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에 탈출하려했지만 한국대사관이 말려"

입력 2013. 5. 30. 03:11 수정 2013. 5. 3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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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 꽃제비 9명 돕던 선교사가 밝힌 북송 전모

[동아일보]

탈북자들과 탈북지원단체 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탈북 청소년 9명의 강제북송 사태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 정부의 미숙한 대응도 강하게 비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중국에서 3년을 같이 산 아이도 있어요. 한 여자아이는 이번에 잡혀가면 4번째 북송된 겁니다. 라오스 이민국에 있을 때 내가 탈진해 링거를 맞으니까 걱정하며 밤을 새워주던 아이들인데…."

꽃제비 탈북자 9명을 돕다가 라오스에서 구금됐던 선교사 주모 씨는 1시간 내내 하염없이 울었다. 동아일보와의 단독인터뷰는 29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진행됐다. 그는 28일 저녁 라오스 이민국에서 추방돼 29일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의 인터뷰로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 한국대사관 "탈북자라고 말하라"라고 안내해

탈북 청소년 9명의 북송 사실을 단독 보도한 동아일보 29일자 A1면.

5월 10일. 10여 일 동안 중국 대륙을 횡단한 뒤 라오스 북부 우돔사이에 도착하자마자 경찰 불심검문에 걸렸다. 주 씨 부부와 탈북 청소년 9명 등 11명이었다. '신분을 밝히라'는 경찰 요구에 주 씨가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다"고 답하자 경찰은 '알선 여행사를 전화로 연결하라'고 재차 요구했다. 주 씨는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고 담당자가 경찰과 직접 통화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이미 북한에서 온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으니 경찰에 협조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고 그대로 따랐다. 경찰은 3번이나 "진짜 북한에서 왔느냐"고 물을 만큼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탈북자들이 미성년자여서 인신매매범으로 오해받을 수 있어 불법 입국 사실을 솔직히 말하는 게 낫다고 안내했다"고 해명했다.

"체포 이후부터 서울의 어머니와 현지의 내가 하루 수백 통의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한국대사관에 보냈다. 그때마다 대사관은 '우돔사이는 너무 멀어서 못 간다'는 답이었다. 내게는 '도청이 될 수 있으니 전화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주 씨)

닷새가 지나자 우돔사이 이민국은 '한국대사관으로 데려가겠다'며 이송경비를 지불하라고 요구했다. 1500달러(약 170만 원)를 줬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 이민국.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두 번째 북한 요원 방문 때 상황 급변"

5월 20일 한국말을 쓰는 남자 2명이 이민국으로 찾아와 탈북자를 1명씩 조사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조사를 받은 아이들이 "2명이 북한 말을 쓰는 데다 '최근 탈북자들이 한국에 갔다가 살기 어려워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데 너희는 왜 한국으로 가려느냐'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한국대사관에 이 사실을 알렸으나 "이민국이 진짜 탈북의사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떠보는 거니까 겁먹지 말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22일 주 씨가 불안해하며 "여기서 한국, 미국대사관이 가까우니 탈출을 시도하면 어떠냐"고 물었으나 대사관은 위험하다며 만류했다.

"16일 수도 비엔티안으로 온 이후 이민국에서 조사를 받으면서도 아이들과 우리 부부는 매일 외출할 수 있었다. 자유롭게 사먹고 자유롭게 시내를 다녔다. 매일 30분 거리의 미국대사관 근처까지 갔고 걸어서 1시간 반∼2시간 거리인 한국대사관까지 가는 방법을 매일 숙지했다."

금요일인 24일 남자 2명이 다시 이민국에 나타나 탈북자의 자필 사인을 받아갔다. 이민국은 9명의 외부 출입과 면담을 전면 불허하는 등 태도가 급변했다. 외교부도 "'한국에 신병을 인도하겠다'던 라오스 정부가 23일경부터 '시간이 필요하다'며 태도를 바꿨다"고 말했다. 23일 전후로 북한의 공식적인 신병인도 요청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우리는 이민국 3층에서 먹고 자고 했고 2, 3층에서 조사를 받았다. 3층 미팅룸에 누가 오면 1층으로 우리를 몰아넣었다. 아이들 증명사진을 찍고, 자필 사인을 받아간 것이 북한대사관이 아이들의 여권을 만드는 과정임을 뒤늦게 알게 됐다."

27일 이민국은 "한국으로 데려다 주겠다"며 아이들을 나오라고 했다. 주 씨 부부는 별도로 억류됐다. 창문으로 차가 떠나는 모습을 본 주 씨가 한국대사관에 "아이들을 빼돌렸다"고 신고하자 그때서야 대사관 직원이 이민국에 모습을 드러냈다.

외교부는 "억류 사실이 파악된 10일부터 영사 접견을 요구했으나 라오스 정부가 허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 씨는 "라오스는 현지의 내 지인에게는 3차례나 면담을 허용했고 23일까지는 태도가 온건했다. 한국 정부의 무사안일한 대응이 낳은 참사"라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신속함이 이례적'이라는 말만 하는데 내가 느낀 건 한국 정부가 우리에게 이렇게 무관심한 게 더 이례적으로 느껴졌다. '최선을 다했으니 잘못 없다'는 말만 하지 말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돼 미안하다'는 위로의 말부터 건네야 하는 것 아니냐."

○ 납북 일본인 확인 땐 북-일관계 충격파

한편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 중 일본 정부가 납북 피해자로 인정한 여성의 아들이 있었다는 한국 정보당국의 첩보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일본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파가 예상된다.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 참여(총리자문역)를 최근 북한에 보내 납북자 문제 해결과 북-일 국교정상화 협상을 모색하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도 일본 내 여론의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아베 총리는 29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본인 납치는) 부친(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 일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기본적으로 납치 행위와 관계가 없다. 새로운 시대의 지도자로서 올바른 일을 한다는 결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납치 문제의 휘발성을 의식한 발언인 셈이다.

북한은 결국 탈북자 문제에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까지 이슈화될 수 있는 불씨를 조기에 진화하기 위해 치밀하고도 신속하게 탈북 청소년들을 압송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북한은 북한 외교관도 잘 이용하지 못하는 항공편으로 중국을 경유할 단체여행비자와 북한 여권까지 갖춰 탈북 청소년들을 '합법적인 북한 여행객' 신분으로 탈바꿈시키는 행정적 외교적 준비를 완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중국 당국도 이들의 북송에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 정부 관계자가 전했다.

윤완준·조숭호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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