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환의 유레카, 유럽] 유럽 겨누는 '차르 푸틴' .. 되살아나는 '100년 전 악몽'

한경환 입력 2014. 4. 21. 00:22 수정 2014. 4. 21. 06: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동부 내전 일촉즉발러 "자국민 보호" 명분 개입 시사나토, 주변국에 전투기·함정 급파유럽의회 의장 "연내 전쟁 가능성"

유럽 대륙에 하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유령이….

 올해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는 해여서 유럽인들의 가슴은 더욱 요동친다. 마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올해 또다시 유럽에서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위기감과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고 말한다. 1914년 몽유병자처럼 전쟁에 휘말렸던 유럽 대륙은 또 한 차례 피의 전장(戰場)이 될지 모를 가능성 앞에 조바심을 태우고 있다.

 전운의 진원지는 우크라이나 동부다. 분리주의 친러시아계 주민과 무력진압에 나선 정부군 간의 대치가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이 지역이 1914년 6월 28일의 사라예보가 될지도 모른다. 1차대전의 도화선이 된 프란시스 페르디난트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암살사건이 일어난 곳 말이다. 4년 넘게 계속되며 9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인류 최초의 전면 전쟁이었다.

 양차 대전을 겪은 유럽인들은 사소한 사건이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결코 배제하지 못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계 주민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러시아가 선전포고를 하는 건 예상이 어렵지 않다. 실제 블라디미르 푸틴(사진)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내전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키예프의 반러시아 정부를 비난하며 여차하면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이처럼 전쟁 위기감 뒤에는 이른바 러시아 공포증(Russophobia)이 있다. 2008년 조지아(러시아어로는 그루지야) 전쟁, 지난 3월의 크림반도 전격 합병에 이어 동부 우크라이나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21세기판 차르(황제)' 푸틴의 야욕이 유럽 대륙을 제국주의 그림자로 뒤덮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 수출하는 가스공급을 중단하겠다거나 값을 대폭 인상하겠다는 위협은 이미 일상화가 됐다.

 독일은 러시아의 예상치 못한 강공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동방정책을 통해 냉전 시절부터 크렘린과 두터운 신뢰관계를 쌓아온 독일은 그동안 러시아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러시아의 도발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여론조사에서 대러시아 제재 반대가 두드러지게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도 좌불안석이기는 마찬가지다. 영국 리처드 다냇 전 전 합참의장은 최근 영국이 2018년까지 육군 병력을 워털루전투 이후 가장 적은 8만2000명 규모로 줄이는 계획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하지 않은 중립국 스웨덴에서도 재무장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옛 소련 국가들은 거의 패닉 수준이다. 푸틴이 크림합병 때 꺼내든 '전가의 보도'인 자국인 보호 카드가 언제 날아올지 모른다.

 2차대전 직전 나치는 독일인 보호 명목으로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합병했다. 그러자 당시 소련은 발트 3국인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를 집어삼키고 서부국경에 접한 폴란드·핀란드·루마니아 일부 지역들을 합병해 거대한 담을 구축했다.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발트 3국은 뼈아픈 역사가 이번에 되풀이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미국·유럽연합(EU)·나토가 푸틴의 팽창주의 공세를 무력으로나 경제제재로 저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현실로 드러나면서 러시아에 대한 공포는 날로 확산하고 있다.

 발트 3국은 2004년 집단안보를 담보해주는 나토와 EU에 가입했지만 이걸로 완전히 안전지대가 됐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전례도 많다. 폴란드는 2차대전 전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안전보장 약속을 받았지만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고 결국엔 전후 소련의 영향권에 갇히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냉전 시절인 1956년 헝가리의 반소련 민주화 봉기와 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이 소련 탱크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기억이 생생한 옛 공산권 동유럽 국가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페트르 파벨 체코 군참모총장은 "우리가 신속히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약화를 목표로 주변국가의 대동단결을 주장했던 프로메테이즘의 발상지인 폴란드도 긴장에 휩싸여 있다.

 푸틴 지지율이 고공행진하고 서방에 대한 혐오증이 커지고 있는 러시아 내 분위기 역시 전운을 짙게 하는 요인이다. 9·11테러 직후 미국 집집마다 애국심을 상징하는 성조기가 내걸렸듯이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 곳곳에선 백·청·적 3색 러시아 국기가 창문마다 나부끼고 있다. 푸틴의 크림 합병에 반대하고 서방에 동조하는 '배신자'를 색출해내야 한다는 주장이 들끓고 있다.

 러시아는 러시아어를 공용어에서 제외한 에스토니아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비탈리 추르킨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는 "기괴한 러시아 혐오와 뿌리깊은 증오심이 우크라이나에 가득 차 있다"고 비판했다. 양 진영의 혐오·감정 대립의 골이 깊어갈수록 전쟁을 부르는 위험지수는 높아질 것이다.

 유럽에서는 그동안 다시는 1·2차 대전과 같은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았던 평화낙관주의가 팽배했다. 철의 장막이 무너진 이후 지속된 평화무드와 최근의 금융·재정위기로 유럽 국가들의 방위비가 대폭 삭감되고 군축은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유럽과 나토의 방심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로 뒤통수를 맞았다. 러시아의 무력사용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가 아무런 대비 없이 맞이했던 조지아 전쟁은 신호탄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안보 해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나토는 뒤늦은 감은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발트 3국과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에 전투기와 함정을 증강 배치하고 있다. 폴란드는 자국 내 나토군 상시 주둔기지 설치를 강력히 요구한다. 나토는 1997년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회원국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이를 지금까지 유지해 왔다. 체코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은 잇따라 국방비 증액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나토는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회원국이 아닌 우크라이나에 군사개입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러시아가 직접 뛰어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확전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사소한 돌발적인 사건이라도 대형 참사의 불씨가 될 수 있다. 평화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1차대전 100주년의 해에 유럽에서 전쟁의 공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전쟁은 철저한 대비를 할 때만이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평범한 교훈을 다시 일깨워 준다. 10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악몽 중의 악몽이 아닐 수 없다.

한경환 국제선임기자

문자 한통으로 청와대에 사고 알렸다…보고 시점은 '더 충격'

'유족충은 전라도 홍어들'…일베 게시글 '충격'

사고 선장 "몸 아프다" 병원에…지인들은 '의외'

민간보다 못하다? 軍잠수사 능력 어느 정도인가 보니

5살 때부터 여아 목 조르는 부족, 이유 봤더니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