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러 대화채널 가동..우크라이나 사태 해법 나올까
[한겨레] 서방-러 참여 진상조사단 출범
2008년 '조지아 타결' 재현 관심
러, 크림반도 연결 다리 건설키로
미, 러의 무력점령 제어가 목표
군사적 개입 뜻은 전혀 없어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장악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강하게 비난하면서도 현실로 인정하는 가운데, 러시아와 독일 정상이 이번 사태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기로 합의하고 선발팀이 3일 현지로 출발한다. 이는 러시아가 서방의 제안을 처음으로 수용한 것인데, 위험한 군사 대치를 벗어날 출구를 찾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과도정부는 러시아가 자국 영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다리 건설을 선포하는 등 강경 대응을 하고 친러 성향이 강한 동부에서 분리주의 움직임이 거세지자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유럽담당 차관보는 3일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회의를 마치고 진상조사단 활동을 위한 선발팀이 우크라이나 현지로 이날 밤 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앞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위기 타개를 위한 진상조사단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2일 합의했다. 이에 따라 서방과 러시아가 모두 회원으로 참여하는 유럽안보협력기구가 조사단 설치를 주재하게 된 것이다. 두 정상은 전화 통화에서 러시아의 크림반도 군사 개입을 두고 "국제법 위반" "완벽하게 적절한 조처"라 맞섰지만, 양자·다자 대화는 계속하기로 합의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이는 2008년 러시아가 친서방 노선을 추진하던 조지아공화국(옛 그루지야)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자 유럽연합(EU)이 수습에 나선 사례에 비견된다. 당시 러시아가 조지아 정부한테서 사실상 항복을 받아낸 뒤 미국이 제재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유럽연합 순회 의장국이던 프랑스 정부가 평화안 타결을 이끌어냈다.
미국 행정부와 정치권에서 러시아 제재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방문해 과도정부에 대한 정치·경제적 지지를 약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뜻이 전혀 없어, 러시아의 군사행동이 크림반도를 넘어서지 않도록 하는 게 미국의 실질적 목표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디언>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완전히 점령했다는 것을 2일 미국이 인정했다"며 "미국 관리들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넘어) 우크라이나 영토를 추가 침공하는 것을 피하는 게 목표라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에선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들 주장하지만 누구도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짚었다.
러시아는 서방의 경고에도 크림반도 장악을 한단계 더 밀어붙였다. 러시아군은 3일 병력을 증파하고 크림반도 동쪽 끝에서 러시아 영토와 마주보고 있는 항구도시 케르치의 페리 터미널을 장악했다. 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이날 케르치 해협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설해 크림반도와 러시아 영토를 연결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크림반도의 러시아 통합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앞서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 군기지들을 포위했으며, 이들의 무장 해제를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 언론에서는 흑해함대가 4일 오전 5시까지 항복하라는 최후통첩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으나 러시아 쪽은 이를 공식 확인하진 않았다. 앞서 러시아 흑해함대가 주둔한 세바스토폴 항구에 있던 우크라이나 해군 함정 10여척은 군사 충돌을 피해 떠났다. 또 우크라이나 과도정부가 1일 새로 임명했던 해군사령관은 "크림자치공화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며, 사실상 러시아 쪽에 투항하는 성명을 내는 모습이 2일 유튜브에 공개됐다. 과도정부는 하루 만에 그를 해임하고 반역죄 조사를 발표하는 등 허둥대는 모습이다.
크림반도에서 불붙은 분리주의 움직임은 우크라이나의 동부 주요 도시로 번지는 분위기다. 친러 성향이 강한 우크라이나 동부의 하리코프와 도네츠크 등에선 친러 시위대가 광장과 주청사 등을 점거하고 러시아의 군사행동을 환영하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동부 주민에 영향력이 큰 현지 올리가르히(신흥재벌)들을 주지사로 임명하는 등 반감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러시아는 일단 대담한 군사작전으로 이익 보장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불참, 러시아를 주요 8개국에서 제외하는 방안 등을 경고했지만, 러시아는 "우리한테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다"면서 꿈쩍도 않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과도정부에 치명적 타격을 입혀 양보를 강요하고 러시아계가 다수인 지역이 사실상 분할되는 걸 감수하게 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이 그의 의제를 어디까지 밀어붙일지가 서방의 핵심적 관심사"라고 짚었다. 서방이 별다른 카드를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당분간 러시아가 사태의 향방을 주도하리라는 전망이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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