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재판부, 원세훈 공소사실 바꿔치기했다"

입력 2014. 10. 1. 15:27 수정 2014. 10. 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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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병한 기자]

며칠 전 서기호 정의당 의원실에서 글 한 편을 보내왔다. 지난 9월 11일 나온 국정원 정치·대선개입 사건 1심 판결(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부. 재판장 이범균)에 대한 비판 내용이었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서 의원은 2012년 초반까지만 해도 판사였다. 서 의원의 글에는 이번 판결에 대해 지금까지 제기되지 않았던 중요한 비판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너무 길고 어려웠다. 그래서 서 의원을 직접 만나 물어보기로 했다. 인터뷰는 9월 30일 오전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이루어졌다.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국정원 정치·대선개입 사건 1심 판결(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부. 재판장 이범균)에 대한 비판 글을 보내왔다. 서 의원의 글에는 이번 판결에 대해 지금까지 제기되지 않았던 중요한 비판이 포함되어 있었다. 서 의원과의 인터뷰는 9월 30일 그래서 마련됐다.

ⓒ 남소연

- 원세훈·이종명·민병주에 대한 이번 1심 판결을 총평한다면?

"판결문이 200쪽 가까이 되는데, 유죄 부분(정치개입: 국정원법 위반)이 163쪽인 반면 무죄 부분(대선개입: 공직선거법 위반)은 23쪽 밖에 안 된다. 그만큼 피고인과 변호인들을 설득하는, '당신들 주장과 달리 정치관여(국정원법) 부분은 유죄'라고 설득하는 데 초점이 맞춰있는 거다.

반대로 검찰의 주장, 즉 선거법 위반 혐의 기소 부분에 대해서는 가볍게 차버렸다. 구체적으로 검찰은 피고인들을 국정원법과 선거법 모두 공모공동정범으로 기소했음에도, 선거법에서 공모공동정범 부분을 거의 판단하지 않았다. 공모 여부를 지시 여부로 바꿔 버리는 방법으로."

- 우선 이 부분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보자. '공모공동정범'이 무엇인가.

"공모공동정범은 한마디로 조폭 두목이 조직원들에게 '쟤네들 손 좀 봐줘'라고 이야기를 했고 조직원들이 가서 상해를 가했을 때, 상해를 가한 부분에 대해 조폭 두목도 공범으로서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 두목이 직접 상해를 가하지 않았어도?

"그렇다. 직접 범행에 나서지 않은 사람도 공범으로 책임을 묻는다."

- 주범이나 종범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가.

"아니다. 그래서 '정범'이라는 표현을 쓰는 거다. 정범은 다 똑같다는 의미다. 보통 주범과 종범은 교사죄나 방조죄에서 나오는데, 그럴 때는 누가 주된 범인이냐를 따지게 된다. 하지만 공모공동정범은 굳이 따지자면 다 똑같이 주범이다. 추가해 설명하면, 교사범과 공모공동정범의 차이는, 교사범은 시키기만 했을 뿐이지 실행한 사람의 행위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위치나 능력(기능적 행위지배)이 없는 거다.

하지만 공모공동정범은 직접 범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범행에 옮긴 사람들의 행동을 사실상 지배했을 경우다. 주범으로 똑같이 처벌하는 이유가 바로 그 기능적 행위지배 때문이다. 조폭 두목의 예가 가장 적절한데, 조폭 두목은 단지 조직원의 범행을 야기 시킨(교사) 정도를 넘어서서, 두목이라는 지위, 조직원과의 평소 관계, 피해자와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자기가 실현하고 싶은 사항을 조직원들의 행위를 지배해서 실현할 수 있다."

- 그런 관점에서 이 판결문의 문제점은?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선거법 위반 부분에 대해서도 국정원법 위반 부분과 마찬가지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공모공동정범으로 기소했다. 그러면 그에 대해 재판부가 판단을 해야 하는데, 재판부는 판단을 하지 않고 지시 여부에 대해서만 판단을 했다."

- 근거가 무엇인가.

"판결문에 그대로 나온다. 검찰의 기소 내용을 인용하는 부분부터 잘못되어 있다."

유독 혼자 다른 선거법 관련 공소사실 서술

▲ 징역2년 6월, 집행유예 4년 선고 받은 원세훈

국정원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9월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 6월, 자격정지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뒤 법정을 나서기 위해 차량에 올라타고 있다.

ⓒ 유성호

서 의원은 두꺼운 판결문과 검찰 공소장을 펼치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검찰 공소장에는 피고인들(원세훈·이종명·민병주)의 최종적인 공소사실 결론을 이렇게 적시했다.

