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명의 페이퍼컴퍼니 만든 3人, 자금 脫法거래 의혹
재계 유력 인사들이 조세 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밝혀져 이들의 탈세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들이 조세 피난처에 세운 법인들은 하나같이 부부 또는 부자 등 가족이 주주, 이사로 등재돼 있는 데다 법인 설립 시점 전후에 해외 부동산 거래가 이뤄져 비정상적인 자금 이동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 경총 회장인 이수영 OCI 회장과 부인 김경자씨는 지난 2008년 4월에 버진아일랜드에 '리치몬드 포레스트 매니지먼트'라는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 두 사람이 공동 주주이자 공동 이사였다. 특히 의심 가는 대목은 OCI가 당시 태양광전지사업으로 주목받으면서 사세가 확대돼 2007년 5월 10만원대이던 주가가 1년 뒤인 2008년 5월에는 40만원대로 치솟았다는 점이다.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전후해 주가가 폭등한 것이다. 또한 지분 25% 이상을 보유한 이 회장 일가가 받는 배당 이익도 크게 늘어나 2011년에는 257억원을 받아갔다. OCI는 이에 대해 "이수영 회장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자회사인 OCI 엔터프라이즈의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하면서 받은 100만달러 정도를 자산운용사를 통해 개인 계좌(페이퍼컴퍼니)를 개설했으나 2010년에 그 계좌를 폐쇄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미국 내 계좌에 동일 금액이 예치돼 있다"며 "이와 관련해 누락된 신고와 납세 사항이 있으면 즉시 완결하겠다"고 말했다.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부인 이영학씨도 버진아일랜드에 2007년 6월 1달러짜리 페이퍼컴퍼니를 세웠다. 주당 1달러에 자본금 5만달러 규모 회사를 설립한다는 내용으로 회사를 인가받았지만 실제 납입한 자본금은 1달러, 발행 주식은 1주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달러를 송금해 해외에 법인을 세울 경우 건당 1000달러, 연간 5만달러를 넘으면 외국환 은행에 신고해야 하는데 이런 규제를 피한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페이퍼컴퍼니 이름이 카피올라니 홀딩스인데, 이는 조 전 부회장 부부의 콘도가 있는 호놀룰루 거리 이름과 같다. 조 전 부회장 부부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기 2개월 전에 호놀룰루 카피올라니 거리에 있는 콘도를 195만달러에 구입했다. 조 전 부회장은 또 하와이의 다른 아파트 몇 채를 사고파는 등 해외 부동산 거래를 빈번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페이퍼컴퍼니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의심을 받고 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막냇동생인 조욱래 DSDL(옛 동성개발) 회장도 장남 조현강씨와 버진아일랜드에 2007년 3월 '퀵 프로그레스 인베스트먼트'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DSDL은 공교롭게도 그해 말 조현강씨 등 자녀가 대주주인 DSIV라는 자회사에 지분 93%를 넘긴다. 나중에 자녀는 총 254억원이라는 증여세를 물었지만 경영권이 완전히 넘어가는 과정에서 조세 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배경이 의심받고 있다. 조욱래 회장은 또한 페이퍼컴퍼니가 설립된 그해 10월에는 하와이 주택을 210만달러에 구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항공 측은 "조 전 부회장은 1997년 3월 퇴직한 이후 회사 행사에도 전혀 참석하지 않는다. 우리로선 모르는 내용"이라고 했다. 또 조욱래 회장의 DSDL 측은 "이 문제에 관련해 아는 바도 없고 말씀드릴 게 없다"고만 했다.
국세청은 가족 명의로 조세 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대기업 사주들이 벌이는 역외 탈세의 전형적인 유형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해운업체 사주가 국내에서 번 소득을 자녀에게 주려고 조세 피난처에 자녀와 직원 명의의 페이퍼컴퍼니를 2개 세운 뒤 페이퍼컴퍼니가 각종 선박 운송 대가를 챙기는 수법으로 소득을 해외로 옮겼다. 결국 법인세 433억원을 추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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