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의 전쟁..왜 '강성노조' 카드 꺼냈나

정원식 기자 2013. 4. 1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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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료원 폐업 강행 위해 '강성노조' 카드 꺼냈나?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오랫동안 자신을 변방인으로 규정해 왔다. 2009년 12월 출간한 자서전 제목이 < 변방 > 이다. '이제, 중심을 꿈꾸며 힘들었던 삶의 가장자리를 이야기하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고통의 시절을 거쳐 변방에서 중심으로 진입하는 이야기는 영웅설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사형식이다. 검사 시절 '모래시계 검사'로 주가를 올리고 국회의원 시절 '저격수'로 명성을 얻었지만, 검찰에서든 당에서든 그가 주류로 분류된 적은 없었다.

2011년 그는 자신이 마침내 변방에서 중심으로 진입했다고 선언했다. "홍준표는 이제 변방에서 중심으로 왔다. 그러나 변방에서의 치열했던 정신을 잊지 않고 내년 총선·대선에서 압승하겠다."(2011년 7월 4일 당시 한나라당 전당대회 대표 수락연설) 그의 말처럼 "현대조선소에서 일당 800원을 받던 경비원 아들, 고리채로 머리채를 잡혀 길거리에 끌려나왔던 어머니 아들이 집권여당의 대표"가 된 것이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4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경남지역 의원들과의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김영민 기자총선에서 떨어진 지 8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경남도지사로 복귀한 그는 요즘 자신이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한다. "강성노조와 전쟁 중이다. 이번 일로 내가 내년에 재선이 안 되면 그건 나의 자업자득이고, 노조 또한 (진주의료원 폐업은) 그동안 패악을 저지른 것에 대한 자업자득이다."(4월 11일 문화일보 인터뷰)

홍 지사의 이 발언이 나온 시점에 주목할 만하다. 하루 전인 10일에는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진주의료원과 경남도청을 방문했다. 발언이 나온 당일인 11일 오전에는 사태 발생 후 처음으로 진주의료원 노사가 대화를 시작했다.

해결 실마리 시점에 '강성노조' 언급

진영 장관은 "진주의료원이 정상화해 지방의료원으로서, 공공의료기관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폐업'보다는 '정상화'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같은 날 이정현 정무수석도 "최악의 상황으로 가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주의료원 문제는 경상남도의 문제라며 거리를 두던 이전까지의 태도에서 돌아선 것이다. 홍 지사도 장관 면담 후 노사간 대화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며 '협상불가' 태도에서 한 발 물러서는 듯했다.

홍 지사는 이처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던 시점에서 '강성노조'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인터뷰에서 그는 "나보고 말을 바꾼다는 지적도 있는데 처음부터 자기 카드를 다 보여주는 것이 어디 있나?"라며 '진주의료원이 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박석용 진주의료원 노조위원장은 전화통화에서 "노사간 대화를 하라고 해놓고 노조가 강성이라는 인터뷰를 했다. 도대체 문제를 풀겠다는 건지 뭔지 알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취임연설에서 "서민을 위하는 도지사"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로운 도지사"가 되겠다던 홍준표 지사는 왜 지사직을 걸고 진주의료원 노조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홍준표 지사의 경상남도가 직면한 최대 현안은 심각한 재정난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경남도 본청 채무는 원금과 이자를 합해 1조150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경남도가 100% 출자한 경남개발공사 부채 5523억원을 합하면 경남도의 총부채는 1조7000억원이다. 이 때문에 홍 지사 취임 이전에 경남도는 2013년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 예산을 2012년보다 8억원 줄이고 무상급식 예산도 동결했다. 홍 지사는 취임 직후 예산집행 점검단을 구성해 비효율성 예산 30%를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진주의료원 폐업은 이런 배경에서 논의됐다.

폐업 결정이 내려진 건 1월 31일 이후의 일인 것으로 보인다. 3월 5일 경남도의회 본회의 회의록을 보면, 홍 지사는 긴급현안 질문에 답하는 자리에서 "(1월 31일 진주의료원장이) 사퇴하고 난 뒤에 후임 원장을 지명할 것이냐에 대해 고심하는 과정에서 간부들과 수 차례 의논을 했다. 휴업하고 폐업하는 절차가 옳은가, 휴업하고 다시 재생할 방법이 있느냐. 그렇게 하던 도중에 고심 끝에 폐업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말까지만 해도 경영 정상화를 위해 외부에서 새로운 원장을 영입하는 등의 정상화 방안을 검토했으나 추후 검토 끝에 폐업 결정을 내리게 됐다는 얘기다. 이날 본회의 때까지만 해도 홍 지사는 강성노조가 진주의료원 부실의 원인이라고 지목하지는 않았다. 2월 26일 경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윤한홍 경남도 행정부지사가 거론한 이유도 "매년 40억~60억원의 손실로 현재 300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홍 지사는 3월 18일 경남도 실·국·원장 회의에서 "(진주의료원은) 강성노조의 해방구"라는 표현을 사용한 뒤부터 노조를 집중적으로 공격해왔다. 지난 9일에는 '진주의료원 노동조합 실상' 자료집을 배포해 1999년 7월 진주의료원 파업 당시 노조원들이 당시 원장을 감금하고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진주의료원 노조는 '강성노조'일까. 박석용 노조위원장은 "우리가 정말 강성노조면 2008년부터 임금체불이 시작돼 직원들이 신용불량에 가까운 상태가 된 지금까지 파업을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 1990년대 중반 설립된 진주의료원 노조는 1999년 7월에 한 달 가까이 파업을 한 적이 있다. 경남도청 앞 천막에서 4월 11일로 16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조미영 진주의료원 간호사(25년 근무)는 "도에서는 1999년 파업 때 노조원들이 원장을 폭행했다고 하는데 업무 복귀 후 간호사들에 대한 부당전보 인사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원장이 간호사들을 밀쳤다. 당시 원장이 기골이 장대했다. 다친 건 오히려 간호사들이었다"고 주장했다. 경남도민일보는 4월 11일자 기사에서 당시 취재기자의 취재수첩을 인용해 "현장에서 지켜본 기자 기록으로는 거꾸로 강 원장이 노조원을 폭행했고, 그 과정에서 강 원장 역시 '다쳤을 수도 있다'고 보인다. 이를 거두절미하고 '노조원이 원장을 감금·폭행'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 왜곡"이라고 보도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당정협의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한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이 4월 5일 진주의료원 정상화를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이던 민주당 김용익 의원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경남도의회 답변에선 '강성노조' 얘기 없어