[전문] 국정원 정치·대선개입 사건 1심 판결문 보기

"피고인들은 ....(중략).... 심리전단 사이버 팀 팀장 및 직원 등과 순차 공모(모두 한자리에 모여 공모한 것이 아니라 지휘계통에 따라 차례로 모여 공모함 - 기자 주)하여, 그 직위를 이용하여 정치관여 행위를 함과 아울러 선거운동이 금지된 공무원으로서 그 지위를 이용하여 낙선 목적 선거운동을 하였다." (검찰 공소장 중 7번 결어 부분의 마지막 문장)

그런데 판결문의 선거법 위반 부분에서는 검찰의 공소사실 결론을 이렇게 인용하고 있다.

"이로써 심리전단 소속 4개 사이버 팀 70여 명의 직원 등은 3차장 피고인 이종명, 심리전단장 피고인 민병주 등 지휘 계통을 거쳐 시달 받은 피고인 원세훈의 지시에 따라 선거운동이 금지된 공무원으로서 위와 같은 조직적 활동을 통해 피고인 원세훈이 제도 정치권 진입을 저지하여야 한다고 지시한 특정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낙선 목적의 선거운동을 함으로써 그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개입 범죄행위를 실행하였다." (1심 판결문 177쪽)

분명 다른 문장이다. 판결문에서 공소사실의 결론을 다르게 인용하는 것은 분명히 극히 드물고 이상한 일이다. 특히 1심 재판부가 같은 판결문의 다른 부분에서는 정확하게 인용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더욱 의아할 수밖에 없다. 즉, 유죄를 판단한 정치개입 부분(국정원법 위반)과 무죄 판결을 내린 다른 부분에서는 검찰의 공소사실 요지를 서술할 때 모두 "피고인들은"을 주어로 시작하고 중간에 "순차 공모하여"가 들어간 채로 거의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1심 판결문 10페이지, 168페이지).

왜 유독 선거법 위반 혐의 공소사실만 다르게 인용했을까? 판결문의 첫 관문인 공소사실 인용을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

- 혹시 판결문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이런 방식으로 서술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은가.

"그렇지 않다. 판사가 검사의 기소 내용을 인용할 때 통상적으로 전체를 다 인용하고, 너무 길면 요약하는데, 요약을 하더라도 범죄구성요건의 본질적인 표현은 훼손하면 안 된다."

- 이 부분이 본질적인 부분인가. 혹시 지엽적인 부분은 아닌가.

"본질적인 부분이다. 이 공소장에서는 피고인들이 누구누구와 순차 공모하여... 이게 본질적인 부분이다."

- 정리하면, 판사가 처음에 공소사실을 인용할 때부터 '순차 공모' 부분을 '지시 여부'로 바꿨다?

"표면적으로는 공소사실을 바꿔치기 한 것인데, 법률적으로 볼 때는 결론적으로 '누락'이다. 인용된 공소사실 결론은 기소되지 않은 심리전단 직원들에 대한 소결론이다. 결국 원세훈 등에 대한 전체 결론이 빠진 채 인용됐고, 그러다 보니 '원세훈의 지시에 따라'라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부각된 것이다."

- 혹시 재판부가 실수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보기 힘든 이유는, 실수라면 그 뒤에라도 무죄 판단의 논리를 전개하면서 '검사는 공모하였다고 주장하나, 이러이러한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없다."

"실수라고 보기 힘들다"

국정원 정치·대선개입 의혹 사건으로 기소됐던 원세훈·이종명·민병주 피고인에 대한 1심 판결문(앞)과 검찰의 공소장(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재판장 이범균)는 9월 11일 세 피고인에 대해 국정원법 위반 혐의는 유죄를 선고했지만 가장 관심을 모았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이 판결에 대해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사실을 바꿔치기 하는 방법은 선거법 위반 혐의 공모에 대한 판단을 누락했다고 비판했다.

ⓒ 이병한

실제로 그랬다. 판결문을 찬찬히 살펴보면, 유죄 판결을 내린 국정원법 위반 부분에 대해서는 공소사실 인용뿐 아니라 이후 재판부의 판단에서도 명확하게 공모를 중심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137쪽부터 164페이지에 걸쳐 '공모관계 관련 주장에 대한 판단' 부분이 별도 항목으로 빠져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무죄 판결을 내린 선거법 위반 부분에서는 공소사실 인용에서부터 재판부의 판단까지 통틀어 공모라는 단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서 의원의 말이 계속됐다.

"이 판결문만 놓고 보면 검사가 공모공동정범으로 기소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공소장을 보니까 아는 거지, 이것만 보면 검사가 공모공동정범으로 기소했는지, 단독범행으로 기소했는지, 공모공동정범에서도 어떤 형태로(순차 공모는 공모의 한 형태다) 공모했다는 건지, 검사가 아무 제시를 안 한 것처럼 되어 있다. 그냥 단순히 피고인 원세훈이 지시하여 이렇게 된 것으로 되어 있다. 설사 백보 양보해서 이것이 실수라 하더라도 매우 문제다."

- 앞부분 유죄 부분이나 다른 무죄 부분에서는 공모에 대해 정확히 기술하고 있고, 판단도 그에 따라 하고 있다.

