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긴급 전화 받은 푸틴, 스노든을 어떻게 할까?
[백병규의 글로벌포커스] 스노든 러시아 망명신청하자, 오바마 푸틴에 긴급전화 … 침묵의 합의?
[미디어오늘 백병규 언론인] 미국과 러시아의 대통령들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12일 저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악관은 '예정됐던 전화통화'였다고 말했다. 오는 9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회의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바마 미 대통령이 긴급하게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딴 데 있었다. 미국 정부의 최대 골칫거리인 에드워드 스노든 때문이었다.
3주 만에 모습 드러낸 스노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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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오후 5시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 환승구역에서 가진 인권운동가들과의 간담회에 나타난 에드워드 스노든(가운데). 왼편은 홍콩에서부터 법률자문역으로 그와 동행했던 위키리크스의 사라 해리슨. 사진=휴먼라이츠워치 타냐 로크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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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5시(현지시각, 서울은 오후 10시)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 환승구역에서는 '이례적인 모임'이 열렸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국제엠네스티와 휴먼 라이츠 워치 등 모스크바에 주재하고 있는 국제인권단체 관계자와 러시아 인권운동가, 러시아 대통령 인권 자문위원, 러시아 하원의원, 인권변호사 등 13명을 초청해 이뤄진 긴급 간담회였다. 스노든은 하루 전 이들에게 모임에 나와 줄 것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긴급으로 보냈다. 공항 당국은 이를 위해 이들 인권운동가들의 환승구역 출입을 허용하고, 환승구역에 별도의 독립된 간담회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스노든은 이 자리에서 '중대선언'을 했다. 러시아에 다시 망명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에게 망명을 제안한 베네수엘라나 니카라과, 볼리비아로 가고 싶지만 지금으로서는 전혀 움직일 수가 없으므로 그곳에 갈 수 있을 때까지 잠정적으로 러시아에 망명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스노든은 애초 러시아에 대한 망명을 신청했었지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조건'을 걸자 이를 철회한 바 있다.
지난 1일 스노든이 러시아 망명 의사를 밝히자 푸틴 대통령은 '하나의 조건'을 내걸었다. 러시아의 파트너인 미국 정부에 해가 될 수 있는 '폭로'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푸틴 대통령 스스로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것"이라며 스노든이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내걸었다. 푸틴 대통령 또한 스스로 '인권운동가'를 자임하고 있는 스노든이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노든은 이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망명 신청을 철회했다.
그러나 이번엔 더 이상의 선택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늘 길이 꽉 틀어 막혀 있는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가 바로 러시아로의 망명이었다. 그는 러시아에 대한 망명 신청이 베네수엘라 등으로 가기 위한 '잠정적'인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일종의 '징검다리' 망명인 셈이다. 러시아가 망명 신청을 받아들이면 스노든으로서는 일단 시간을 벌 수 있다. 시간적 여유를 갖고 베네수엘라로 가는 길을 알아 볼 수 있다. 또 모스크바 주재 베네수엘라 대사관 등을 통해 정식 망명 절차를 밟아 정상적으로 여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출 수 있다.
"지금까지도 미국에 해 끼친 것 없다"
그렇다면 그는 푸틴 대통령이 제시한 조건을 수락하기로 한 것일까? 간담회에 참석한 휴먼 라이츠 워치 모스크바 지부 부대표 타티야냐 로크쉬나는 스노든이 그런 조건을 수용키로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스노든의 발언은 다분히 중의적이다. 그는 "그 문제는 쟁점이 될 게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행위나 앞으로의 행위가 결코 미국에 유해한 것이 아니며, 미국이 성공하기를 기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런 '발언'은 신중히 계산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자신의 행위를 부정하지 않고, 또 명시적으로 더 이상 기밀문건을 폭로하지 않겠다고 밝히지 않으면서도, 외견상으로는 '푸틴의 조건'을 수용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진의'가 무엇이든 그가 러시아에 다시 망명신청을 낸다는 것 자체는 '푸틴의 조건'을 수락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크게 논란이 될 것은 없어 보인다.
