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최초신고' 학생 父 "집에도 전화 못했는데.."

2014. 4. 2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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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지 열흘째인 25일 오전 11시 안산의 한 병원 장례식장 입관실 밖으로 가톨릭성가 227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가 나지막하게 새어나왔다.

입관실에 모인 단원고등학교 2학년 최덕하(18) 군의 가족들은 입관의식이 끝난 뒤에도 노란 천을 덮고 아무 말 없이 누워있는 최군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한참을 흐느꼈다.

최군의 시신을 담은 관이 옮겨지자 아버지 최성웅(52)씨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장례식장 밖으로 힘없는 걸음을 옮겼다.

최씨는 전날까지 전남 진도에서 수습된 시신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팽목항과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오가며 아들을 기다렸다.

잠수부들을 찾아가 "남의 목숨을 담보로 죽은 자식 살리기 싫다"고 말하고 아들을 바다에 묻기로 뼈아픈 결심을 하려던 찰나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의 시신을 찾았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또 배가 가라앉는 다급한 와중에 가장 먼저 신고 전화를 해 수많은 승객을 살린 학생이 아들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한걸음에 달려가 만난 아들은 추위에 떨었던 듯 트레이닝복 위에 반바지를 겹쳐 입고 있었다. 구명조끼는 보이지 않았다.

최씨는 "바다를 보며 기도 밖에 할 수 없는 한심한 현실에 화만 났는데 이렇게라도 (아들이) 돌아와 줘서 정말 감사하다"며 "구명조끼라도 입었으면 가슴이 이렇게까지 아프진 않을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전날 밤에 덕하가 안개가 많이 끼어 출항이 늦어지고 있다고 전화했는데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며 "애미, 애비에 전화할 새도 없이 신고를 하고 이렇게 돌아온 아들이 자랑스럽지만 정말 보고싶다"고 흐느꼈다.

최군의 큰아버지는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걸 보니 살아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신고 전화가 그렇게 길어지지만 않았어도…"라며 눈물 흘렸다.

최씨는 사고 전날 아침 환하게 웃으며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하는 아들의 모습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은 듯 멍한 표정으로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장례식장을 찾은 성당 교우들은 최덕하 요한이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가 미처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남윤철 담임교사를 유독 따랐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그 선생님에 그 제자"라며 안타까운 듯 혀를 차고 빈소로 향했다.

최군의 시신은 지난 23일 바다 속 깊이 가라앉은 세월호에 진입해 수색에 나선 잠수부들에 의해 4층 선미 부분에서 발견됐다.

경기도와 안산시는 유족과 협의해 최군을 의사자로 지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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