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전두환 추징> ① 비자금 어떻게 모으고 뿌려졌나

2013. 7. 2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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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자주 = 검찰은 불법 재산의 추징 시효와 범위를 늘린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이 발효된지 나흘만인 지난 16일 전씨 일가족 주거지와 회사 사무실 등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에 착수하는 등 미납 추징금 1천672억원을 환수하기 위한 조치에 나섰습니다. 이에 연합뉴스는 국민적 관심사이지만 30년 세월의 흐름 속에 많은 사람의 기억에서 잊혀진 초대형 비리의 근원을 되짚고 수사의 방향을 가늠해 보는 특집 기사를 22~25일 나흘간 시리즈로 출고합니다. 제작에 참고 바랍니다. >

(서울=연합뉴스) 고웅석 기자 = "대통령 취임시 기업들의 돈을 안 받았더니 기업들이 밤에 잠도 못자고 불안해 했고 투자 의욕도 없이 외국으로 달아날 생각만 했습니다"

1996년 2월 26일 대통령 재임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건의 첫 재판이 열린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피고인석에 앉은 전두환씨가 비자금 모금과 관련한 김성호 주임검사(나중에 법무장관을 지냄)의 심문에 답한 말이다.

전씨는 기업들로부터 받은 비자금의 대가성을 부인하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았다.

"많은 기업들은 돈을 냄으로써 정치에 안정을 가져올 수 있고 정치가 안정돼야 사업도 제대로 된다고 인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업들 나름대로는 정국 안정을 바라거나 안보문제를 염려하는 우국충정과 같은 일종의 사명감으로 돈을 낸 것으로 생각합니다"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삼양화학 대표 한영자씨로부터 100억원을 받은 혐의를 확인하는 김성호 부장검사의 심문에 전씨는 "정호용 (국방)장관이 대선자금을 기부하고 싶어하는 기업이 있다고 보고해 왔고 '참 기특한 일'이라며 돈을 받으라고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전씨는 대통령에서 물러난 1987년까지 삼성과 현대 등 43개 기업 대표 44명에게서 2천259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와 12·12 및 5·18 사건 관련으로 기소돼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천205억원을 확정받았다.

기업들에서 '관행적인 정치자금'으로 수금한 7천억원 이상의 돈 중 2천205억원만 뇌물로 인정됐다. 성용욱 전 국세청장이 조선맥주 등 11개 중견업체로부터 받아 전씨에게 전달했다는 54억5천만원이 2심에서 뇌물로 인정되지 않아 추징금 액수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검찰은 판결 확정 후 16년이 지났지만 추징금 2천205억원 중 1천672억원을 집행하지 못했다.

◇ 모금과 관리 = 1995∼1997년 검찰 수사와 공판 자료, 판결문 등을 종합해 보면 전씨는 '정치자금' 또는 '통치자금'을 마련할 목적에서 청와대와 안기부, 국세청, 은행감독원, 국방부 등 정부기관을 동원, 기업들로부터 강압적인 모금활동을 벌였다.

비자금 관리를 맡은 청와대 경호실의 안현태 전 실장은 1996년 2월 1차와 4월 2차 공판에서 '규모에 따라' 기업을 선정해 전씨에게 보고한 후 연말이나 추석, 경제적 현안 등을 이유로 전씨와의 면담을 주선했다고 진술했다.

일시와 장소를 통보받은 기업 대표는 청와대 집무실과 서재에서 전씨를 독대하고 나서 자리에 '봉투'나 수표를 놓아두고 나왔다.

안씨는 전씨에게서 수표 등을 건네받으면 이를 경호실 경리과장이던 김종상씨에게 줬고 김씨는 통장에 입금했다. 실제로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1983년 1월부터 1987년 12월까지 한국투자신탁 등 3개 투신사와 조흥은행의 본·지점 등에 전씨 비자금을 입금해 관리했다고 진술했다.

비자금의 입출금 '심부름'은 경호실 경리과에서 맡아 했지만 비자금이 든 통장이나 도장은 전씨가 직접 관리했다는 사실은 당시 법정 진술에서 확인됐다.

