눈이 더 부십니다."(군 관계자)

이날 회의를 주재한 정 총리는 시종일관 초점을 잡지 못했다. 정 총리는 현장 실무자가 알아서 해야 할 부분을 되풀이해 질문했다. 정 총리는 "유압절단기 같은 거 활용을 어떻게 하는지?" "(선체 내 일부 문은) 위로 올려야 하는 부분도 있다던데 그런 부분은?" 등의 질문을 했다.

총리가 묻지 않아도 현장 책임자가 지금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내용이었다. 정부 관계자들은 이미 기자회견 등을 통해 다 알려진 내용을 총리에게 다시 한 번 설명해야 했다. 정 총리는 "(잠수) 인원을 더 늘리지는 못하더라도 능률면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라"고 하나마나한 지시를 하기도 했다.

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는 해양수산부 2명, 해양경찰청 3명, 해군 구조수색팀 5명 등 정부 책임자들과 국내 민간 전문가 10명(선체구조 4명, 수색·잠수 4명, 조사해양플랜트 1명, 해저지형 해류 1명), 해외 구난 전문가 4명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이주영 해수부 장관뿐 아니라 사고 현장에서 수색팀을 직접 지휘하는 해군 중령도 진도군청에 와 회의에 참석했다. 4월 27일 사의를 표명한 정 총리는 29일 오전 10시 40분 진도군청에 도착한 뒤 진도군수실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다가 이날 오후 2시 회의를 주재했다.

현실성이 없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열기 힘든 선체 문을 여는 방법에 관해 논의하던 중 참석자 누군가는 "(모든 선실 문을 여는) 마스터키를 구해주십쇼"라고 말했다. 뒤이어 또 다른 누군가가 "마스터키는 좋은 생각이시고"라고 답했다. 선실 문을 여는 마스터키가 있고, 실제 잠수요원들이 마스터키가 있어 선내 문을 열 수 있다면 지금까지는 왜 그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했는지 의문점이 드는 대목이다.

영국 네덜란드 일본 등에서 온 외국인 전문가는 회의 내내 겉돌았다. 한 외국인 전문가는 수색 구조 관련 의견을 묻자 "어떤 잠수 방법도 100% 보장된 것이 없지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힘내시기 바란다.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선박 인양은 계획 단계와 실행 단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총리가 "그 외에 혹시 장비나 다른 지원 해줄 수 있는 장비가?"라고 말하자 한 외국인 전문가는 "계속 지금 하던 방법을 사용해서, 어떤 것이 효과적으로 되는지 안 되는지 검토하는 것밖에 없고. 지금 다른 방법은…"이라고 말했다.

사고 이후 지속된 민간 잠수사 투입 논쟁도 진척 없이 계속됐다. 한 민간잠수협회 회장은 '다이빙벨'의 장점을 설명한 뒤 "가이드라인 설치를 늘려 민간 잠수사를 더 투입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구조팀 관계자는 "그러다 가이드라인끼리 꼬이게 되면 매우 위험하다"고 반대했다. 한 구조팀 관계자는 "묘책은 없다. 잠수해서 하나하나 건져 올리는 원시적인 방법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회의가 끝난 뒤 국무조정실은 △선실 윗문 개방 장비(강력유압기 등) 개발·제작 추진 △민간 잠수사 활용, 해경과 핫라인 개설 등을 채택했다고 발표했다. 이 중에는 이미 구조본부가 하고 있는 "시신 유실 방지를 강화하기 위해 쌍끌이어선, 공중정찰, 해안수색 군병력 동원 등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국무조정실은 회의가 끝난 뒤 정 총리가 구조·수색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찾아내 과감히 채택하고자 회의를 개최했고, 제시된 의견들은 신속히 검토해 진행하라고 했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정 총리가 실제 회의 마지막 부분에 했던 말은 이렇다.

"(회의를) 같이함으로써 평소에 궁금했던 거를 해소하는 게 있어서, 여기 참여했던 분들이 각자 위치로 돌아가시게 되면 주위 사람들한테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해를 시키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진도=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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