경남도 복지보건국이 도의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진주의료원 부채는 2012년 기준으로 279억원이다. 의료원의 자기자본금은 330억원이다. 2008년 이후에는 연평균 56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그러나 회계장부상에는 잡히지만 현금으로는 나가지 않는, 건물 신축에 따른 감가상각비 30억원을 제외하면 실제 적자는 연평균 26억원이다. 이 적자에는 신축건물 공사비 차입 상환금 20억원이 포함돼 있다. 진주의료원이 수년 안에 자기자본금을 모두 소진할 정도로 회생불가능한 상태에 있다는 경남도의 주장이 무리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남도가 진주의료원에 주는 금액은 연평균 12억원 정도다. 그러나 민자사업으로 지어진 거가대교와 마창대교의 경우 민자사업자에 대한 최소운영수입보장제(MRG)에 따라 2012년 한 해에만 도 예산 232억원(거가대교)과 142억원(마창대교)이 나갔다.

진주의료원이 수익보다는 적정진료를 통한 공공성을 중시해야 하는 공공병원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조미영 간호사의 말이다. "민간병원에서는 안 해도 되는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한다. 일반진료비는 공공병원이나 민간병원이나 같기 때문에 비급여 진료를 늘린다. 우리 의료원은 수면내시경이나 대장내시경을 다 해도 8만원 정도지만 민간병원에서는 대장내시경 하나만 해도 12만원이다. 대학병원에서는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중환자들을 민간병원이나 우리 의료원으로 가라고 하는데, 민간병원에서는 그런 환자는 안 받는다.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걸 이미 다 찍고 오니까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민간병원으로 가더라도 한 달쯤 지나면 진주의료원으로 가라고 한다. 한 달 지나면 수가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환자들이 와도 공공병원이기 때문에 안 받을 수 없다. 병원비를 떼먹는 환자들도 있지만 우리는 사정을 뻔히 알기 때문에 독촉할 수도 없다. 적자 날 요인이 이래저래 많다."

시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수익성 악화

조미영 간호사와 함께 단식을 하고 있는 강종순 간호사(28년 근무)는 2008년 병원을 신축하면서 진주시 외곽으로 이전한 것이 타격이 컸다고 말한다. "2008년 병원 이전이 수익성 악화에 결정적이었다. 이전하기 전에는 이전 준비 때문에 환자를 많이 받지 못했다. 이전한 후에는 너무 외곽으로 나가서 환자가 줄었다. 처음엔 버스 노선도 없었다. 지금은 5개 노선 정도 들어와 있는데, 배차 간격이 20~30분이다. 이것도 그나마 병원 예산을 들여 주차장 부지를 마련해서 가능했다."

박찬병 전 삼척의료원 원장은 지난 7일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경영적자가 문제라면 경쟁력을 떨어뜨려놓은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의료원을 산 넘어 외진 신도시 지역에다가 그것도 더 크게 지어서 이전했으니 병원 안 되라고 고사를 지낸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 이전은 김태호 전 도지사 시절 결정됐다.

이 때문에 진주의료원 폐업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홍 지사가 폐업 강행을 위해 무리하게 노조를 공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영국 경남도의원은 "처음에는 적자가 나고 있기 때문에 폐업을 해야 한다고 나왔다. 그런데 이 논리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나자 '강성노조'를 걸고 넘어지면서 보수적인 여론을 결집하고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일을 자신이 총대를 메고 해낸다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의약 관련 직능단체·경남지역 시민단체가 폐업에 반대하면서 진주의료원 문제는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 당 대표직을 내려놓은 후 1년여 만에 홍준표 도지사는 다시 전국적 이슈의 중심에 섰다. 홍 지사 스스로는 자신에게 강성노조와 전쟁을 치르는 사령관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전황은 불리하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용익 민주통합당 의원의 질의에 이렇게 대답했다. "강성노조나 수익성 문제를 앞에 내세우면 본질이 가려진다고 본다. 본질은 공공의료의 전반적 문제다. 공공의료 발전을 위해서는 폐업하지 말고 정상화를 해야 한다." 의료법 59조의 업무개시 명령을 발동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진주의료원 정상화 촉구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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