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풀린 공공부문 민영화]'영리 자회사' 통해 의료 민영화 '우회로' 연 정부..배후엔 '의산복합체'

송윤경 기자 2013. 12. 19.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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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료 - 민영화 추진 역사와 배경

박근혜 정부가 의료법인의 '영리 자법인'을 허용키로 했다. 병원 합병과 법인약국 도입의 둑도 터버렸다. 2000년대 초부터 법·제도적 논의가 시작돼 이명박 정부 때 좌절된 의료민영화를 우회적인 방법으로 추진한다는 논쟁에 휩싸였다.

'의료민영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시도한 것은 이명박 정부였다. 2008년 2월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건강보험 민영화 검토' 등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 정책에 대한 국민 반대가 강력하다는 사실이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시작된 촛불집회에서 확인됐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김종명 의료팀장은 "의료민영화라는 단어 자체가 대중화됐던 시기가 바로 촛불집회 때였다"고 말했다.

초기 이명박 정부의 의도는 전면적인 의료민영화에 가까웠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완화될 경우 어느 병원을 가든 건강보험이 적용될 것이라는 지금까지의 '상식'은 깨진다. 병원들이 건강보험 말고 특정 민간보험만 보험적용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 병원이 특정그룹 계열사의 민간보험만 적용하겠다고 나선다면, 국민의 의료비는 이 그룹으로 급격히 흡수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그룹의 '망' 안에 있는 이들은 이익추구 성향이 강한 기업에는 단순한 '환자'를 넘어서 '수익창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건강보험의 힘은 급격히 약화되고 '미국식 민영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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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실손의보 도입환자 '유인·알선 법안'은논란 끝에 자동 폐기▲MB 때 가장 적극적 추진건보 당연지정제 폐지 등'미국식' 국민 반대로 무산▲현 정부 '법인약국' 길 터줘경제부처·보험업계 등이반대 여론에도 도입 시도

의료민영화를 강력히 반대하는 민심을 알고 움직였던 부처는 그나마 보건복지가족부였다. 2008년 4월 복지부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확고히 유지하겠다는 '정부 입장'을 밝혔다. 두 달 뒤 이명박 대통령은 특별기자회견에선 "가스, 전기, 의료보험을 민영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의료민영화 논의는 물밑에서 진행됐다. 복지부·기재부는 2009년 12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 용역보고를 발표했다. 정부 내에서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사실상 반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찬성'으로 갈린 갈등 확장기였다. 정부는 정권 말인 지난해 4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의료법인 규제를 완화토록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전면적인 의료민영화는 좌절됐지만 불씨는 살려둔 정권이었다.

바통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의료민영화 추진 방식이 더 세밀해졌다. 의료법인의 영리법인화 허용 대신 의료법인에 영리법인을 자법인으로 둘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의료법인은 비영리법인으로 놔뒀으니 의료민영화가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 있으면서도 병원에는 더 큰 이익을 안겨줄 수 있는 호텔·헬스케어·의료기구사업 등을 할 수 있도록 열어준 것이다. 이미 병원이 거둬들이는 수익의 대부분은 '부대사업'인 장례식장 사업, 의료기기, 건강검진서비스 등에서 나오고 있다.

의료민영화 도입에는 참여정부 책임도 빼놓을 수 없다. 법·제도적인 틀 논의는 그때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2005년 참여정부는 보험업법을 개정해 생명보험사도 실손 의료보험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정액제 보험과 달리 실제 의료비에 맞춰 보장을 해주는 실손보험 시장에 삼성생명 등 생명보험업계가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실손보험 가입자는 현재 3000만명에 이른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들이 실손보험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이유는 2005년 보건의료단체연합이 폭로한 삼성생명내부전략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정부의 건강보험 대체'라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민간 실손보험 가입자가 많은 상황에서는 보험사가 환자들에게 '이 보험을 적용받기 위해선 어느 병원으로 가라'는 식의 '유인·알선'만 할 수 있어도 건강보험체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유인·알선 행위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참여정부 말기 때 만들어졌다가 논란 끝에 17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국민 반대가 심한데도 역대 정권에서 의료민영화 시도가 끈질기게 이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정책연구원의 조원준 연구원은 '의료민영화 논의의 전개과정과 향후전망'을 통해 의료민영화 추진 주체로 "재벌 병원의 시장진입으로 인해 환자유치 경쟁이 촉발된" 의료기관과 경제부처, 보험업계 등을 꼽았다.

최근엔 '의산복합체'를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는 < 건강할 권리 > 라는 책을 통해 "군산복합체라는 말을 살짝 비틀어 미국 하버드 의대 교수 아널드 렐먼이 처음 사용한 의산복합체"의 개념을 소개했다. 김 교수는 "의산복합체는 의사와 병원, 보험회사, 제약기업, 의료기기업체 등 다른 사업체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해 만드는 이해관계 네트워크를 뜻한다"며 "이들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갖고 협력하면서 공공보건정책과 제도를 통제하고 힘을 미치려 한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서 대표적인 의산복합체로 꼽는 곳이 '삼성'이다. 보험사(삼성생명)와 병원(삼성의료원)이 있으면서 동시에 의료기기업체(삼성 메디슨)까지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료민영화에 다가가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금만 바꾸어도 이해관계가 크게 걸리게 되는 회사이다.

삼성은 병원 경영의 흐름을 바꾼 장본인으로도 꼽힌다. 이상규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한국 병원의 역사는 삼성의료원 개원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이 삼성의료원 개원 전 대규모의 설문조사를 통해 국민들이 주로 대형병원을 언제 이용하는지를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장례식'이라는 점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삼성의료원은 번쩍번쩍한 장례식장을 만들었는데, 그 경향은 이후 다른 대형병원들에 전파됐다"면서 "(환자에서 나아가) '고객'이라는 개념을 먼저 도입한 곳도 바로 삼성이었다"고 말했다.

<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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