"맞다. 그러니까 더더욱 실수로 볼 수 없는 거다. 왜 하필 핵심적으로 무죄 판단을 내린 선거법 부분에서 이런 누락이 발생했느냐는 거다."

- 왜 그랬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 이유의 단초를 여기서 찾는다."

서 의원은 판결문 185쪽을 펼쳐 중간을 가리켰다. 이 부분은 재판부가 제시한 선거법 위반이 성립되지 않는 9가지 이유 중 첫 번째였다. 좀 길지만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① 이 부분 공소사실은 피고인들이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지시하여 제18대 대선에서 특정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목적으로 한 선거운동을 하였다는 것이므로, 피고인 원세훈에게 선거운동의 목적성 또는 범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판단요소는 피고인 원세훈이 국가정보원 직원들에게 선거운동의 지시를 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검사가 이 부분 공소사실에서 선거운동의 지시에 해당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적시한 2010. 1. 22부터 2012. 11. 23까지 12건의 피고인 원세훈의 지시 또는 발언 내용을 살펴보더라도, 그 중 직접적으로 제18대 대선에 관하여 선거운동을 지시한 것으로 파악되는 부분은 찾을 수 없고... (이하 생략)" (1심 판결문 185쪽)

서 의원은 말했다.

"이 부분은 9가지 무죄 이유 중 하나이지만, 이게 핵심이다. 나머지가 다 여기에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보듯 재판부는 핵심을 '원세훈의 직접적인 지시'로 바꿔버렸고, 그런데 그게 없으니 무죄,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공모 여부는 완전히 누락됐다."

"직접적인 지시는 공모의 한 부분일 뿐"

- 그렇다면 공모냐 지시냐가 왜 중요한가.

"왜냐하면 지시는 공모의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니까. 피고인 원세훈은 지시뿐 아니라 보고를 받고, 그러면서 감독하는 방법으로 공모를 한 것이다. 또 지시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느냐를 따졌는데, 공모에는 직접적인 지시뿐 아니라 간접적인 지시도 성립된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다른 요소들과의 연관성은 어떤지 등이 공모의 요소에 해당한다. 이 부분들이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 결국 공모가 더 큰 범위이고 지시는, 특히 직접적인 지시는 그 한 부분이다?

"그렇다. 그런데 공소사실 인용부터 공모를 빼고 지시를 쟁점화 시켰고, 그런 직접적인 지시가 없으니 무죄, 이렇게 해버린 거다."

- 의도적이라고 보는가.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처음 판결문을 볼 때는 이상했다. 어? 공소사실을 인용하는데 왜 빠져 있지? 뒤를 쭉 보니, 여러 차례 정독을 해보니, 의도적이라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정치관여와 달리 선거법 부분은 직접적인 지시가 없다는 점에 착안해 무죄 판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으로 보인다. 자신의 무죄 판결을 그럴 듯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 직접적인 지시란 게 대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인가.

"재판부가 보기에는 '대선에 출마한 문재인 후보를 낙선 시켜라'는 수준은 되어야 직접적인 지시라는 거다. 사람이 특정되고, 당선과 낙선이라는 구체적인 지시가 있는."

- 그러면 공모공동정범으로 기소된 상태대로 판단한다면 어떻게 되었어야 하는가.

"직접적인 지시가 없다는 것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지시 내용들도 정리하고, 그 간접적인 지시사항에 대해서 같은 공동 피고인, 그리고 국정원 직원들이 그 지시사항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라는 부분도 판단해야 한다. 상명하복 관계가 철저한 국정원에서 원세훈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을 때 직원들은 '아, 선거운동을 하라는 취지구나' 이렇게 받아들였을 수밖에 없다.

또 지시에 대해서만 볼 게 아니라 보고-지휘 계통을 통해 순차적으로 올라오는 보고들, 정치관여를 2009년부터 꾸준히 해온 사정들, 정치관여의 근본 목적이 그들이 종북세력으로 보는 사람들의 제도적 진입 저지였다는 점 등을 같이 봐야 한다. 그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 이렇게 공모의 법리로 전개하면 유죄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1심 재판부가 생각했다고 보는가.

"좀 다르게 이야기하면, 공모의 법리로 전개했을 때 무죄를 내리려면 검찰의 주장들을 하나하나 배척해야 하는데, 그렇게 일일이 합리적으로 배척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를 한 날 저녁, 서 의원이 기존 글을 좀 더 쉽게 고쳐 썼다면서 다시 보내왔다. A4용지 9페이지 분량이었다. 그는 "좀 길지만, 관심 있는 법조인들만이라도 전문을 읽을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그는 판사 경험이 있지 않고서는 좀처럼 알아채기 힘든, 자신이 발견한 판결의 문제점이 중대하다고 보고 정확히 알리고 싶어 했다. 아래에 전문을 파일 형태로 싣는다. 서 의원의 비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스마트하게 오마이뉴스를 이용하는 방법!☞ 오마이뉴스 공식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오마이뉴스 모바일 앱 [ 아이폰] [ 안드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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