전씨는 2차 공판에서 '당시 세금이 감면되는 경호실이나 국가기관의 사업자등록번호를 사용해 돈 관리를 했다는데 사실인지'를 묻는 김성호 부장검사의 심문에 "그렇습니다"라고 답했고 '예금통장, 인감도장이나 인출한 수표 등은 피고인이 직접 보관, 관리했나요'라는 물음에 "맞습니다"고 인정했다.

전씨 비자금은 재임 막바지인 1987년 초부터 이 사건으로 구속된 1995년 12월 사이에 산업금융채권과 장기은행채권 등으로 전환된다. 채권은 대부분 5년 만기 액면 1억원권으로 20억∼30억원 단위로 매입됐다.

전씨가 퇴임한 후 그의 비자금 관리 '심부름'을 한 핵심 인물은 보안사령관 전속부관 출신인 손삼수 비서관과 청와대 재무관을 지낸 장해석 비서관 등이다.

◇ 뿌려진 비자금 = 주임검사였던 김성호 당시 서울지검 특수3부장은 1996년 2월 3일 취재진과의 일문일답에서 "(전씨가) 1988년 퇴임 당시 1천600억원 가량을 갖고 나왔다는 진술이 있었는데, 그 이상을 갖고 나왔는지 아니면 채권의 이자율이 연 14%나 되고 시간이 많이 지나 이자가 불어났는지 모르지만 상당액이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씨는 '전혀 내놓을 생각이 없다. 너희(수사팀)가 찾아서 빼앗지 않는 한 나는 협조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퇴임후 전씨는 5공 추종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1989년부터 1995년 구속 직전까지 정치인 200여명에게 500억원을 사용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이와 관련, 전씨는 6공 정부가 자신을 스위스 레만호 부근으로 강제 추방하려는 음모(이른바 '레만호 계획')에 맞서기 위해 5공 세력을 규합, '원민정당'을 창당하려 했다가 구속되는 바람에 실현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법정에서 털어놨다.

전씨의 비자금은 정치권뿐 아니라 측근과 친인척들에게도 광범위하게 뿌려졌다.

안현태 전 경호실장은 법정에서 1990년 8월 국회의원 출마 선거자금 명목으로 10억원을 받은 사실을 진술했다.

전씨는 1992년 8월 연희동 사저로 딸 효선씨의 시어머니 박혜숙씨를 불러 1억원짜리 장기신용채권 23장(23억원)을 직접 건넸다.

그는 법정에서 "하나뿐인 딸에게 청와대 있을 때 아무것도 못해준 미안한 마음에서 제공했다"고 말했다.

전씨는 또 친형 전기환씨에게 대통령 취임 때부터 구속 전까지 매년 1천500만원의 생활비를 줬고 이모 김필문, 김상문에게도 아파트 등 주택구입비 4천500만원과 매월 생활비 300만원을 정기적으로 주는 등 1천여명의 친인척을 금전적으로 지원했다.

금융실명제가 시행된 1993년 6∼8월 장남 재국씨를 통해 고서화와 서양화 10억원 어치를 집중 구매했다.

1997년 12월 사면된 전씨는 2003년 4월 법정에 다시 섰다.

서울지법 서부지원에서 열린 재산 명시 심리 재판에서 재판장인 신우진 판사가 "예금채권이 29만원 정도만 기재돼 있고 보유 현금은 하나도 없다고 나와있는데 사실이냐"고 묻자 전씨는 "내 명의로 된 현금은 한 푼도 없다"고 맞섰다.

그러자 신 판사는 "그러면 도대체 채무자는 무슨 돈으로 골프 치러 다니고 해외여행 다니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이에 전씨는 "그린피는 골프협회에서 전직 대통령에게 무료로 해 준다. 그동안 인연이 있는 사람도 많고, 도와주는 분들도 있다. 또 자식들도 생활비를 도와준다"고 반박했다.

신 판사는 "그런데 왜 그 측근들과 자식들은 추징금은 안 내주나"라며 따졌고 전씨는 "그 사람들도 겨우 생활할 정도라 추징금 낼 돈은 없다"고 말했다.

freem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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