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뒤흔든 공항의 그 남자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2013. 7. 1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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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는 전 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미국의 도청을 비판하던 국가들도 그의 망명 신청은 외면한다.

요즘 뉴스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공항은 러시아 모스크바의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이다. 전 세계 취재진 수백 명이 연일 이 공항의 이곳저곳을 지키고 있다. 이들의 관심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감청·정보수집 프로그램 ‘프리즘’의 실체를 폭로한 전 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30)에게 쏠려 있다. 스노든은 현재 셰레메티예보 공항 환승 구역에 머물고 있다. 그는 지난 6월23일 홍콩을 떠나 모스크바에 도착했으나 러시아 입국 비자가 없었다. 게다가 미국 정부가 그의 여권을 정지시켰다. 당초 그는 모스크바를 경유해 쿠바 아바나행 비행기에 오를 계획이었으나, 미국 정부가 강제 착륙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탑승을 하지 않았다.

스노든에게는 가장 안전한 피신처

취재진의 경쟁은 무척 치열하다. 스노든의 얼굴 사진이 담긴 아이패드를 들고 공항 화장실까지 샅샅이 뒤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현재 환승 구역에서 취재 중인 한 미국 프리랜서 기자는 “이 공항 어딘가에 스노든이 있고 그가 또 다른 폭로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취재진들이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곳에 장기 체류할 각오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독일 기자는 “스노든이 쿠바행 비행기를 탄다는 소식을 듣고 웃돈까지 주어 비행기표를 구했지만 허탕이었다. 쿠바에서 모스크바로 되돌아오는 비행기표도 경쟁이 치열했다”라고 말했다.

ⓒAP Photo 6월23일 모스크바 외곽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서 취재진들이 홍콩에서 도착한 승객들에게 에드워드 스노든의 사진을 보여주며 행방을 묻고 있다.
7월1일(현지 시각) 모스크바에서 열린 가스수출국포럼 정상회의도 마치 스노든 토론장 같았다.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은 가스 수출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고 스노든에 대한 질문만 던졌다. 행사 지원을 나왔던 러시아 관리들은 투덜댔다.

미국 언론은 “스노든이 국제 미아로 전락해 공항 환승 구역에 갇혀 있다”라고 연일 보도 중이다. 하지만 망명지가 확정되기 전까지 스노든에게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피난처는 바로 이곳 모스크바 공항 환승 구역이다. 인터넷 이용과 숙식이 가능한 데다가 이곳에서는 무기를 소지할 수 없다. 미국 정부로부터 암살당할 가능성이 사전에 차단되는 셈이다. 또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는 거의 모든 국가로 가는 비행기편을 마련할 수 있다.

스노든은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프랑스·독일 등 유럽 11개국을 포함해 총 21개 국가에 망명을 신청했다. 미국이 이들 국가를 비밀리에 감청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져 한창 비난이 쏟아지던 국면이었다. 하지만 미국을 일제히 비난하던 국가들도 스노든에게는 등을 돌렸다.

스노든이 망명을 신청한 러시아의 태도도 싸늘해졌다. 애초 러시아는 스노든을 ‘진실의 전사’로 부르며 그에게 우호적이었다. 스노든이 홍콩을 출국해 모스크바 공항까지 오는 데도 러시아의 암묵적 협조가 있었다. 푸틴은 “우리가 자유인인 스노든을 미국에 내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하기도 했다. 하
ⓒAP Photo 6월24일 스노든이 예약한 것으로 알려진 쿠바행 비행기의 좌석을 사진기자들이 찍고 있다.
지만 스노든이 망명 의사를 밝히자마자 안면을 바꿨다. 푸틴은 “만일 그(스노든)가 이곳(러시아)에 남길 원한다면 미국에 해를 끼치는 데 초점을 맞춘 활동을 중단한다는 한 가지 조건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과의 외교 관계를 의식해 망명 조건을 내건 것인데, ‘정치적’으로는 스노든의 망명 신청을 거부한 셈이다. 이에 스노든도 망명 의사를 밝힌 지 이틀 만에 러시아 망명 요청을 철회했다.