문제는 러시아의 대응이다. 푸틴 대통령이 예견했듯 스노든이 '침묵'을 대가로 러시아 망명을 선택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스노든을 '진실의 투사'로 상찬하며 그의 망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던 푸틴 대통령이 망명 허용 조건으로 파트너인 미국 정부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한 것은 국제정치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푸틴 대통령은 그 때 이미 스노든이 그를 받아주겠다는 베네수엘라 등 남미 국가로 가려 할 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불행히도 자신으로서는 알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지금의 사태 전개를 예견하기도 했었다. 그런 점에서도 12일 미국과 러시아 대통령의 전화 통화 내용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주목된다.
백악관이나 크레믈린은 이날 저녁 두 정상의 전화통화에서 스노든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시점 상으로 살펴볼 때 오바마 대통령이 긴급하게 전화를 건 것은 순전히 스노든 때문이라고 봐도 좋다. 그러나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백악관이나 크레믈린 모두 입을 꽉 다물었다. 미국과 러시아 양측의 입장이 완강히 엇갈렸거나, 아니면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 어느 쪽이라고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스노든으로서는 그리 썩 좋은 분위기는 아닌 듯싶다. < 뉴요커 > 는 13일 인터넷판 '뉴스데스크' 분석을 통해 "미국의 이중적 행태 못지않게 러시아도 이 문제에 관한 한 이중적 태도가 결국 논란이 될 것이며, 미국과 러시아간의 스노든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모종의 '뒷거래'가 조만간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러시아의 사무적 대응?…그린월드 "미국 매일 스노든 안전 기도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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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노든과 인권운동가 모임을 취재하기 위해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모인 취재진들. 기자들에겐 몇 주 째 '지옥'이 되고 있다. 사진=러시아 시사평론가 리크 바탈로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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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징후일까? 스노든의 환승구역 간담회가 있은 다음날인 13일과 14일, 러시아 당국자들은 잇달아 "아직 스노든의 공식적인 망명 신청이 접수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스노든은 12일 "오늘 중으로 망명신청을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13, 14일이 주말과 휴일이어서 공식 접수가 어려울 순 있다. 그러나 어차피 스노든이 직접 서류를 제출할 여건은 아니다. '공식절차'는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1차 망명 신청 때도 공항 관계자를 통한 간접 신청 방식이었다. 그런 점에 비춰볼 때 '서류 접수'를 강조하는 러시아 당국의 이런 반응은 지극히 '사무적'이다. 러시아가 망명 신청을 불허하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는다고 해도 미국과 관계를 고려해 그 편의 제공은 지극히 '임시적'이고 '한시적'일 수 있다.
러시아가 어떤 입장을 취할 지 불투명한 가운데 또 하나의 '변수'가 제기됐다. 스노든과 첫 인터뷰해 미 국가안보국(NSA)의 비밀 도청과 해킹 실상을 폭로한 < 가디언 > 의 칼럼리스트 글렌 그린월드가 15일 미국 정부에 엄중 경고하고 나섰다. 순식간에 미국 정부를 초토화시킬 정도의 파괴력을 갖고 있는 많은 기밀문서들을 스노든이 갖고 있다는 것, 만약 그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길 경우엔 이들 문서들이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린월드는 또 NSA의 비밀감청 및 해킹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되는지, 그 자료가 공개될 경우 제3국이나 여타 기관이 이를 그대로 실행하거나 모방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인 자료를 스노든이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린월드는 "미국 정부는 스노든에게 아무 일도 안 생기도록 매일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고 스노든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고사시키려 할 경우 자구 차원에서 스노든이 그동안 자제해왔던 메가톤급 추가 폭로를 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전혀 새로운 유형의 휘슬블로어
그린월드는 "지금도 여전히 스노든이라는 사람보다는 스노든이 폭로한 미국 정보기관의 전 지구적 도청 및 해킹 실상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스노든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극도로 자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스노든은 그가 폭로한 내용 못지않게 그의 안위와 행보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다. 전 지구적인 감시와 해킹을 통해 관철시키려 하고 있는 제국의 실상과 힘의 논리를 이번처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사례도 없다. 그는 또 전혀 새로운 유형의 내부고발자다. 스스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당당하게 자신의 정당함을 표방한 것도 그렇지만 고발의 내용과 범위가 국가 단위를 넘어 지구촌 차원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미국의 베트남 침공 공작의 실상을 담은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했던 대니얼 엘스버그는 스노든을 "미국인들을 위해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밝혀준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 말은 "세계인을 위해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밝혀준 사람은 없었다"고 바꿔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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