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 "본사는 전혀 몰랐다" 발뺌.. 사태 수습 더 어려워져

최병태 선임기자·이성희·박철응 기자 2013. 5. 9.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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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점·영업지점 사이에서 벌어진 일" 선 긋기피해대리점들 보상 요구.. 민변, 집단 소송 추진

남양유업은 9일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에서 영업사원의 폭언과 밀어내기 관행에 대한 사과, 재발방지 대책과 대리점과의 상생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대국민사과 자리에 사주가 불참한 데다 사과에 나선 경영진이 밀어내기를 본사가 알지 못했다고 주장해 피해를 입은 대리점주들과 소비자를 더욱 자극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식품업계에서는 불매운동이 더 확산될 경우 남양유업이 판매 부진에 빠지면서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웅 남양유업 대표는 이날 "지난 3일 온라인상에 공개된 당사 영업사원과 대리점주의 음성 녹취록으로 인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한다"면서 "영업현장에서의 밀어내기 등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리점 인센티브 및 거래처 영업활동 지원에 쓸 대리점 상생기금을 현재의 250억원에서 500억원 규모로 늘리고 대리점 자녀 장학금 지원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밀어내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대책으로는 대리점주들이 참여하는 공동목표수립시스템과 반송시스템, 대리점의 고충이 즉시 경영진에 전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대리점고충처리기구 운영 등이 제시됐다.

회장 빠진 사과

남양유업 김웅 대표(오른쪽에서 네번째)와 임원들이 9일 서울 브라운스톤 컨벤션에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 자리에 최대주주인 홍원식 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 강윤중 기자

김 대표는 "새로운 시스템 구축을 통해 대리점주들이 원하는 물량만큼만 영업지점으로부터 공급받도록 하고, 만일 초과 물량이 공급될 경우 점주들이 즉각 반송할 수 있도록 하고, 경영진에 직접 보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태의 핵심인 밀어내기에 대해 경영진은 전혀 몰랐다고 선을 그었다. 그 부분은 끝까지 검찰 수사에 맡기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이다.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또 다른 임원은 밀어내기는 업계 전반적인 관행으로 남양유업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뉘앙스의 말도 했다. 그는 "식품업계에서 반송시스템을 운영하는 회사는 없다"면서 "올해 안으로 반송시스템을 정비해 대리점주들이 원치 않은 물품은 반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빵업체 등에서는 반송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들은 "다른 업종에 비해 많은 영업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남양유업 같은 유제품 생산회사의 특성상 경영진이 일선 영업조직과 대리점의 애로를 몰랐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남양유업대리점피해자협의회는 강하게 반발했다. 대리점피해자협의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 당사자인 대리점주들에게는 단 한마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사과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정승훈 대리점피해자협의회 총무는 "사과는 전·현직 대리점주에게 해야 하는데 누구한테 사과를 한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남양유업의 사과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말했다. 대리점피해자협의회는 사측에 전산발주 조작, 유통기한 임박한 물건 떠넘기기, 유통업체 파견사원의 임금 대납 강요, 각종 떡값 요구, 인격모독과 고압적인 행동 등에 대해 조목조목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또 대리점주에 대한 피해 보상과 이를 위한 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유권자시민행동, 한국시민사회연합회,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 등 150여개 시민사회·직능·자영업단체는 남양유업과 경영진, 대주주가 피해자들에게 완벽한 보상을 하지 않으면 오는 20일부터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소송 대리를 맡고 있는 성춘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대리점주들은 영업기간 내내 전산조작으로 밀어내기를 당했고 그 물품대금을 갚지 못해 파산 직전"이라며 "대국민사과에는 이들에 대한 물질적, 정신적 보상이 언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변은 피해 대리점들을 모아 집단소송을 추진할 계획이다.

남양유업이 피해 당사자들과 조속하게 원만한 합의를 하지 않을 경우 더 큰 대가를 치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십 년간 '갑'의 위치에 있던 사측이 사태가 불거진 뒤 처음으로 내놓은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이 핵심을 비켜가 피해 당사자와 소비자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기는커녕 더욱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불매운동이 확산돼 판매량이 급감할 경우 이날 기자회견장에 나오지 않았던 홍원식 회장이 대국민사과를 직접 해야 하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 최병태 선임기자·이성희·박철응 기자 cbta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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