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사고, 韓·美 정부와 미디어 소리없는 전쟁중

강도원 기자 2013. 7. 1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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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란시스코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항공(020560)여객기 사고 원인 조사를 두고 한국과 미국 두 나라 정부와 언론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사고 조사 결과 브리핑에서 한국은 기체 결함과 관제탑 실수에 무게를 두고, 미국 측은 조종사 과실에 대한 언급을 주로 쏟아내고 있다.

사고 원인이 어느 쪽에 있느냐에 따라 비행기 제작사인 미국 보잉사와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양국 항공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서 당분간 핑퐁게임은 계속될 전망이다.

◆ 조종사 과실로 몰아가는 美, 방어하는 韓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조종사 과실에 무게를 둔 사고 조사 결과 브리핑을 연일 쏟아냈다.

사고 다음날인 8일(현지시각) 데버라 허스먼 NTSB 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사고 여객기가 너무 느린 속도로 활주로에 접근하다가 충돌사고가 발생했다"며 조종사 과실 문제를 제기했다.

9일에는 조종사들의 짧은 경력을 문제 삼았다. NTSB는 "이강국 기장이 보잉777을 20차례에 걸쳐 60시간을 비행했어야 하지만 절반 가량만 이수했다"고 지적했다. 교관인 이정민 기장 역시 교관 경험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이런 상황에 대해 처음에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계속해서 사고 조사결과가 불리하게 발표되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최정호 항공정책실장은 9일 브리핑에서 "NTSB 발표 내용만으로 조종사 과실로 예단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윤영두 사장이 직접 나서서 "조종사들은 충분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며 "교관 역할을 한 기장 역시 3200시간 이상의 경험이 있는 우수한 기장"이라고 말했다.

10일 NTSB 또 다시 조종사 과실을 부각하는데 주력했다. NTSB 데버라 허스먼 위원장은 조종사들이 자동속도조절장치(오토 스로틀)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발언과 관련해 "설사 오토 스로틀이 고장 났다 하더라도 (점검하지 않은) 조종사에게 최종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또 NTSB는 "조종사들의 자리가 바뀌어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국토부는 또 다시 정면으로 반박했다. 최 실장은 "조종사들은 오토 스로틀을 켜두고 있었다"며 기체결함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11일 브리핑에서는 국토부가 관제탑의 과실 가능성도 제기했다. 국토부 최정호 실장은 "조종사들은 충돌 전까지 관제탑으로부터 어떠한 경고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NTSB는 11일 이런 내용을 뒤집는 브리핑을 했다.

NTSB 허스먼 위원장은 "관제사의 협조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충돌 90초 전 관제사와 기장의 교신이 있었고, 충돌 직후 구급차를 요청한 것은 기장이 아닌 관제사였다"고 말했다.

특히 오토 스로틀이 활성화 상태였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NTSB는 "블랙박스 중 비행기록장치 분석 결과 오토 스로틀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 외신들 韓 문화까지 언급하며 조종사 과실에 힘 보태기

외신들은 NTSB의 의혹 수준의 조사 결과를 받아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CNN은 "여객기를 조종했던 이강국 기장은 사고 기종인 B777을 9차례, 43시간밖에 운항하지 않았다"며 경험 부족을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조사 당국에서는 기체 결함에 따른 사고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고 조종사 과실에 무게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경제 전문매체인 CNBC는 토머스 코챈 MIT 교수를 인용해 "한국 문화는 윗사람에 대한 존경심과 위계질서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며 "이 두 가지가 결합할 경우 의사소통은 일방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8일 '한국은 왜 항공 안전에서 뒤처지는가'라는 기사에서 말콤 글래드웰의 주장을 인용해 "서열을 강조하는 문화가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자 국제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는 이틀에 걸쳐 "NTSB가 기내 녹음장치 등을 이렇게 빨리 공개한 건 당혹스러운 일"이라며 "조종사들은 사고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또 "불완전하고 부분적인 정보 공개는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 사고 원인 따라 보상금액·범위 천차만별

한국과 미국 정부는 물론 언론까지 나서서 미디어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양국의 이해관계가 걸려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경우 기체 결함으로 사고 원인이 판명 날 경우 자국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이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보잉의 신뢰도에도 타격을 받게 된다. 여객기를 사간 항공사는 결함을 이유로 각종 손해 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조종사 과실로 원인이 판명날 경우 한국 항공업체들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우선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위험한 항공사라는 이미지란 멍에를 쓰게 된다. 항공기 사고가 날 경우 해외 다른 항공사와의 제휴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실제로 대한항공(003490)의 경우 1997년 괌에서 추락사고로 228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당시 델타항공이 계약을 보류한 바 있다.

돈 문제도 걸려 있다. 사고 조사 결과 항공사뿐 아니라 공항이나 여객기 제작사에도 책임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 아시아나항공은 이미 지급한 피해 배상액 일부에 대해 샌프란시스코공항과 보잉사를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조종사의 과실로 결론이 날 경우 아시아나항공은 금전적 배상뿐 아니라 형사 책임도 져야 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항공안전국 지위를 잃지는 않겠지만 항공업계 이미지 타격 등 실질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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