스노든이 쿠바를 통해 가려 했던 남미 에콰도르도 입장을 바꿨다. 애초에 홍콩을 떠날 당시 스노든은 모스크바와 쿠바를 거쳐 에콰도르로 향하려 했다. 그의 수중엔 이미 에콰도르가 발급한 ‘임시 여행허가서’도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이 모든 것이 실수였다”라며 태도를 바꿨다. 미국이 관세 특혜를 취소할 수 있다며 에콰도르 정부를 전방위로 압박했기 때문이다. 에콰도르는 미국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스노든이 망명을 요청한 다른 국가들도 에콰도르와 비슷하다. 필자가 직접 스노든이 망명을 요청한 국가 중 10여 개국 외교부에 연락을 해보니 대부분 스노든 망명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진즉에 스노든의 망명을 거부했던 인도의 한 외교부 관리는 “스노든의 망명 희망 국가 명단이 나왔을 때 아마 여러 나라가 긴장했을 것이다. 스노든이 망명을 신청한 나라 중에 미국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라고 말했다. 독일의 귀도 베스터벨레 외무장관은 “스노든의 망명 요청을 법적 절차에 따라 검토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전망하기 어렵다”라고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스페인·아이슬란드·핀란드는 “우리의 영토 내에 들어온 사람에게만 정치적 망명을 요청할 권리를 준다”라고 밝혔다. 브라질 외무부는 “스노든의 망명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남미국가연합 긴급 정상회의 개최

스노든은 〈위키리크스〉 웹사이트에 성명을 내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을 통해 각국 정부에 나의 망명 요청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망명이라는 기본적 인권마저 막는 나라다”라고 비난했다.

이런 가운데 해프닝도 잇따른다. 스노든의 망명 희망 국가 중 하나인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7월2일 러시아에서 가스수출국포럼 정상회의를 마치고 전용기로 귀국하는 길에 프랑스·포르투갈 등으로부터 영공 통과를 불허당했다. 스노든이 모랄레스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했을 수 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오스트리아 빈에 비상 착륙해 14시간이나 경찰의 수색을 받는 굴욕을 겪었다. 물론 스노든은 없었다.

이 사건은 엄청난 외교적 파장을 낳았다. 볼리비아는 물론 남미 국가들이 불에 기름을 부은 듯 분노를 표출했다. 반미 좌파 성향인 남미국가연합(UNASUR) 소속 수장들이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 등 4개 국가의 영공 진입 거부 조치와 관련해 7월4일 긴급 정상회의를 열었다. 이에 앞서 남미국가연합 알리 로드리게스 사무총장은 “유럽 국가들이 미국 정부의 불법 도·감청을 비판하면서 이런 위험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라며 남미국가연합의 긴급 정상회의를 촉구한 바 있다.

사차 로렌티 유엔 주재 볼리비아 대사는 이번 사건을 ‘납치’로 간주하고 유엔에 항의서를 제출했다. 가르시아 부통령은 프랑스와 포르투갈 대사 등을 소환해 강경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볼리비아 의회에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대사 추방을 촉구하고 있으며, 국민들도 라파스에 위치한 프랑스와 이탈리아 대사관 앞에서 프랑스 국기를 불태우는 등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 와중에 일각에서는 스노든이 다른 계산을 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스노든이 진짜로 원하는 제3의 망명지와 거래 중이며 지금까지 발표한 망명국 리스트는 전 세계의 눈을 돌리기 위한 연막이었다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할 당시 혹시 모를 도청을 피하기 위해 주변의 모든 휴대전화를 냉장고에 넣어뒀을 정도로 신중한 그가 눈에 뻔히 보이는 계산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서 나오는 얘기이다. 스노든 눈보라가 모스크바에 몰아치고 있지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스노든 스토리의 마지막 반전이 무엇인지 지켜볼 일이다.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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