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마련하려 물러나라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석 기자 2014. 9. 2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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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KB은행) 행장의 갈등은 내부 문제다. 회장과 행장의 자리를 흔들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KB금융 사태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9월10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금융 당국이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을 동시에 중징계 처분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며 "자리 마련을 위해 물러나라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황 전 회장은 2008년 9월부터 2009년 9월까지 1년간 KB금융의 회장을 지내면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금융위원회는 당시 황 전 회장에게 '직무정지 3개월 상당'의 중징계를 내렸다.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 투자한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왑(CDS)의 부실 문제가 원인이다. 황 전 회장은 중징계가 결정되자 회장 직을 사퇴했고,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 법규를 위반하지 않았음에도 중징계를 받았다"며 황 전 회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황영기 전 회장은 "국민은행이 관료들 사이에 요주의 대상이 됐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황 전 회장이 우리은행장에서 퇴임할 때만 해도 퇴직한 임원을 제재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금융 당국은 황 전 회장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이는 행정법규 불소급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황 전 회장은 "재임 시절 감독 당국에서 나가라는 사인을 여러 차례 줬다"며 "임 회장과 이 전 행장의 중징계 역시 자리를 만들기 위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고 밝혔다.

KB 내분 사태를 어떻게 보나

심각한 개인 비리나 횡령이 있었던 게 아니다. 두 사람이 권력을 남용해서 조직을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간 것은 더더욱 아니다. 소소한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내부 문제다. 회장과 행장에게 중징계 처분을 내릴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임기가 남아 있는 경영자들을 금융 당국이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국민은행장의 위상이 과거보다 추락한 것은 사실이다. 내가 회장으로 있을 때만 해도 행장이 넘버2였고, 지주사 사장은 넘버3였다. 당사자들에게도 이렇게 입장 정리를 했고, 별 이견도 없었다. 민병덕 행장 시절엔 그룹 서열이 회장-사장-은행장 순으로 바뀌었다. 물론 그때도 은행장은 이사회 멤버였다. 이건호 행장이 들어오면서 은행장이 이사회에서 빠졌다. 내부적으로 신경전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 경우 금감원장이나 금융위원장이 두 사람을 불러 중재를 할 수도 있었다. '밖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니 조직 안정 차원에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식으로 해결이 가능했다. 최수현 금감원장도 조기에 사태를 수습하겠다고 언론에 공언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외부에서 아무도 달랜 사람이 없었다. 결국은 자리를 내놓으라는 메시지로 보고 있다.

KB금융 경영진 간의 갈등이 이번에 처음은 아니다.

KB금융은 다른 금융지주사보다 외풍에 많았다. 김정태 전 행장 시절 LG카드 사태가 터졌다. 정부는 국민은행에 출자 전환을 요구했다. 당시 국민은행 주주의 75%가 외국인이었다. 김 전 행장은 외국인 주주의 의견을 받아 '불가' 입장을 밝혔다. 그때 미운 털이 많이 박혔다. 금융 당국은 김 전 행장의 스톡옵션 등을 문제 삼아 중징계 조치를 내렸다. 김 전 행장의 임기가 한두 달 남은 상황이라 임기는 채웠지만, 사실상 나가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국민은행은 관료들 사이에서 요주의 대상이 됐다. 방심을 하면 1인 지배 체제가 굳어져서 손을 대지 못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회장이나 행장이 정부의 관리 영역을 벗어나는 조짐을 보이면 견제가 들어오곤 했다. 단순히 경영진 간의 다툼이 아니라는 얘기다.

재임 시절 강정원 행장과의 갈등설이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

모르고 하는 얘기다. 나나 강 전 행장이나 나올 때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내가 징계로 옷을 벗었고 강 전 행장 역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그래서 서로 싸운 것 아니냐는 추측을 하는 것이다. 둘 다 싸울 만한 대상이 아니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금융 당국이 감독권을 남용하고 있다는 얘기인가.

금융 당국의 문책성 경고가 반드시 나가라는 의미는 아니다. 퇴임을 하면 몇 년간 취업이 제한되는 것이다. 버티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이 경우 조직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조직의 장이 사형 선고를 받은 상황에서 조직이 얼마나 일사불란하게 돌아갈 수 있겠는가. 금융인이나 대표이사들이 당국으로부터 경고를 받으면 조직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옷을 벗는 것이 관례다. 나 역시 1주년 기념행사 때 나왔다. 이후 소송을 통해 명예회복을 노렸다.

금융위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 3년 만에 이겼다.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 금감원과 감사원, 예금보험공사로부터 경영진단을 받았다. 모두 최우수 등급이었다. 그때는 괜찮다고 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넘기면서 말이 바뀌었다. 징계라든지 이런 감독권이 엉뚱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말 조직의 건전성과 금융 산업 발전을 위해 감독권을 행사한다면 매 맞는 사람도 수긍할 거라고 본다.

실제로 예금보험위원회는 2008년 서브프라임 투자 실패를 이유로 우리은행의 부행장급 3명에 대해 징계 조치를 내렸다. 예보위는 우리은행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의 최고 의결기구다. 하지만 황 전 회장과 이종휘 당시 수석부행장에 대해서는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예보위 비공개 의사록(2008년도 제6차)과 2007년도 4분기 MOU(경영 정상화 이행 약정) 이행 실적 점검 결과 보고서에 관련 내용이 자세히 언급돼 있다. 하지만 2009년 들어 예보위의 입장이 바뀌었다. 예보위는 문제 삼지 않기로 결정한 황 전 회장의 투자 부실에 대한 징계 안건을 다시 상정했다. 금감원도 2009년 9월 직무정지 결정을 내렸다. 황 전 회장은 중징계가 결정되자 바로 사퇴했고, 3년여의 소송 끝에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임 회장의 경우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개인적으로 억울할 수 있다. 금융 당국의 압력에 굴복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시장에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금융 당국의 부당한 징계에 저항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처럼 문책경고를 받고도 버틸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검사원 30~40명이 나와 여기저기 뒤지고 직원들에게 일일이 확인서 쓰라고 하면 일 못한다. 조직의 장으로서 그런 모습을 보면서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석 기자 / ls@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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